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의 가르침 비판: 물질주의를 이겨내는 다양한 꿈

이제는 돈에 대한 위악을 버려야 할 때. '가르침' 비판하기 프로젝트

•변호사: 나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위해 변론하는 것이다.
•의사: 나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일한다.
•정치인: 나 역시 돈이나 명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한다.
•교수 : 나는 돈은 없어도 그만이고 미래의 재목들을 키우는 것이 보람이다.
•종교인: 나야 물론 돈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봉사하는 사람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엿 먹어라! 나는 당신들 모두가 먹고살 수 있도록 돈을 낸다.” 나는 돈에 대한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이나 보람으로 위장하여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중략)

위의 글을 쓴 지가 20여 년 되는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돈에 대한 위선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내 판단으로 볼 때는 그 입을 조커처럼 찢어 놓아야 할 연놈들이 정치, 시민운동, 교수 세계에서 계속 나타나는데, 그런 연놈들을 사모하는 족속들이 계속 나오는 게 웃기다.
-세이노의 가르침, <돈에 대한 위선을 버려라> 중.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의 지속적인 인기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소위 '자기 계발서, 재테크 열풍, 쓴소리 모음'같은 컨텐츠가 유행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하기에는 그 파괴력과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이신 세이노 님(이하 존칭 생략)의 필력이 뛰어나고, 솔직하고 거침없는 문체와 짧은 글을 모아놓은 구성이 시대의 요구에 부합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용을 훑어보면서 나는 그 메시지가 무척 공허하고, 때로는 천박하기까지 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이런 책이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우리 사회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라는데(마치 실존적 해답을 내놓을 것같은 거창한 제목이다), 그 내용은 결코 "진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며, 단지 '자본주의적 정신에 취한 채 살아라'라는 말처럼 보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로 술에 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사회를 측정해본다면, 지금 사회는 '혈중 물질주의 농도'가 극도로 높은 만취상태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은 술로 치면 보드카처럼 상당히 독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술과 같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돈 권하는 사회, 부자 권하는 사회, 세이노와 물질만능주의를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나는 마침 글쓰기 소재를 찾던 중, 이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여러 대목을 상세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소위 '꼰대주의'와 '물질주의'의 결합이다. 저자는 이를 숨기지도 포장하지도 않는다. 먼저 꼰대주의에 대해 말해보자. 꼰대라는 말은 기성세대에게 모욕적인 말이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어쨌든 구세대의 경험을 토대로 신세대에게 조언하려는 태도를 일반적으로 꼰대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1955년생의 사업가라고 밝혔는데, 나는 95년생이니까 40년 차이가 난다. 도식적인 세대론에 따르면, 산업화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독설을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Z 세대인 내가 분석하려는 것이다. 특히나 이 글들은 2022년에 모두 새로 쓰인 글이 아니고, 20년 간 발표된 것을 모은 구성이기 때문에 '라떼는'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내용들도 많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세이노가 경제활동을 시작한 건 공군 제대 후라고 하니까 80년대부터라고 생각되고, 2003년에는 사업을 줄인 채 독서, 음악, 영화감상을 즐긴다고 한다. 그가 경험한 일로는 보따리 장사, 과외, 입시영어, 번역업, 의류업, 정보처리, 컴퓨터, 음향기기, 유통업, 무역업이 있으며, 외환투자, 부동산경매, 주식 등으로 자산증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주식만 봐도 1980년 1월에 100으로 시작한 코스피가 현재 2500이니까 40년 만에 25배 상승한 것이다. 부동산 상승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결정적인 시기에 돈을 쓸어 담는 장면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고도성장 시기라고 해서 자산 증식이 쉽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부모 세대도 다 그런 시대를 겪었지만 자산 증식에 성공한 이는 극소수다. 물론 나름의 통찰력과 직관, 지성이 기여한 바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고도성장 국가에서의 전략과 저성장 국가에서의 전략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에 필요한 가르침은 80년대 한국이 아닌 80년대 유럽에서 찾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르침이 의미가 있으려면 일방적인 전달이나 조언이 되어서는 안 되며, 끊임없는 상호 비판과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논어에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경험과 가치를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마치 경전처럼 습득하려는 태도는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방향일 수도 있다. 옛 것을 익힌다는 것은, 보존하고 배울 만한 것을 배운다는 것이지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도 있고 세이노의 가르침도 있다. 권위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수용할 건 하더라도 주체적인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금시작비'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은 옳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뜻으로, 이는 홍상수의 영화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나는 세이노의 가르침에 대해 (적어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지금 세대가 옳고 그때 세대가 틀리다"라고 응수하고 싶다. 신흥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똑똑하고 유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과거 세대의 능력, 세계관, 가르침이 유효했겠지만, 현재에는 새로운 세대의 가르침과 깨우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물질주의에 대해 말해보자. 세이노의 가르침은 지독하게 자본주의적이고, 황금만능주의적, 환원주의적이며, 돈에 대한 우상숭배라고 할 정도로 배금주의적이다. '위선'에 대한 그의 주장은 반증 불가능하다. 누군가 돈이 아닌 가치를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자. 가령 가수 아이유도 인터뷰에서 "오랜 생각 끝에 지금 이상의 재산은 사실상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속내에 음흉한 욕심을 감추고 있을지, 아니면 정말 그 이상의 가치나 목표를 추구하는 다짐을 가지고 있을지 외부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 결국 우리는 그의 평소 언행과 행실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이노의 관점에 따르면, 누군가 물질에 우선하는 가치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물질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한다면) 위선자라고 낙인찍으면 얘기는 끝난다. 그에게 위선자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폐 더미와 불.png 뤼튼 AI로 그림

