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가치들: 변한 건 세상이 아니라 우리 시각일지도
최근 후배에게 로스쿨 입시를 위한 리트(법학적성시험)의 원서 접수가 완료되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인기가 엄청나서 내가 입학한 4년 전보다 경쟁률이 무척 높아졌다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2024학년도 리트 접수자가 약 1.7만 명이라는데, 내가 응시한 2020학년도 리트는 1.1만 명이었다. 4년간 무려 55%가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학령인구 감소 효과를 고려하면 더 큰 것인데,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대략 추정할 수 있다. 기사에 따르면 리트 응시생의 평균연령이 약 26세라고 한다.
그러면 대략적으로 2020년도 응시는 1995년생이 많고, 2024년도 응시는 1999년생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연도별 출생아수는 95년은 72만명, 99년도는 62만명으로 집계되어 약 13.8% 감소했다. 경쟁자풀의 규모는 14% 감소하는데 응시자가 50% 늘었다는 것은 4년 만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라 보인다. 물론 로스쿨의 인기가 상승한 것만이 유일한 변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과, 이과의 차이도 고려해야 하고, 반수생이 늘어난다든지, 재미삼아 보는 사람들도 있을테니(응시료가 25만원 정도라서 비율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추정이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아무튼 로스쿨 정원이 2000명인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응시생이 몰리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사실 어떤 진로의 인기나 전망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미래를 예측할수도 없고, 진로라는 건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에 관련된 것이라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딸기와 키위, 바나나의 인기나 취향을 비교하는 건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지만,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내가 좋아했던 '사회학'이나, 희망하는 공익, 인권 변호사를 둘러싼 이야기들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중요한 주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극도로 조심하면서, 모든 삶의 방식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그리고 실수를 지적받으면 적극 반영하고 수정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대한민국의 '진로'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의사'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도 의사 형이 있는데, 꽤나 만족하는 것 같다. 다시 태어나도 의사가 될 수 있으면 다시 하겠다는 말도 들었다. 실제로 의사들의 직업만족도가 다른 직업보다 높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사회학 수업 중에 실제 직업만족도는 외적 보상보다 내적 동기와 업무에 달려있다는 가설로 과제를 작성한 적이 있는데, 충분히 검증되고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없어서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형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약간 특이한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서 한국 의사들을 대표하기에는 맞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제 의대 열풍의 원인을 분석해보자. 일단 의대 열풍은 의사들의 만족도와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한다. 의대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혹은 학부모)들이 의대에 가려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탐구 대상의 범위를 좁혀서, 최근의 의대 인기 상승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사회학적 상상력의 핵심은 통시적, 공시적 접근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가령 한국의 과거, 한국의 현재, 외국의 과거들, 외국의 현재들을 놓고 비교함으로써 진정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의대의 인기가 예로부터 꾸준했다고 말하고, 외국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있다. 모두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늘 인기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부적으로는 더 높고 낮은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의 변화는 매우 느릴 때도, 빠를 때도 있는데 당장 내가 직접 목격한 최근 10년 간의 의대 인기 현상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빠르고 강하고 지속적인 것 같다. 조사의 한계로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해 아쉽지만, 사실 내가 근거를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상식처럼 되어가고 있다.
나는 획일화된 교육과정과 서열화된 평가, 적성과 다양성이 무시되는 교육 시스템에 반대하고 그러한 교육은 창의성과 자기주도성이 약해서 미래 사회에 맞지도 않으며 심지어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고 믿고 있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현실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많은 논거와 고민이 필요할텐데, 어려운 부분은 다음 글로 넘기고 싶다. 의대 문제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강제가입의 타당성, 수가 책정 문제, 의대 증원이나 간호사 지위에 관한 법적 문제, 국가고시의 합격률 문제, 의학의 커리큘럼 문제, 의사의 직업윤리 문제, 보험의 도덕적 해이 문제, 소위 의사유인수요 문제 등 다양한 논란들이 엮여 있다. 앞으로 내 생각을 하나씩 정리할 기회가 있을텐데 일단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먼저 이번 글에서는 아래 명제들의 현실적, 논리적 타당성과 참 거짓을 판별해보자. 아래는 순전히 내 추측이며 사실과 다를 수 있다.
1) 의대의 상대적 인기는 최근 10년 사이에 빠르게 높아졌다.
여기서 인기란, 학생들의 선호도를 말하는데, 다른 전공과 비교했을 때 의대를 선택하는 비율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의대와 비교되는 선택지로는 좁게는 공대, 자연대, 넓게는 예체능, 상경계, 인문계, 법조계, 전문대등이 있을 것이다.
