‘평등’ 조항에 담긴 법치국가원리 다시 살펴보기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I.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과 그 해석의 쟁점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p.1)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많은 해석에서 이것이 “법적용상의 평등”뿐 아니라 “법내용상의 평등까지 포함하고 있다.”(p.2)고 보고, 이 조항이 평등권이라는 독자적인 ‘기본권’을 보장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류적 해석은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불러일으킵니다. 과연 이 규정으로부터 곧바로 평등권이라는 권리가 도출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불합리한 차별을 폭넓게 금지하는 이 평등권이, 실제로 모든 영역을 한꺼번에 포괄하는 초거대 기본권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요?
원문은 “평등권은 헌법 제37조 제2항이 예정하고 있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에 포함되기 어렵다.”(p.9)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법률상 권리에 불과한 침해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결국 평등권이 너무 광범위해져서 다른 개별 기본권과 충돌하거나 중복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 해석은 크게 세 갈래 특징을 지닙니다.
하나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선언이 ‘일반적 평등권’을 인정한다(p.3)는 점입니다. 둘째, 이 평등은 법적용상의 평등뿐만 아니라 “법내용상의 평등도 함께 보장한다.”(p.3)고 해석합니다. 셋째, 평등의 본질을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p.4)는 상대적 평등으로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상대적 평등 해석에 따르면, 국가가 제정·집행하는 웬만한 법률·정책이 모두 평등 조항과 연결되어 위헌 여부를 다툴 소지가 생긴다는 데 있습니다. “법내용상 평등”을 폭넓게 인정해 버리면, 입법 내용 전반에 대해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은 위헌”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어느 법률이나 정책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p.5).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에서 개별 기본권을 통해 구체적으로 심사해야 할 문제도, 곧장 평등권을 내세워 위헌성을 주장하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기준은 평등권이냐 아니냐로만 귀결되어, 해당 사안에서 침해된 자유(또는 권리)의 실질적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p.26)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이 담고 있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실 왕정 및 신분제 폐지 후 새롭게 태어난 공화국의 기초 선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원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 남조선과도입법의원 헌법안, 초대 대한민국헌법 초안 등에서 강조한 평등은 모든 인민의 법적 인격 동일성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p.8)라는 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때의 평등은 흔히 말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기”라는 상대적 평등 규정이라기보다는, ‘계급·계층의 차별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법적 주체임을 선언’(p.11)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임시헌장과 제헌헌법 초안에서도 ‘법률 앞의 평등’을 “모든 국민이 법적 인격에서 동등하다”는 형식적 의미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지요.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의 형식적 선언을 통해, 모든 국민이 국가권력과 관계없이 법의 지배를 받는 보편적 지위를 확인하는 것”(p.12)이 지금처럼 ‘내용까지 정의로운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형식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당시 연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은 평등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평등은 자유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법적 기초다.”(p.23)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요점입니다. 개인이 자유를 누리려면, 타인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형식적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일부 사람의 자유만 보호되고, 다른 사람들은 자유를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게 됩니다.
또한 “평등이란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관계적 개념일 뿐, 그 자체로 어떤 도덕적·실체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평등은 비어있는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p.24)라는 분석도 제시됩니다. 결국 ‘어떤 점에서 같다고 볼 것인가’ 혹은 ‘어느 수준의 차이가 본질적인 차별이 되는가’ 하는 기준이 있어야만 평등 여부를 판단할 수 있고, 그 기준 자체가 바로 개별 기본권의 실질적 내용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문은 “평등권은 과잉금지원칙이나 본질적 내용침해금지 원칙과 그다지 조화하기 어렵다.”(p.9)고 지적합니다. 구체적인 자유·권리를 제한했는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 도입된 헌법 제37조 제2항의 요건에, 평등권이 곧바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등”은 그 자체로 개별 자유영역을 갖기보다,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차이를 비교·조정하는 관계적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등권이 ‘기본권’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인정되면, “단순히 법률상 권리만 침해된 사안도 차별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어, 결국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침해’ 요건이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p.10)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헌법재판소가 본래 집중해야 할 개별 자유권 심사 대신, 평등심사(‘합리적 차별인가 아닌가’)만 무한정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는 논리입니다.
원문에서는 “평등 판단 뒤에는 언제나 특정 자유(또는 권리)의 침해가 자리하고 있음에도, 평등권만 거론하면 그 배후의 구체적 권리 심사가 생략될 우려가 있다.”(p.15)라고 짚습니다. 이를 ‘일반조항으로 도피’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저자는 궁극적으로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은 평등권이라는 기본권을 인정하는 규정이 아니라, 법치국가원리를 선언하는 규정이다.”(p.16)라고 결론 내립니다. 구체적으로 원문은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의 형식적 선언을 통해, 모든 국민이 국가권력과 관계없이 법의 지배를 받는 보편적 지위를 확인하는 것”(p.16)이라고 강조합니다.
즉, ‘법 앞에 평등’이란 “인간이 아닌 법의 지배, 그리고 명확하고 예견가능한 규범이 국가와 개인을 함께 구속한다.”(p.17)는 형식적 법치국가 원리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내용상 정의’까지 포함해버리면 법이 갖춰야 할 명확성·예측가능성이 과도하게 희석되어, 결국 ‘무엇이든 평등조항만 들이대면 충분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기존에 상대적으로 부차적 위치로 여겨졌던 제1항 제2문, 즉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구체적 금지조항이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이는 원문이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은 절대적 선언으로서 법치국가원리를 밝혀주고, ‘특정 사유’를 근거로 하는 반차별은 제2문처럼 따로 엄격히 다뤄야 한다.”(p.28)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을 “불합리한 차별을 전부 금지하는 초거대규범”(p.2)으로 삼는 대신, “법치주의 원리의 핵심적 기반”으로 해석할 때 얻는 장점은 분명합니다.
첫째, ‘차별로 인해 침해된 구체적 자유나 권리’를 좀 더 심층적으로 따질 수 있게 되며, “헌법 재판에서 불필요한 중복 심사, 일반조항적 도피가 줄어든다.”(p.26)는 것입니다. 둘째,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새로운 기본권”을 발굴할 때에도, ‘평등’ 만을 들어 호소하기보다는 해당 권리가 어떤 실질적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지 면밀히 살펴보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평등이라는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평등은 자유 보장을 위한 방법적 기초로서, 모든 국민이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가지는 근간”(p.23)이 된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됩니다. “결국 평등 자체는 비어있지만, 그것이 자유와 결합되어야 비로소 각 국민이 실제로 법의 보호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다.”(p.24)는 이 논문의 지적은 깊이 새겨볼 만합니다.
이 논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항을 새삼 되짚어보게 만드는 문제의식을 선사합니다. 어느 순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평등’ 개념 뒤에 숨어 있는 연혁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우리는 그동안 원칙처럼 받아들였던 해석들이 과연 타당한지 질문하게 됩니다. 특히 저자는 평등을 ‘법치국가원리’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해 오히려 구체적인 기본권들이 더 풍성해지고 온전하게 보호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기본권 보장을 단순히 ‘차별 금지’로 환원시키는 것에 의문을 가진 독자들에게, 이 논문은 헌법 조항의 새로운 독해가 줄 수 있는 다채로운 이점을 예리하게 제시해 줍니다.
(본 글은 [송 순 섭, "헌법 제11조 제1항 제1문에 관한 一考" <인권과정의> pp.6~34 (2024), KCI 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