세이노는 글의 서두에 '안빈낙도'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는데 실제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선조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공자 얘기가 나온 김에 선조들의 가르침을 떠올려보자.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다. 세이노의 가르침도 있지만, 이어령의 가르침도 있다. 가르침이란 용어는 조심해야 한다. 다른 세계관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르침을 맹신하는 자는 다른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래침만도 못한 쓰레기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나는 유교적 세계관 역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도외시하고 전체주의적이라는 혹자의 지적에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신도 다른 모든 가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위험하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돈을 신 포도라고 미리 단정 짓고 뒤돌아서는 여우가 되지도 말아라. 이것은 어떤 여자들이 아름다운 여자가 지나가면 ‘저 여자는 행실이 좋지 못할 거야, 남자관계가 복잡할 거야, 성질이 있을 거야, 화장발이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중략)

진정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부자에 대해 억측하지 말라. 명심해라. 부자들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사실은 부자들이 쓴 고백서는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부자들의 삶을 강 건너에서 바라보고 추측하여 쓴 책들은 그 어느 것이든 무시하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억측만 하면서 아는 체를 하기 마련이다.”―영화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ester〉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숀 코네리가 하는 말이다. 참부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배워라. 부자는 돈독이 들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가져올 때 부자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환희를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며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불행하지도 않고 도둑놈도 아니다.
-세이노의 가르침, <부자는 불행한 도둑놈이 아니다> 중.


논어에 '견리사의'라는 말이 있다. 이익이 눈앞에 보이면,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유교 세계관의 '의주리종', 즉 의로움이 주된 것이고 이로움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관점을 대표하는 말로 알려져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 넷째 손가락이 잘린 유명한 손도장과 함께 쓰여진 글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반대인 것 같다. 견리사의가 아니라 견의사리, 즉 의로운 일을 보면 그게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부터 따지는 것이 오히려 현실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라고 했다. 의로움을 강조하는 것이 모조리 위선이라면, 공자, 안중근, 맹자도 위선자인가? 물질주의를 경계한 사람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장자는 "하늘에서 받은 것을 극진히 하되 이익을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니(無見得) 오직 마음을 비울 따름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이익을 보지 말라는 것은 무견득, 즉 이익만을 염두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역주 참조)

