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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Jul 08. 2021

"엄마는 옛날에..."

엄마는 옛날 이야기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식으로 잘 풀어냈다.

"엄마가 옛날에..."

라고 시작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일이 펼쳐질 것만 같다. 사소하게 지나치는 일상의 일들도 엄마의 입을 거치면 조약돌처럼 반짝거리는 예쁜 이야기가 되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생생했고, 상상보다 더 동화같았다. 일상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었지만 그 세상은 내가 꼭 한번 있어보고 싶은 행복한 곳이었다.



엄마는 부산 남포동을 지나갈 땐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주로 했다. 고등학교다닐때 근방에서 무엇을 먹고 그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런것들을 말했다.


엄마의 고등학교 근처에는 부산 오뎅집이 있었단다. 뒤편으로는 공장이고 앞쪽으론 천막이 있는 가게였는데, 가게에선 뒤쪽 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한 오뎅을 팔았다. 그 오뎅집의 오뎅은 특히나 쫄깃하고 고소했는데, 하교길에는 지나치기 힘든 정도라 엄마와 친구들은 매번 들러서 오뎅 하나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날은 비가 왔고, 하교길 엄마와 친구들은 교복이 홀딱 젖은 채로 오뎅집 천막으로 들어갔단다. 비가 오는 바람에 오뎅을 손에 들고 하교할 수 없었던지라 천막 밑에서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날따라 공장에서 꺼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을 받았단다. 그리고 그 맛은 너무나도 따끈하고 쫀득해 비 오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주제도 없고 결론도 없는 엄마의 오뎅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당장 그 오뎅집에서 오뎅을 하나 먹어야겠단 생각에 거기가 어디냐고 했지만 없어진지 오래된 가게였다. 없어진 오뎅집 이야기를 저렇게 거창하게 하는 엄마를 나쁜사람이라고 하고 싶었다.


엄마의 고등학교 근처에는 노천에서 국수를 파는 집도 있었단다. 그런데 그 국수집이 절벽 안 동굴 국수 집 같은거였다며 그때의 장엄한 광경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깍아질 듯한 절벽안쪽에 6.25때 거지들이 살던 동굴이 있었거든. 그 거지들이 다 없어지고 국수 가게가 생겼지. 동굴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안쪽으로 그렇게 깊은 동굴은 아니라서 밖의 경치를 볼 수가 있었어."

"절벽이 컸어?"

"그럼. 엄청 높은 절벽이었지. 돌 색깔이 아름다웠는데 거지들이 어떻게 절벽에 굴을 팠는지 신기할 정도였다니까."


그 절벽동굴의 국수집에선 주로 잔치국수나 우동과 김밥등을 팔았단다. 몇원, 혹은 몇 백원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친구들은 용돈을 받을 날이면 국수를 사먹으러 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지. 참 멋진 곳이었는데 멋지다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그래서 어디에 있는건데?"

"지금은 시멘트로 다 막아버려서 없다."


미슐랭에 올라온 이탈리아 절벽 레스토랑보다 더 가고싶게 설명해놓고 지금은 시멘트로 다 막아버려 흔적도 없다고 말하는 엄마를 악당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남포동을 지나갈 때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런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있을 때면 여지없이 "엄마가 옛날에..."라고 시작하는 멋진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힘든 시절을 다 지나온 엄마의 옛날 이야기는 동글동글하고 아름답다.


꼭 가보고싶은 여행이 있다면,

엄마가 초록색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하교길에 들렀던 오뎅집으로 가서 오뎅 먹는 귀미 옆에서 따끈한 오뎅 하나 먹는 것.

엄마가 용돈을 받은날만 갔다는 그 국수집. 깍아지는 절벽안에서 국수를 먹는 엄마에게

"여기 참 멋지지 않아요?"

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엄마, 이모와의 인도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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