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집에는 개가 한마리 있었다. 이름은 셰피였다. 나는 요즘도 가끔 셰피 생각을 하고, 못되게 굴었던 것을 기억해내 마음 아파한다. 아주 똑똑했고, 다정한 강아지였다. 꿈에서도 가끔 셰피를 만나고, 불현듯 그리움워 마음이 힘들기도 하다. 헤어진지 20년이 넘었지만, 셰피는 아직도 내 강아지다.
셰피는 산책견이었다.
요즘 서울에서 들으면 경천동지할 일이지만, 그 시절 내가 살던 부산 연산동의 작은 마을의 개들은 모두 산책견이었다. 목줄 같은건 없이 집 앞을 서성이며 돌아다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고, 강아지 친구들과 놀다가 해질녘엔 제발로 집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 오토바이가 나타나면 그 옆을 왕왕 짖으며 쫓아다녔고, 사람들은 으레 있는 일인양 무심하게 지나갔다.
개가 왜 목줄없이 돌아다니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없었고, 길가는 행인에게 짖는다며 주인에게 따지는 법도 없었다.
앉으라거나 일어서라는 훈련은 안했지만, 똑똑했던 셰피는 누가 집에 오는지, 누가 먹을껄 사오는지, 누가 본인을 예뻐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채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아마 제대로 훈련을 시켰다면 도그쇼 챔피언쯤은 먹었을 것이다. 셰피는 사료를 먹기도 했고, 우리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도 했다. 간식같은건 없었는데, 나는 가끔 셰피를 데리고 불량식품 파는 슈퍼로 가서 쫄쫄이나 소세지 같은걸 사서 나눠먹었다.
우리집이 셰피를 키우던 방식이 옳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땐 그랬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우리동네에선 평범한 모습이었다. 산책견을 기르던 다른 집들의 개들도 다들 그러했다.
요즘 애완견 문화는 그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은 애완견이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냈고, 비록 동물이지만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방법도 알아내었다. 강형욱 이후에는 강아지가 사람과 한층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들의 인격도 사람의 인격처럼 존중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옛날 우리 가족이 기르던 셰피를 요즘 사람들이 본다면 '아주 잘못된 방법으로 개를 기르던 무책임한 사람들'쯤으로 취급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하지 마라는 것은 죄다 했던 셰피였다.
좀처럼 TV를 안보는 엄마는 최근 <금쪽같은 내새끼>를 자주 본다. 엄마는 오은영 박사의 말씀을 듣다보면 마음이 안 좋아 진단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잔뜩 미안한 목소리로 사과를 한다.
"선영아 미안해."
"뭐가?"
"어제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중략) 엄마가 너희들 키울때는 엄마도 너무 어려 잘 몰랐어. 근데 돌이켜보니 많이 잘못한것 같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 난 뒤 엄마는 자주 한숨을 쉬고, 자꾸만 슬퍼한다.
"엄마. 셰피 기억나?"
"그럼. 우리 셰피! 얼마나 똑똑했다고."
"엄마. 셰피는 산책견이었잖아. 그런데 요즘은 산책견이 없는거 알지?"
"목줄이 필수잖아."
"엄마. 너무 슬퍼하지마. 엄마가 슬퍼하는건, 산책견으로 자란 내가 목줄없이 자랐다고 슬퍼하는거랑 똑같아."
엄마 괜찮아. 우리 땐 누구나 줘 터지고 살았어. 몇 대 줘 터진건 기억도 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