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빙스톤 Mar 04. 2023

[인도] 오백만원 할머니




엄마는 언제부터인지 그런말을 자주 했다.


옛날에 어떤 할머니가 아파 몸져 누웠단다. 자식들은 할머니를 고치기 위해서 좋은 병원에 데리고 가봤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좋은 병원을 돌아다녀도 소용이 없자, 자식들 중 한명이 할머니가 자주 가던 동네 의원에 데리고 갔더랜다. 그 동네 의사는 이런 처방을 했다고 한다.


"형편이 되는대로 할머니에게 돈을 마련해서 줘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이 돈을 마음껏 쓰라고 해보세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를 잘 아는 동네의원은 그런말을 했고, 자식들은 십시일반으로 돈 500만원을 마련해 할머니에게 마음껏 쓰라고 했단다. 그렇게 할머니는 일주일동안 500만원으로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나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마음껏 먹고 다녔고,

일주일 후에는 놀랍게도 병이 싹 나았다고 한다.


엄마는 오백만원 할머니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했는데, 내가 저 이야기를 처음 들은건 고등학교 때 쯤인것 같다. 그때는 '아, 저렇게 신기한 일도 있나보다.'라는 생각만 했었고, 사실 나이가 좀 더 든 뒤에는 저 이야기가 뜻하는 바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엄마는 저 이야기를 종종하는데, 난 사실 저 이야기를 듣는게 싫다.  


저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나이가 먹을수록 먹은 나이만큼 불쾌하게 다가왔고, 이상한 무게감마저 들었다.

한번은 엄마가 저 이야기를 하길래

"어쩌라고."

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엄마는 그냥 아무말도 안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저 이야기는 여전히 엄마의 18번 이야기다. 저 말을 할 기회만 있으면 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엄마는 마음대로 한번 써보는게 소원인 사람인 듯 하다.







난 술자리에서 헛소리를 잘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집안 이야기도 잘하고 어렸을 때 집이 망했다는 이야기도 자주한다. 생각해보면 좀 찌질한 것 같기도 하지만, 현재의 나는 전혀 찌질하지 않기에(응?) 그냥 옛날이야기식으로 말하는건데 사람들은 찌질하다고 놀린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저런 헛소리를 자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선영씨가 돈을 좀 드려봐요. 그럼 엄마가 오래오래 살지도 모르잖아요."


지 돈 아니라고 따박따박 말잘하는 냉정한 년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미리 말하지만 이건 좀 찌질할지도 모르겠다.


집이 망한 이후 줄곧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냐는 감정과

그래도 엄마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


그 두가지 감정은 복잡하고 어지럽게 내 마음속에 엉켜있다.


어렸을 땐 사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부모님이 더 힘들었다는 것은 다 큰 후에 깨달았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론 내 자존심과 현실에서 타협하고 투쟁하며 10대와 20대를 보냈던 것 같다.





대학교땐 집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과외를 많이 했다. 다행히 과외를 하기에 용이한 대학에 다녔던 나는 보통 4-5개씩 과외를 달고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 편한 아르바이트는 분명했다. 하지만 난 지금도 '과외'라는 말만 들어도 급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외집을 나와 대학 기숙사로 가는 길은 어두컴컴했고, 가끔은 변태를 봤으며, 아주 종종 이상한 놈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저 안락한 집에서 나와 깜깜한 밤길을 헤치고 기숙사로 가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집에서 과외를 해주는, 내가 가르치는 저 아이들은 참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나도 저렇게 과외를 받으며 걱정없이 자랐다면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줄곧 당신들은 나에게 해준것이 뭐가 있냐고. 내가 서울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건 알기나 알까란 생각에 잠못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영 아무것도 안해준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론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매년 내 생일엔 기숙사로 택배가 왔다. 난 엄마가 사는게 바빠서 내 생일 같은건 안중에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년 내 생일엔 부산에서 택배 상자가 왔고, 그 택배 박스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 몇가지와 과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박스엔 물기에 젖어 잉크가 번진 엄마의 편지도 있었다.


'우리딸 서울에서 많이 힘들지? 생일에 맛있는거 많이 먹고.

엄마가 이것밖에 못 보내줘서 미안해. 생일축하해.'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냐는 감정과

그래도 엄마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


그 두가지 감정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엉키고 엉켜 풀어지지 않고 있다.이제 내 나이쯤이면, 어른스럽게 그 감정의 실타래를 모두 툭툭 풀어버릴 쯤도 되었지만 난 아직도 촌스럽고 철없는 애다.




이전 07화 나 좋으라고 너 사는거 아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