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고싶다면(ft. 신해철과 앨리스)

이상의 <권태>와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클럽>,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

그들(농민)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은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胸裏)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奴役)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 이상의 <권태> 중.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간다. 지겨울 새도 없다. 지독한 일상의 무기력과 권태, 속박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1. <권태>
<권태>는 소위 '시대를 앞서 간 천재' 이상의 단편소설로, 일상에서 겪는 지루함과 권태감을 주된 주제로 다룬다.(https://ko.wikisource.org/wiki/%EA%B6%8C%ED%83%9C 위키문헌에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지루한 시골 생활과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그 속에서 권태로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은 시골의 단조로운 풍경과 일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며, 농민들이 그러한 권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권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의 고뇌와 불만족을 살펴보며, 그것이 사회와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농민들도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며 수확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가? 주인공이 보기에 그건 희망이 아니고, 그냥 잔고를 쌓기 위해 기계처럼, 개미처럼, 혹은 노예처럼 자기 삶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삶의 지겨움은 농민에게만 한정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상이 현대 사회에 살아있다면, '회사원, 공무원, 일벌레는 참 불행하도다'라고 일갈하지 않았을까.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권태>의 마지막 문장


솔직히 맞는 말이라고 해도 저 말을 듣는 농민, 일벌레, 회사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것 같다. 인생이 지겨운 건 맞지만, 그러면 대안이 뭔데? <권태>의 주인공에게 뾰족한 탈출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나'는 '그들'과 달리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니까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세상의 어떤 문제든지, 자각한 뒤에야 해결이 시작될 수 있다. 왜 인생은 지겨운가?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가?



2. <일상으로의 초대>
몇 년 전, 복면가왕에서 음악대장이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를 커버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노래의 제목과 가사는 뭔가 의미심장하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 있을 때도
(중략)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지켜보며 알게 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겠지
그렇지만 난 준비가 된 것 같아
너의 대답을 나 기다려도 되겠니 -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중.


이 노래의 제목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일상으로의 초대'다. 이 노래의 화자는 지겨운 일상을 살고 있지만, 사랑하는 상대방을 초대함으로써 지겨움이 새로움으로,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해철의 아내에 대한 청혼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교제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 사랑은 때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일상에 초대하고 함께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어도 그 화자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모든 사랑이 성사되는 것도 아니고, 설사 이어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권태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지겨움은 잠시 유예되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관계를 시작하기 전, 처음 고백하는 과정에서의 설레는 마음은 매우 아름답고 신나는 것이지만, 이 노래의 화자는 진부한 착각에 빠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으로의 초대'를 불렀던 화자는 겨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부르며 함께하는 시간이 모두 지겨웠다고 고백할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연인 간의 '권태기'라는 말도 있겠는가. 그래도 괜찮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하림의 노랫말처럼, 하나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죽는 날까지 사랑을 추구하는 과정이 지속된다면 일상은 지겹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TkLBhd-hQ8


초대의 상대방인 '너'가 꼭 연인,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나 반려동물, 자연물일 수도 있고, 예술이나 사상, 취미, 취향, 영화, 사회운동, 혹은 덕질, 직업, 혹은 '농사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고 무언가를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물론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때로 사랑은 엄청난 충만감과 영감을 주지만 지독하게 반응이 없을 때도 있다. '예술의 대답'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그리고 쓰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경외를 느낀다. 그들은 적어도 내면에 '썸'타는 것과 같은 설렘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신해철은 라디오방송 '음악도시'의 마지막 방송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그는 용감하게도, 음악과 소통, 상상력을 통해 지겨움과 지배를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여러분 우리는 음악도시의 시민들입니다.
매일밤 열두 시에 이 도시에 모이는 우리들은
사실 외형적인 공통점은 그다지 없습니다.
직업, 거주지역, 성별, 주위환경, 이런 게 다 달라요.
그냥 우리 공통점은 단 하나 아직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남들이 우리를 푼수라고 부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거죠
(중략)
음악도시를 그만두는 이 시점에 와서야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 대답은 우린 왜 사는가 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중략)
인생은 경쟁이다 남을 밟고 기어올라가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딴 놈들은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반납해라 인생은 잘 나가는 게 장땡이고
자기가 만족하는 정도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해야 성공이다
이런 논리들이요 우리는 분명히 그걸 거절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고요
현실적으론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언젠가는 경쟁 지배 이런 게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런 걸로 가득한 도시가 분명히 현실로 나타날 거라고 믿어요.

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통 앨리스 이야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그런데 평범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발견하고 이상한 나라에 진입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의 도입부 역시 매우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다.

앨리스는 둑방에서 언니 옆에 앉은 채로 아무 할 일도 없는 상황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번 그녀는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훔쳐보았지만 책에는 그림이나 대화가 없었습니다. "저런 책이 무슨 쓸모가 있는거지?"라고 앨리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림이나 대화가 전혀 없다면 말이야"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더운 날씨는 그녀를 매우 졸리고 멍청하게 만들기 때문에) 데이지로 팔찌를 만드는 놀이를 하기 위해 꽃을 줍는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홍색 눈을 가진 흰 토끼가 그녀 옆으로 가까이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주목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앨리스는 토끼가 "오, 이런!"이라고 혼자말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다가 늦겠네!"라고 말하는 토끼가 실제로 양복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앨리스는 호기심에 불타서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첫 장면

