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즐겨라, 내일은 없으니까(ft. 요조와 도로시)

아메리카노와 죽은 시인의 사회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 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 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중, 요조(신수진)


이 글은 대학교 작문 시간에 교수님의 소개로 처음 읽게 되었다. 2009년 서울예대 학보에 실린 신수진(요조)의 에세이로,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변화한 생각을 담고 있다. 충격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신수진은 가수 요조라는 이름으로 음악과 방송 활동으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2010년 청춘페스티벌에서 '오늘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주제의 강연이 유튜브에서 25만 명에게 보이며 주목받기도 했다. 14년이 지난 오늘 문득 이 글에 대한 독후감 혹은 댓글을 쓰고 싶어졌다. 혹시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theinforaven.tistory.com/70) 원글 출처는 싸이월드와 학보인 거 같은데 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둘 다 접속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구글링으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오늘 해야지 vs 내일 해야지 vs 언젠가 하겠지

먼저 이렇게 진심 어린 이야기로 우리에게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요조의 말처럼, 우리는 종종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곤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실천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방문하거나, 원래는 내일 해야겠다고 미루던 취미를 오늘 시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거나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도 오늘의 소중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 메시지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말해주는 '카르페 디엠',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따라'는 말과도 유사하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일원으로서 카르페 디엠을 외친 BC 1세기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죽었다는 사실, 더 기다리지 말고 장미를 따라고 권하던 17세기의 영국 시인 로버트 헤릭이 죽었다는 사실, 그걸 소재로 연작 그림을 그려 유명세를 얻은 19세기의 영국 화가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죽었다는 사실, 1989년 키팅 선생님을 연기한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도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글을 쓰거나 읽은 모두가 어차피 죽을 거라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충격을 주지만 매우 진부한 사실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기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냥 제정신이 아닌 거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르침은 특히 현대 자본주의와 허무주의, 쾌락주의 사회에 매우 유용하고 독창적인 메시지를 주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기로 하자.)

<장미 봉우리를 모을 수 있을 때 모아라>, 워터하우스 연작 중 1908년작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ohn_William_Waterhouse


레우코노에, 아무도 제 운명을 알 수 없다오.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몰라요. 묻지 말아요. 찻잎이나 손금을 읽어
알아볼 생각도 말고요. 무슨 일이 닥치든 담담히 받아들여요.
이 겨울이 우리의 마지막 겨울일 수 있어요. 아니면 토스카나 바다를
저 벼랑에 내던져 그 힘을 앗아갈 더 많은 겨울이 기다릴 수도 있고요.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지혜롭게 살아요. 포도주를 걸러 마시고
희망에 대해선 잊어요. 시간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달아나고 있어요. 현재를 붙잡아요. 미래는 마음에 두지 말고요. - 호라티우스의 송시 중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요조의 글은 마치 찬바람이 불어올 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또한 글의 전개와 논리, 설득력이 탁월해서 더욱 몰입해서 읽었다. 요조의 다른 글이 궁금해진다.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통해 '오늘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줄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 친구의 죽음 이후,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인생의 가치관이 많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매일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 엄마와 출근하는 아버지, 무대 위에서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던 시기에 소행성 충돌이 단 몇 분의 차이로 지금의 인류 문명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는 다큐멘터리 관련 기사를 읽었다. 이처럼 인생은 미세한 순간들이 모여 큰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니, 누군가 말한 것처럼 오늘에 충실하면서 내일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다고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 공룡에게는 운이 없었지만, 인간에게는 기막히게 운이 좋았던 거 같다.