예수님도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이 많은 성현들이 빵을 먹지도 말아야 하고 이익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의 방향성이 돈과 이익에만 가 있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코미디언 짐 캐리는 한 인터뷰에서 "저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졌으면 좋겠다(혹은 부자가 되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게 정말 인생의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겠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일단 세이노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보인다. 과연 짐 캐리가 위선자일까? 짐 캐리의 자산이 약 24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세이노 선생보다도 부자인 것 같다. 돈의 논리대로라면 짐 캐리가 두 배 부자니까 더 맞는 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짐 캐리가 돈을 몇 배 벌고 있든 상관없이 어떤 주장이 맞는지를 검토하려면 그 논거를 상세하고 정확히 살펴야 한다. 수백억을 소유했다고 해서 논거 없이 주장만 던져놓을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경험을 활용해 독창적인 주관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읽는 독자는 타당성과 보편성을 의심하고 질문하며 읽어야 한다. 요컨대, 이 책을 둘러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감 넘치는 저자가 아니라 그를 맹신하는 독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본받을 만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모두 불행하고 도둑인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 가기가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힘 있는 자가 더 무거운 책임감을 져야 하는 것은 맞다. 그의 말대로 부자를 억측하는 건 잘못이지만, '빈자를 억측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점은 왜 말하지 않을까? 특히 그가 위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억측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자기의 인생 전부를 바치지는 못하지만, 현실의 제약 내에서 타협해 가면서도 일말의 가치를 지향하고 세상을 개선하려는 이들을 위선자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세이노는 위 글에서 돈을 여성의 외모에 비유하며 '신 포도' 우화를 인용했는데, 그에게 묻고 싶다. 물질주의자들이야말로 가치와 윤리, 예술과 행복을 신 포도로 생각하고 도외시하는 것은 아닌가? 이어령 선생은 신 포도 우화를 아래와 같이 각색해 물질주의, 세속주의를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말 신 포도 취급받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요즘 이솝우화는 달라졌대요. 천신만고 노력 끝에 여우는 높은 가지의 포도를 따 먹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일을 어쩌지요. 그 포도는 정말 신 포도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애써서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자기만 따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뽐내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신 포도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요.

모든 여우들이 부러워하는 바람에 속내를 감추고 여우는 계속 시고 떫은 포도를 따 먹었지요. 자랑스럽게, 그리고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여우는 신 포도를 따 먹고 또 따 먹다가 결국 위궤양에 걸려서 죽었지요.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 그 삶을 살기 위해서 현대판 이솝우화를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그리고 용기 있게 말하세요. 남들이 다 추구하는 그 권세라는 것, 돈이라는 것, 그러한 세속적 욕망은 사실 신 포도였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세요.
-이어령,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중.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 정신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가르침과 세계관들이 있어 왔지만, 이 정도로 보편적이고 강력한 지위를 가지는 사상은 드물다. 만일 어느 외계인이 현대 사회에서 관찰보고서를 쓴다면 자본주의 정신 vs 나머지 모든 사상들로 구분할지도 모른다.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 부처가 힘을 합쳐도 세이노 한 명을 당하지 못한다.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니체, 플라톤, 칼 마르크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롤스, 사르트르, 카뮈, 러셀, 한나 아렌트, 제러미 벤담, 마이클 샌델이 가세해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물질 이외에 정신적 가치에 관심이 없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은 사람은, 인문학자들을 보고 '엿 먹어라, 너희 연놈들은 돈 앞에서 모두 부자를 질투하는 위선자에 불과하고 조커처럼 입을 찢어버려야 한다'라고 몰아붙이면 된다. 얼마나 쉽고 간단한 가르침인가.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하다. 읽지 말아야 하거나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 한 권만 읽고 세상에 통달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보통 나는 이 말에 반대하는 편이다. 웬만한 책은 안 읽는 것보다 읽는 게 낫기 때문이다. 논어 한 권만 읽었다고 해서 무슨 나쁜 일을 벌이겠는가. 하지만 <세이노의 가르침>만 읽은 사람은 좀 두려울 것 같다. 다른 모든 가치를 돈에 종속된 것으로 격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선이라는 논리는 매우 유용하고 간단해서 위험하다.