나는 이 동화의 도입부를 좋아한다. 우리는 지금 지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제든지 말하는 토끼를 만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기회와 영감, 창의성은 배달의민족처럼 요청할 때마다 오는 것이 아니다. 이상한 토끼를 만나는 그 결정적인 순간, 호기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인생에 약간의 여유도 필요하고, 쫓아가기 위해서는 체력도 필요하다. 때로 글씨로만 이루어진 책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주변의 환경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자. 그래야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진입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반복된 일상에서 권태를 지겨워할 줄 알아야 비로소 새로운 영감을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4. <바람이 불어>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는 유일한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제목에 하늘, 바람, 별, 시가 들어간 작품을 떠올려 보면, <남쪽 하늘>, <바람이 불어>, <햇빛, 바람>,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서시> 등이 있다. 모두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특히 그는 암울한 시대적 현실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바람이 불어>라는 작품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참고로 이 시는 무려 2020년 수능시험에도 출제되었다고 한다. (맨 아래에 첨부)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누군가는 여기서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읽어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이 괴로움은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도 있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아니 없는 걸까?'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그냥 조국이 독립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이 시가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공허함과 지겨움을 그리고 있다고 본다. 독립이 되어도, 돈을 벌어도, 시험에 합격해도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른다. 그리고 인생은 괴롭도록 지겨울 것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괴로움을 사치라고 말할 것이다. 정작 먹고살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은 인생의 지겨움 따위는 느낄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윤동주의 시에서 우리는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 그리고 '시대를 슬퍼하는 일'을 통해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말한 건 아닐까? 그 속내를 알 방법은 없지만, 고난 많은 그 인생에서 시를 쓰면서 잠시라도 괴로움을 잊고 행복해했다면 좋았겠다고 바랄 뿐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아무리 자기가 쓴 거라고 해도)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5. <파이트클럽>

이러한 지겨운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파이트 클럽'이라는 영화를 들어 봤을 것이다. 만약 지겨움의 정서에 공감이 생긴다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잭(에드워드 노튼)은 일상생활에서의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만의 싸움클럽을 만든다. 그들은 매일 밤 같은 장소에서 만나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며 자기 안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낸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또 남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cRGtnDTQoyY


How much can you know yourself if you've never been in a fight? I don't wanna die with out any scars.
싸움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 수 있겠어? 난 상처 하나 없이 죽고 싶지는 않아.
This is your life and it's ending one minute at a time.
이게 네 인생이야. 한 번에 1분씩 사라져 가고 있네.
First, you have to give up. First, you have to know, not fear, know that someday you're gonna die.
먼저, 넌 포기해야 해. 넌 이걸 알아야 돼... 두려워하진 말고, 언젠가 넌 죽을 거야.
You're not your job. You're not how much money you have in the bank. You're not the car you drive. You're not the contents of your wallet. You're the all-singing, all-dancing crap of the world.
너는 네 직업이 아니야. 너는 은행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니야. 너는 네가 운전하는 차도 아니고, 지갑 안에 있는 내용물도 아니야. 넌 이 세상에서 노래하고 춤이나 추는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이처럼 극 중에서는 관객의 마음을 후벼 파는 대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웬만한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깊은 모욕감을 느끼거나, 엄청난 충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A day in the life>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합작으로 탄생한 이 노래는 비틀즈 최고의 명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음악 잡지 <롤링스톤>에서는 역대 최고의 노래 500곡 중 24위로 선정했다고 한다. 제목은 '인생에서의 하루'로 번역할 수 있겠다. 가사는 애매모호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 어렵지만, 평범한 사람의 일상으로부터 문득 꿈과 예술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마약과 환각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겨운 일상과 탈출에 대한 갈망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Woke up, fell out of bed
정신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빗으로 머리를 빗었어
Found my way downstairs and drank a cup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한잔 마시고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시계를 보니, 늦었다는 걸 알아차렸지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코트를 입고 모자를 썼어
Made the bus in seconds flat
2층 버스를 탔지
Found my way upstairs and had a smoke
위층으로 올라가 담배 한 대를 피우자
And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누가 말을 걸고는 난 꿈에 빠져들었어
-<A day in the life>, Beatles


음악은 일상 밖으로 나가기 위한 좋은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늦잠 자고 빗질하고 버스 타는 중에도, 음악과 함께라면 꿈에 빠져들 수 있다. 어떤 힙스터가 말한 것처럼, 음악은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하지 않나. 사실 찾아보면 유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스포츠, 소설, 영화, 게임, 커피, 혹은 글쓰기 등 뭐라도 좋다. 물론 그런 것들을 즐긴다고 해서 직업적인 성공과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마 덜 지겹기는 할 것이다. 위 노래에서처럼 '늦었다는 걸 알아차렸더라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인간은 어디서든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흥미로운 존재다.



7. 맺음말

그렇다. 지겨움은 해결될 수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내 일상에 초대하고, 시대를 슬퍼하고 사회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좀 더 실존주의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는 있다. 필경사 바틀비처럼 갑자기 모든 일을 중단하는 것도 하나의 해답일 수 있다. 내 주변에서 파이트 클럽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권태와 행복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이상은 권태를 자각함으로써 행복해진다고 말했고, 신해철은 '일상으로의 초대'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사실 많은 푼수들의 결말을 보면 꼭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권태와 일탈이 진정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하나의 시작점을 제공해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순간의 짜릿함, 일탈의 즐거움을 넘어서서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더 탐구해 볼 만한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sNsCeOV4GM


끝으로 신해철의 또 다른 가사를 음미하며 마치고자 한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Epilogue. 2020학년도 수능 국어영역. 정답은 물론 4번이다. 시를 읽고 음미하는 것은 인생의 지겨움을 달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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