운이 나빠 멸종한 공룡, 운이 좋아 탄생한 인류

이번 조사는 공룡이 얼마나 운이 없었던가를 밝혀낸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사에 참여한 지질학자와 생물학자 등은 소행성이 몇 분 늦게, 혹은 몇 분 일찍 충돌했더라면 공룡이 멸종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카탄반도를 비롯해 멕시코는 좌우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끼고 있다. 혹시 1분이라도 빠르거나 늦게 충돌했다면 소행성은 이런 대양의 깊은 물속으로 처박혀, 공룡 멸종을 초래할 정도의 대폭발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소행성이 깊은 바닷속으로 처박혔다면 우리는 지금 박물관의 화석이 아니라 쿵쾅거리며 뛰는 공룡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할 것 같다. 거대 파충류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포유류의 시대가 열렸다. 몸집이 작고 숨기가 쉬워 생명을 보전한 현생 포유류의 조상들은 공룡이 사라진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공룡이 여전히 지구를 배회한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출처: 한겨레신문, 이본영 기자, “공룡은 단 1분 차이로 멸종했다”)




역사상 최고의 아동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1939년 판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와 새로 만난 친구들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마법사를 향한 긴 여행을 떠난 후 허무하게도 마법사는 힘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로시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지 몰라 실망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착한 마녀) 글린다가 나타나서, 도로시가 내내 신고 있던 루비 슬리퍼에 숨겨진 비밀을 밝힌다. 그들은 아래와 같은 대화를 한다.

도로시: 오 글린다 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글린다: 당신은 더 이상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당신은 항상 캔자스로 돌아갈 힘이 있었거든요.
도로시: 제가요?
허수아비: 그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글린다: 그녀는 나를 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스스로 그것을 배워야만 했답니다.
허수아비: 도로시, 너는 뭘 배웠니?

도로시: 글쎄요, 저는 단지 헨리 숙부와 엠 숙모를 보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의 소망을 다시 찾아야 한다면, 앞으로는 제 뒤뜰보다 더 멀리 나가서 찾아다니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만약 그곳에 없는 거라면, 애초에 그건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니까요. 그렇죠?
글린다: 맞아요 그게 전부랍니다.

허수아비: 하지만 그건 너무 쉬운 거잖아요! 내가 도로시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걸 그랬네요.
양철 인간: 내가 마음속으로 느껴서 알려줄걸 그랬네.
글린다: 아뇨, 그녀는 스스로 그것을 알아내야 했답니다. 좋아요, 이제 그 마법의 슬리퍼가 2초 안에 여러분을 집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그렇다. 우리 인간들은 항상,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 때로 소망하는 것들이 있더라도 뒤뜰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언가 당신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고 영원한 행복을 약속해 줄 만한 목표가 보인다면, 누군가 그런 결과를 약속한다면, 그것만 가지면, 대학만 가면, 취업이나 승진에 성공하기만 하면, 모든 사소한 문제가 끝날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오즈의 마법사'처럼 터무니없는 사기일지 모르니 주의하라.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내가 가본 적도 없는 곳에 내가 잃어버린 행복이 숨겨져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행복은 일상 속에 있다. 가왕 조용필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오해하지는 말자. 먼 길을 떠나서 하늘높이 날아 별을 안으려고 애쓰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거나 불행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먼 길을 떠나면서도, 옆에 있는 소중한 것들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챙기면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멀리 떠나더라도 지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 카르페 디엠의 의미는, 오늘 가진 걸 모두 낭비하라는 뜻이 아니라,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는 여유를 가져야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일단 오늘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자

신수진의 글 중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이 문장을 읽고, 오늘 하루를 극한으로 즐기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매일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내 친구가 이 글을 보면, 오늘 밤은 도서관 대신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요조는 그런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늙어 잘 살려고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참지 말자" 이제 우리 속담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언제까지 공든 탑이 무너지랴, 티끌 모아 태산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되뇔 것인가.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진리 중 하나는,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또 까먹었네 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 글의 메시지처럼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게 좋겠다. 우리는 인생이란 극장에서 매일 다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무대를 최선으로 연기하며 내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을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 없이 포클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클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요조의 같은 글


사진이든 그림이든 연기든, 그 순간의 행복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멋진 것 아닐까.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 글이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키워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때로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있는데, 이를 조금 더 풀어가며 즐거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도록 성찰하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따뜻한 글의 독자가 한 명이라도 더 생기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윤동주의 <별똥 떨어진 데>,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을 활용해서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지만 시간이 없으니 일단 마치려고 한다. (끝)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 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얼마 전 차 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요조의 같은 글

https://youtu.be/gQvlzv_OI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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