나는 변호사로서 억울한 사람의 법적 권리를 보호해 주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교수로서 연구 논문도 내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쳐보는 군자의 즐거움도 누려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고 오류다. 전설적인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생을 "우리는 모두 진흙탕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말로 비유했다. 별을 바라보고 지향하는 것이 위선이라면, 나는 당당히 위선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현 사회에서 위선보다 심각한 문제는 위악이라고 생각한다. 정글로 비유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하고 착해 보이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나쁜 척을 해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믿음이 퍼지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배틀로열, 더지니어스처럼 배신과 패륜이 통용되는 세상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기적이고 효율중심적인 세상에서 선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악한 척 위장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비롯한 감정과 양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과연 이렇게 서로를 수단화하고 물질화하는 세상이 정말 효율적인 것일까? 문화와 도덕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복잡한 규칙과 상벌이 대체하면서 오히려 비효율과 불행을 야기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도덕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유전적 진화의 결과물로 생겨났다는 연구들도 있지 않는가. 누군가에게 위선이라고 욕먹을 망정, 한 걸음 먼저 봉사하고 기여하는 삶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작가 세이노가 실제로는 장학사업에 적극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세이노 선생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는 스스로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정확히 하자면 나는 세이노 개인을 비판한 것이 아니고, 세이노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의 필력과 박식함을 보면, 그 삶이 상당히 존경할만하고 훌륭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으로 제시되고 아이콘화(icon)된 글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를 가진다. 아마도 그를 따르는 독자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혹은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편집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책으로 인세를 받지 않고 무료로 제공하려는 취지도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장학사업에 기부하고 세상에 기여하려는 그의 행동은, 논리적으로 보면 언행불일치다. 그렇게 돈에 대한 숭배를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건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러한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표현의 자유를 기꺼이 활용해서 그 책을 비판하는 글을 남긴다. 이 글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10부작에 걸쳐서 연재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 지망생을 신나게 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0대가 70대 가까운 현자를 저격했으니 무례하다고 할 것인가? 세상에는 세이노보다 먼저 살아간 수많은 현자들이 있었다. 세이노에게 그들을 비판할 자유가 있듯이, 누구나 세이노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나이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세이노 작가도 분명 동의할 것이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효과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대상을 충분히 공부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해 숙고한 다음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하지만 <세이노의 가르침>은 조금 특이한 책이다. 신랄하고 솔직한 표현, 혹은 욕설을 주저하지 않고, 논리나 논거를 풍부하게 제시하기보다는 직관과 유머가 돋보이는 글이다. 애초에 학술논문이나 출판을 목표로 한 글이 아니고, 인터넷이나 블로그에서 인기를 얻은 글이니까 더욱 그럴 것이다. 때로 모욕적인 표현들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때도 있으나, 나는 그의 주장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전적으로 옹호한다.


그러나 그러한 글을 쓸 때에는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비판에 열려 있어야 앞뒤가 맞는다. 따라서 나 역시 그의 가르침에 비교적 부담 없이 딴지를 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다행히 <세이노의 가르침>은 앞뒤가 논리적, 서사적으로 연결된 구성이 아니고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서로 다른 주제의 글들을 모아놓은 형식이라서, 편의상 발췌하여 읽는 방식도 문제 될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내 비평 역시 깊이 없는 직관과 인상비평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고,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 시간의 한계로 많이 퇴고하지도 못했다. 지적할 부분을 알려주면 적극 반영하려고 한다.


끝으로 획일적인 자본주의 정신에 대항하기 위해, 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노래를 하나 소개하고 마치려고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어떤 이의 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한국적 재즈락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어떤 꿈을 꿔야 할까. (계속)

https://www.youtube.com/watch?v=yjd_-aRKiHY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세상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세상에 이처럼 많은 개성들


저마다 자기가 옳다 말을 하고

꿈이란 이런 거라 말하지만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아무 꿈 없질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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