2) 의사의 기대소득 및 진로의 안정성은 사회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3) 의사 외 진로의 기대소득 및 안정성은 의사보다 낮은 수준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4) 위 전제들이 참이라면, 의대의 인기가 최근 들어 높아진 현상 이면에는, 단순히 높은 소득이나 높은 안정성이라는 변수 이외에 새로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5) 내 결론: 최근 10년간 한국에서 물질주의 문화가 심화되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의대 열풍이다.
나는 의대에 가려는 사람들이 모두 물질만능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내적 동기는 외부에서 관찰하거나 측정할 수도 없고, 설사 물질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진학한다고 해도 애초에 이를 비난할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 일반의 물질주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고, 구성원들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질과 소득만 중시하고 예술과 적성과 공동체 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천박하고 잘못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 문제를 이야기 하기 이전에, 일단 우리 사회 분위기는 점점 물질을 중요시하는 것이 맞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과학적 의미의 사회학이다. 우리가 기상청에서 기온과 습도, 미세먼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변화 추이는 지속적이고 정밀하게 측정되어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결론은 이렇다. 의대는 과거부터 다른 진로에 비해 높은 소득과 안정성이 보장된 진로였다. 하지만 현재보다 과거에는 인기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의대 이외의 진로에서 기대되는 비물질적 가치(명예든 권력이든 자아실현이든)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현재에는 그런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의대에도 명예나 내적 동기, 보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은 어느 사회에서나 무척 중요한 직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취향과 관점에 따라서는 더 소중한 가치나 명예, 자긍심이 다른 진로에 있을 때도 있다. 과학자가 되어서 뛰어난 연구를 하거나, 소설가가 되어서 감동과 가르침을 주거나, 법조인이 되어서 분쟁을 해결하거나, 기업인이 되어서 신상품을 내놓거나, 공무원이 되어서 국익에 기여할 수도 있다. 내가 포착한 최근의 변화는 사람들이 이러한 정신적이고 예술적이고 내적인 동기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명예나 권력에도 관심이 없어지고, 오직 물질적 동기에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명예나 권력에 무관심해진 것이 아니고, 물질이 곧 명예이며 권력인 세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급격한 의대 열풍도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 예로부터 의사는 소득이 보장된 직업이었지만 현재만큼의 압도적인 인기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현재에 와서 그러한 소득격차가 벌어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우리의 관점이고, 렌즈다. 이러한 소득 격차를 버리고 다른 직업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무척 이상한 선택처럼 취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에는 소득을 버리고 정신을 택했다면, 이제는 정신을 버리고 소득을 택한다. 어떤 관점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사회 변화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가식과 눈치보기를 중단하고 만인이 각자의 이익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쫓아가게 되었으니, 더이상 이즘과 올로지에 기만당하는 사람이 없고 솔직하고 성숙한 사회가 되었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진단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행복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해결책을 내놓는다. 가령 의사를 늘려서 소득을 줄이거나 합격률을 낮춰서 안정성을 낮추거나, 고소득에 중과세를 해서 격차를 줄이거나 공대 등에 보조금과 연구비를 지급해서 우수 인재를 영입하거나 등등 다양한 대책들이 논의된다. 각자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질주의와 극단적 자본주의라는 대마왕, 최종보스와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돈을 못 벌게 만들자!" 혹은 "의사 외에서도 돈을 많이 벌게 만들자!" 보다는 "의대에 가서 돈을 잘 버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이 직업의 이런 점이 내 적성과 가치관에 맞아서 더 마음에 들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가 문화를 결정한다는 유물론, 결정론은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다.
그렇다면 의대 열풍과 물질주의 심화는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까? 나는 아닐 것 같다. 아마 당분간은 심화되겠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등장할 것이다. 그 혹은 그녀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기의 선한 본성을 되찾으라고 외칠 것이다. 결국 저마다 다양한 취향을 개발하고 끝내 많은 사람들이 실존주의적 삶을 영위하는 이상적인 세상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런 세상은 전체주의적 공산당 방식으로는 절대 실현될 수 없다. 절대 다수가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질투, 비교, 시샘하지 않고 자기의 삶에 집중하는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독재자가 아니라 예술가, 시인, 영화 감독, 작가, 선생님과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화와 예술이야말로 사람을 안에서부터 자발적으로 변화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물질주의에 대해 쓰다 보니 넉살의 <작두> verse가 생각났다. 아름답고 기막힌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다들 돈에 씌인 채로 살아
필요한 건 그걸 걷어내는 살풀이일지도
넉살아 넌 무엇에 눈이 돌아갔냐?
난 그저 흥이 좀 과한 놈이 아닐까
몇 년 전에는 또 뻔하게 펜을 굴렸었는데
그건 날 내린 그 분의 뜻이 아닌 것 같아
-넉살, <작두> 중.
(계속)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덧붙인다. 나는 의사들을 미워하거나 시기해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고, 많은 의사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