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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Jul 11. 2021

누구나 마음대로 인생을 살 수 있어


엄마는 어린시절부터 나의 오빠를 더 좋아했다. 사실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받았어야 할 기회를 빼앗겼거나, 응당 내것이었던 것을 오빠에게 준 적은 없다. 그것은 단지 엄마 선호의 문제였다. 따라서 나는 엄마가 오빠를 더 좋아한다고해서 서운한 마음은 없으며, 지금도 담담하게 "엄마는 오빠를 더 좋아하잖아."라는 말을 한다. 


뭐, 아빠는 나를 더 좋아한다. 






나의 오빠는 어린시절부터 동네의 유명한 개구쟁이였다.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는데, 나는 저 인간이 커서 무엇이 될지 진심으로 궁금했던 적이 많다. 동네에 같이 놀던 나의 오빠와 비슷한 막장급의 오빠 친구들은 뒷산에 자주 올라갔는데 어느날은 뒷산에서 살아있는 박쥐를 잡아와서 길 가는 동네 사람 및 모르는 사람들을 놀래키며 다녔고(뒤에 살금살금 다가가 등을 툭툭 치고 뒤돌아보면 박쥐를 보여줬다는 것 같다.), 이에 열받은 동네 아줌마는 우리집에 전화해 소리를 질렀다. 전화기에 대고 연신 사과하던 엄마가 전화를 끊고 오빠를 잡으러 혼비백산하며 대문을 나가던 뒷모습.


뭐, 이런 비슷한 기억이 족히 백 가지는 될 듯 하다. 




나는 아마 저 인간이 백수가 되거나 사고를 치다 감옥에 갈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이런 기대와 달리 현재 멀쩡한 기업에 장기근속 중이다. 오빠는 학창시절부터 초대형급 사고를 쳐대서 상대적으로 얌전했던 나는 부모님이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는데, 옆에서 오빠가 쳐대는 사고를 보니 나라도 멀쩡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못 받은 관심에 미련은 없다. 


검은색 가죽잠바가 오빠다. 얼굴에 개구짐 가득 






그랬던 오빠가 엄마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20살 즈음 3년정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시간일 것이다. 사고를 쳐대는 와중에서도 공부를 꽤(아니 엄청) 잘했던 오빠였지만 집의 가세가 기울어 예전처럼 뒷바라지를 받을 수 없게 되고, 라이벌이라고 생각되었던 친구들과 격차는 계속 벌어져 대학을 갈 즈음에는 나름대로 자존심이 상했던지 어느날부터 방에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문을 걸어잠근 오빠 방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매일아침 일을 하러 가기 전, 아침과 점심을 차려서 문 앞에 놓고 저녁에 돌아와 저녁밥을 문 앞에 놔두었다. 


잔소리는 안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어렸기에 엄마의 마음같은건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냥 오빠라는 놈은 집도 어려운데 너까지 왜 저럴까라고. 저건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그렇게 3년동안 아무말없이 귀미씨는 오빠의 방문앞에 밥을 가져다 놓고 가져오길 반복했고, 어느날 오빠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공부한 만큼 좋은 대학을 갔고, 회사에 취직했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여행을 하며 산다. 


남들처럼. 


워낙 멀쩡하지 않은 녀석이라 무슨 맘으로 3년을 히치코모리로 살았는지, 무슨맘으로 다시 공부를 했는지 묻지 않았다. 엄마는 살아오며 오빠 방문앞에 밥을 가져다놓던 3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아빠 사업이 망해서 빚쟁이들에게 쫓겨다닌 시간도 아닌, 옥탑같은 곳에 살며 식당에서 일했던 시간도 아닌, 저 3년이 가장 지옥같았다고 했다. 


나는 귀미씨의 말을 듣고 "엄마가 오빠를 너무 오냐오냐 하니깐 그러는거야."라고 했다. 엄마는 그런가보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오빠를 너무 사랑하기에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오빠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서 방문앞에 가져다 놓는 것이 귀미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쟁반 위에는 "힘내."라든지 "먹고 싶은 거 있음 적어줘."라는 메모와 함께. 





얼마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오빠의 안부를 물었다. 


"몰라. 요즘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산 근처 울산에서 근무하는 오빠는 주말 혹은 일주일에 한번쯤은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안 들어왔는데?"

"한 두달."

"연락은 해?"

"전화는 하지."

"그럼 뭐래?"

"바쁘다고 끊으래."


엄마의 말 속에는 아들에 대한 궁금함과 그리움. 그리고 서운함이 가득했다. 


"귀미씨 아들이 아주 많이 보고싶구만."

"그렇지 뭐."

"오빠는 연락 좀 하지 뭐하는거야?"

"아니다. 안해도 된다."

"엄마가 오빠 보고 싶어서 목소리가 그렁그렁한데 뭘."

"아니야. "

"뭐가 아냐?"


"지도 지가 살고싶은대로 살 수 있어."


"........"


"누구나 살고 싶은대로 살 수 있어."


오빠가 엄마한테 연락하길 바라는 것.

그래서 엄마가 슬퍼하지 않길 바라는 것. 

모두 내 욕심이었다. 


오빠도 오빠가 원하는대로 살 수 있다. 


오빠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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