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사무실 옆에는 옷장만한 작은 창고가 있다. 그 창고는 주로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위한 각종 용품을 쌓아두는 듯 했다. 나는 발령 후 줄곧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지만, 창고의 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직장에는 청소하시는 분이 있다. 당연하지만.
어느날이었다.
청소하시는 분 중 한분이 창고의 문을 열고 안에 쌓여있던 도구들을 밖으로 꺼내고, 먼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몇번인가 화장실을 왔다갔다하였지만 그 분의 작업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자기소개를 하며 도와드릴까를 여쭈었다.
"저.....옆 사무실에 있는 사람인데요. 도와드릴까요?"
그 분은 괜찮다며 손사레를 치셨고, 학교에 청소하러 오지만 어디 마음놓고 앉아있을 곳이 없어 여길 치우고 의자를 갖다두려 한다고 하셨다. 그 곳은 내 옷장보다 더 비좁아 보였다. 마대자루 몇개가 초라하게 서 있는 그 공간에 의자를 두고 쉬신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가 하나 비는데 오세요."
원래는 4명이 사용했던 사무실이었지만 지금은2명만 사용하는 약간은 휑한 사무실이었다. 심지어 한개의 책상은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 책상은 널찍했고, 컴퓨터도 있었으며, 인터넷도 당연히 되었다. 하지만 그분은 다시금 손사레를 치시며 청소하는 사람이 거기 들어가면 싫어한다고 했다. 사무실엔 두명밖에 없는데, 우린 그런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니 편안히 와서 쉬셔도 된다고 하였지만 극구 사양하셨고, 결국 내 옷장보다 더 비좁은 그자리에는 작은 의자와 휴대폰 정도가 겨우 거치될 수 있는 작은 책상(설치하신 듯)이 놓였다.
그 분은 청소를 하시다 짬이 나시면 그 작은 문을 열고 그 곳에 앉아 쉬시다 다시 일을 하러 가시곤 했다. 그 분이 그곳에서 쉬실때면 문이 닫히지 않아 발이 문 밖으로 빼곰히 나와 있었고, 나는 그 문을 지나 화장실을 갈 때 인사를 하곤했다.
말이 별로 없으신 분이었다.
어제 오후, 나는 복도로 나왔고 창고 문 밖으로 발 두개가 빼꼼히 나와 있어서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했다.
황급히 돌리는 고개. 여전히 훌쩍거리는 콧물소리.
불행히도 나의 목적지 화장실은 그 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있었다. 그 분은 내가 화장실을 들어간 뒤에도 딸과 통화를 하는 듯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고, 콧물을 연신 훌쩍거리셨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갈까했다. 그러던 찰나 전화기 넘어 언성이 높아졌다.
"엄마. 돈 언제 보내줄꺼야."
성난 젊은 여자의 말이 화장실 벽을 타고와 내 귀에까지 들렸다. 그분은 딸에게 사정하듯, 애원하듯 말했다.
"엄마가. 엄마가 돈 보내줄께. 지금 전화를 못해. 나중에 다시 통화해."
어색한 마음에 다시 사무실로 가기 위해 복도로 나왔지만 작은 창고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아무도 없을꺼라 생각했던 작은 창고. 그 앞을 지나치며 내가 본 것은, 창고 문을 닫고 혼자 훌쩍이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던.
대학생이었던 내가 식당에서 일하는 귀미씨에게 돈달라며 소리를 질렀을 때, 귀미씨도 그랬을까. 어디 식당 구석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게 몸을 집어넣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을까.
대학교 졸업사진 메이크업 비용은 헤어를 포함해서 5만원이라고 했다.
같이 졸업사진 메이크업을 받으러가자던 동기언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용돈을 이미 받았지만 5만원만 더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귀미씨는 내 전화를 받고 어두운 목소리로 줄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4학년이었다. 졸업한답시고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겠다고 귀미씨에게 선언한 직후였다. 물론 그 후엔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깨닫고 다시 과외를 하며 먹고 살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귀미씨는 그간 고생시켜 미안하다며 일년만은 엄마가 어떻게든 뒷바라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 전화를 받고도 한참동안 돈 5만원을 붙이지 않았다. 매일 통장의 잔액을 확인했지만, 엄마는 돈을 넣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어느날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 소리를 질렀다.
그깟 돈 5만원을 왜 못보내냐며.
엄마는 왜 그렇게 무능하게 살았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내 통장에 3만 7천원을 넣었다.
나는 통장의 액수를 보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질렀다. 엄마는 나랑 지금 장난치냐고.
먼 기억이지만 그때의 철없는 나는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연신 미안하다며 꼭 13000원을 더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졸업사진 찍는 날이 되기전에 엄마는 정말 13000원을 더 입금했다.
그때의 엄마는 식당 한구석자리에서 내 전화에 저분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진 않았을까. 쩌렁쩌렁하게 마치 빚쟁이라도 된 양 돈 달라고 하는 자식의 전화에 연신 미안하다며.전화너머로는 들리지 않을 소리로 훌쩍거리며. 그리고 성난 자식의 전화를 황급히 끊고 어디 비좁은 옷장같은곳에 아무도 못보게 몸을 밀어넣고 울진 않았을까.
십수년이 지나 조금은 철든 나는, 오늘 귀미씨에게 미안하다며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