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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Jul 06. 2021

아이를 안 낳으면 불행해진다구요?

                                                                                                                 

엄마와 인도 배낭여행을 했었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다. 

어린시절부터 기억을 되감아 보면 엄마를 알고 있는 누구나 엄마를 좋아했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부산 연산동 작은 동네의 아줌마들은 고민거리가 있거나 시간이 남으면 우리집에 와서 놀았다. 그 아줌마들은 엄마를 좋아했고, 그래서 엄마의 딸인 나도 좋아했다. 유치원도 가지 않았던 어린 나이였지만, 그 사람들이 나를 보던 따뜻한 눈길은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나와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학부모회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몇명의 아줌마들과 친해졌는데, 그 아줌마들은 툭하면 집에 놀러왔는데, 심지어 엄마가 없어도 우리집에 놀러와 엄마가 올때까지 놀다가곤했다. 뭐, 싫어하는 사람 집에 툭하면 놀러오진 않았을 것 같다. 


엄마는 내 친구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인선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3년 동안 하루종일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마음이 아주 착하지만, 욕을 잘했고, 겉 모습은 화려하게 꾸미는걸 좋아해 귀를 여러 개 뚫고 머리색은 매달 색을 달리해 공작새처럼 화려한 머리카락을 가진 친구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마음이 아주 착한 친구였다. 불행히도 동네 어른들은 인선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날 인선이는 방학을 맞이하여 여느때처럼 어떤 색으로 염색을 할까를 고민하다 털 색을 죄다 뽑아내어 흰털을 만든 다음, 눈이 부신 금발로 머리를 물들였다. 때는 고3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은 인선이를 보고 지나갈 때 마다 혀를 끌끌끌 차며


"저건 뭐가 되려고 대가리를 저렇게 물들이냐?"


라며 걱정인지 악담인지를 모를 말들을 했다. 그날은 금발의 인선이가 우리집에 놀러왔고, 인선이의 금발머리는 우리집 현관에서 환하게 빛나 마치 부처의 머리 뒤에서 빛나는 광배같았다. 엄마는 인선이의 빛나는 머리털을 보고 감탄하더니


"우리 인선이 바비인형같네."


나는 엄마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이 인간이 바비는 무슨 얼어죽을 바비'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인선이는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야. 미쳤냐? 왜그래?"


나는 인선이의 당황스러운 반응에 왜 우는지를 물었고, 


"이렇게 좋게 말해주는 사람은 너네 엄마가 처음이야."


그 이후부턴 인선이가 나를 보러 우리집에 놀러오는지 엄마를 보러 우리집에 놀러오는지가 모호해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엄마가 당연한 줄 알았는데, 결혼할 후부터 나는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는 중이다. 

최근 새로 만난 가족으로부터 그러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있다. 



엄마와 인도배낭여행을 했다



시어머니는 정말 내 말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안된다.', '틀렸다.'라고 하는 것인지, 그저 나를 짓밟고 싶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너가 틀렸어.'를 입증해 '내가 우월해'를 증명하고 싶은것인지, 그 모든 것도 아니라면 장래희망이 '쇼미더머니'에 출연하고 싶은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 말과 남편의 말은 다 틀렸고, 본인의 말이 무조건 맞으면 어리석은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버리장머리없는 막되먹은 인간이라는 식이다. 


시어머니는 어느날 나에게 갑자기 '엽산'을 먹으라고 했다. 난 엽산이란걸 살며 처음 들었다.

"엽산이요? 그건 어디에 좋은거예요?"

난 비타민 같은것인 줄 알았다. 

"너희들도 나이가 있는데, 이제 임신 준비를 해야지."

나는 당황했다. 

"그런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애를 낳을것인지 안 낳을 것인지 나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낳는다.'라는 가정을 하에 '엽산'이란 것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는 나의 단호박스러운 말언에 기분이 몹시 상한 시어머니는 

"엽산을 꼭 챙겨 먹어야해."

라며 되려 역정을 내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 그만 하고 싶네요."

나는 대화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나의 일방적 대화 종료에 종료할 뜻이 없었던 시어머니는

"엽산을 안 먹으면 장애인을 낳는다."

라는 발언을 하셨고, 나는 그 발언에 벙쪄 할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만하시죠."


내 발언에 기분이 더더더 상해서 내 기분도 더더더 나쁘게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하신 듯. 

"아이를 안 낳아? 왜 안 낳아?"

"제 의사를 존중해 주세요."

"너 그거 아냐?"

".....?"

"아이를 안 낳으면 불행해져. 아이를 안 낳아서 너는 불행해 질꺼야."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울고싶은 기분이었지만 울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

"너 좋은대로 해. 뭘 그런걸 물어."

"시어머니가 내가 아이를 안 낳아서 불행해진데. 아이를 안 낳은 사람들은 불행해진데."

"......"

"그래서 너무 속상해."


나는 엄마에게 소리지르듯 말했다. 나의 눈물섞인 하소연에 엄마는는 아무말 없이 담담히 듣고 있다가 생각이 정리 된 듯 말했다. 


"딸"


귀미씨는 언제나처럼 내 이름을 따뜻하게 불렀다.


"아이를 안 낳아서 불행해 지지 않아. "

"그렇지만 시어머니가 아이를 안 낳으면 불행해 진다고 하잖아. 엽산을 안 먹으면 장애인을 낳는다고 하잖아."

"아니야. 아니야."

"......."

"그런 사람들때문에 불행해지는 거야. 아이를 안 낳아서 불행한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행한거야."

"......."

"무시해버려. 그리고 괜찮아. 이제 그만 울어."


사람들이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존중과 인정이다. 누군가에게 존중과 인정을 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시가 답이다.                                                 


인도 여행 중 이모와 이야기를 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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