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권태>와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클럽>,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
그들(농민)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은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胸裏)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奴役)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 이상의 <권태> 중.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권태>의 마지막 문장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 있을 때도
(중략)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지켜보며 알게 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겠지
그렇지만 난 준비가 된 것 같아
너의 대답을 나 기다려도 되겠니 -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중.
여러분 우리는 음악도시의 시민들입니다.
매일밤 열두 시에 이 도시에 모이는 우리들은
사실 외형적인 공통점은 그다지 없습니다.
직업, 거주지역, 성별, 주위환경, 이런 게 다 달라요.
그냥 우리 공통점은 단 하나 아직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남들이 우리를 푼수라고 부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거죠
(중략)
음악도시를 그만두는 이 시점에 와서야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 대답은 우린 왜 사는가 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중략)
인생은 경쟁이다 남을 밟고 기어올라가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딴 놈들은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반납해라 인생은 잘 나가는 게 장땡이고
자기가 만족하는 정도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해야 성공이다
이런 논리들이요 우리는 분명히 그걸 거절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고요
현실적으론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언젠가는 경쟁 지배 이런 게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런 걸로 가득한 도시가 분명히 현실로 나타날 거라고 믿어요.
앨리스는 둑방에서 언니 옆에 앉은 채로 아무 할 일도 없는 상황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번 그녀는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훔쳐보았지만 책에는 그림이나 대화가 없었습니다. "저런 책이 무슨 쓸모가 있는거지?"라고 앨리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림이나 대화가 전혀 없다면 말이야"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더운 날씨는 그녀를 매우 졸리고 멍청하게 만들기 때문에) 데이지로 팔찌를 만드는 놀이를 하기 위해 꽃을 줍는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홍색 눈을 가진 흰 토끼가 그녀 옆으로 가까이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주목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토끼가 "오, 이런!"이라고 혼자말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다가 늦겠네!"라고 말하는 토끼가 실제로 양복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앨리스는 호기심에 불타서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첫 장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How much can you know yourself if you've never been in a fight? I don't wanna die with out any scars.
싸움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 수 있겠어? 난 상처 하나 없이 죽고 싶지는 않아.
This is your life and it's ending one minute at a time.
이게 네 인생이야. 한 번에 1분씩 사라져 가고 있네.
First, you have to give up. First, you have to know, not fear, know that someday you're gonna die.
먼저, 넌 포기해야 해. 넌 이걸 알아야 돼... 두려워하진 말고, 언젠가 넌 죽을 거야.
You're not your job. You're not how much money you have in the bank. You're not the car you drive. You're not the contents of your wallet. You're the all-singing, all-dancing crap of the world.
너는 네 직업이 아니야. 너는 은행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니야. 너는 네가 운전하는 차도 아니고, 지갑 안에 있는 내용물도 아니야. 넌 이 세상에서 노래하고 춤이나 추는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Woke up, fell out of bed
정신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빗으로 머리를 빗었어
Found my way downstairs and drank a cup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한잔 마시고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시계를 보니, 늦었다는 걸 알아차렸지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코트를 입고 모자를 썼어
Made the bus in seconds flat
2층 버스를 탔지
Found my way upstairs and had a smoke
위층으로 올라가 담배 한 대를 피우자
And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누가 말을 걸고는 난 꿈에 빠져들었어
-<A day in the life>, Beatles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