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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Jul 06. 2021

시어머니 소원은 명품가방이다


  22살에 나는 인도를 여행했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 남자들의 공중화장실이 길거리에 오픈된 채, 모든 곳이 다 뚫린채로 있는 것이 이해가지 않았다. 그곳에 서서 태연하게 바지를 내리고 일을 해결하는 인도 남자들은 참으로 더러워보였다. 심지어 오픈 공중 화장실의 지린내가 진동하는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식당에서 앉아 밥을 먹는 인도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한 풍경을 본 것이 대략 15년전의 일이다. 2021년을 살고 있는 현재의 나는 여전히 인도인과 인도 화장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은 단지 익숙한 풍경으로 인식한다.


이해는 안되는데, 익숙해진 어떤 것.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인데, 보통의 경우 연애의 연장선상에서 결혼을 하기 때문에 둘이 비슷할 것이란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착각이다. 결혼과 연애는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과정이 아닌, 개구리와 다금바리같은거다. 한마디로 같은 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연애를 할때엔 남자와 여자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 이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결혼이란 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지루하고 소모적인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 전혀 즐겁지 않다.


서로다른 문화가 만나 컬쳐쇼크가 일어나는 것은 여행에서만 겪는 경험이 아니다.  


 서로다른 문화에서 자라온 남자와 여자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도 배낭여행에서 맛보았던 컬쳐쇼크의 천만배 이상의 쇼크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내가 옳다고, 너는 틀렸다고 수많은 논쟁의 과정을 거친다. 다양한 논쟁의 주제가 있었지만, 남자와 여자의 주요 쟁점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이다. 보통 이 싸움에선 승자가 있고,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자들은 '가정'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지낼 수 있고, 패자는 평생 호구를 잡혀 살게된다. 물론 살아가는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는 언제든 바뀐다.


나의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시어머니 본인을 위한 명품 가방을 사오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러한 요구를 전혀하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에게 인도 화장실을 넘어서는 컬쳐쇼크였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 주는게 소원이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가 그간 말씀하셨던 것을 되새겨보면 시어머니의 소원은 참으로 많았고, 대부분의 소원이 내가, 혹은 나의 남편이 해줘야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신혼여행이 끝난 뒤 시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구찌매장에 가서 가방 하나를 골랐다. 마음에서는 절대 사면 안된다고 하고 있음에도 샀다. 누군가 나에게 소원을 말했던 경우는 살며 처음이었고, 그게 내 남편을 키워준 부모의 첫 소원이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소원이잖아. 소원.'


이 말을 되새기며 똑같은 명품 가방 두개를 샀다. 하나는 우리 친정엄마꺼. 하나는 시어머니꺼.

남편은 내가 명품가방을 안 사줄까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다, 소원풀이 가방 사니깐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시어머니 가져다 드렸더니 이뻐서 좋다며 연신 가방을 쓰다듬으셨다.  


부산으로 내려가 친정 엄마에게도 가져다 줬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내민 명품가방을 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딸, 엄마 이런거 필요없어. 그냥 환불하고 너 비상금써. 정서방한텐 엄마 사줬다 하고 비상금써."

정말 바보같은 말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소리르 빽 질렀다.

"엄마 바보야? 시어머니는 소원이래잖아. 명품가방 받는게 소원이래잖아. 엄마도 받어. 호구처럼 그러지 말고 엄마도 받으라고."

"엄마는 너가 비상금 쓰는게 더 좋아."

"이거 비싼거도 아냐. 그냥 받으라고."


가방을 주려고 해도 사정사정해서 줘야하나.


"딸, 그럼 이거 너 들어. 너 드니깐 이쁘더라."

"아 진짜. 나 이런 가방 필요없어.더 이쁜 가방 많으니깐 엄마나 해."

"그럼 딸이 니가 들다가 엄마가 필요하면 택배 보내줘. 그때 한번씩만 들께. 우리 딸이 드는게 더 이쁘고 좋아."

"아. 진짜. 그만 짜증나게 해."


이깟 가방이 뭐라고 엄마 맘만 아프다. 부산에서 서울가는 길에 엄마가 용돈이라면서 봉투를 쓱 내민다. 나랑 남편이 안 받는다고 손사래를 치니 가방에 꾸역꾸역 쑤셔넣어 어쩔 수 없이 받아왔다. 봉투를 열어봤더니 100만원이 있었다.


- 가방이 100만원보다 비쌀껀데 100만원밖에 못줘서 미안해. 가방 잘 들고 다닐께.-


엄마와 갔던 인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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