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부터인지 그런말을 자주 했다.
옛날에 어떤 할머니가 아파 몸져 누웠단다. 자식들은 할머니를 고치기 위해서 좋은 병원에 데리고 가봤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좋은 병원을 돌아다녀도 소용이 없자, 자식들 중 한명이 할머니가 자주 가던 동네 의원에 데리고 갔더랜다. 그 동네 의사는 이런 처방을 했다고 한다.
"형편이 되는대로 할머니에게 돈을 마련해서 줘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이 돈을 마음껏 쓰라고 해보세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를 잘 아는 동네의원은 그런말을 했고, 자식들은 십시일반으로 돈 500만원을 마련해 할머니에게 마음껏 쓰라고 했단다. 그렇게 할머니는 일주일동안 500만원으로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나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마음껏 먹고 다녔고,
일주일 후에는 놀랍게도 병이 싹 나았다고 한다.
엄마는 오백만원 할머니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했는데, 내가 저 이야기를 처음 들은건 고등학교 때 쯤인것 같다. 그때는 '아, 저렇게 신기한 일도 있나보다.'라는 생각만 했었고, 사실 나이가 좀 더 든 뒤에는 저 이야기가 뜻하는 바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엄마는 저 이야기를 종종하는데, 난 사실 저 이야기를 듣는게 싫다.
저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나이가 먹을수록 먹은 나이만큼 불쾌하게 다가왔고, 이상한 무게감마저 들었다.
한번은 엄마가 저 이야기를 하길래
"어쩌라고."
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엄마는 그냥 아무말도 안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저 이야기는 여전히 엄마의 18번 이야기다. 저 말을 할 기회만 있으면 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엄마는 마음대로 한번 써보는게 소원인 사람인 듯 하다.
난 술자리에서 헛소리를 잘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집안 이야기도 잘하고 어렸을 때 집이 망했다는 이야기도 자주한다. 생각해보면 좀 찌질한 것 같기도 하지만, 현재의 나는 전혀 찌질하지 않기에(응?) 그냥 옛날이야기식으로 말하는건데 사람들은 찌질하다고 놀린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저런 헛소리를 자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선영씨가 돈을 좀 드려봐요. 그럼 엄마가 오래오래 살지도 모르잖아요."
지 돈 아니라고 따박따박 말잘하는 냉정한 년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미리 말하지만 이건 좀 찌질할지도 모르겠다.
집이 망한 이후 줄곧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냐는 감정과
그래도 엄마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
그 두가지 감정은 복잡하고 어지럽게 내 마음속에 엉켜있다.
어렸을 땐 사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부모님이 더 힘들었다는 것은 다 큰 후에 깨달았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론 내 자존심과 현실에서 타협하고 투쟁하며 10대와 20대를 보냈던 것 같다.
대학교땐 집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과외를 많이 했다. 다행히 과외를 하기에 용이한 대학에 다녔던 나는 보통 4-5개씩 과외를 달고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 편한 아르바이트는 분명했다. 하지만 난 지금도 '과외'라는 말만 들어도 급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외집을 나와 대학 기숙사로 가는 길은 어두컴컴했고, 가끔은 변태를 봤으며, 아주 종종 이상한 놈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저 안락한 집에서 나와 깜깜한 밤길을 헤치고 기숙사로 가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집에서 과외를 해주는, 내가 가르치는 저 아이들은 참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나도 저렇게 과외를 받으며 걱정없이 자랐다면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줄곧 당신들은 나에게 해준것이 뭐가 있냐고. 내가 서울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건 알기나 알까란 생각에 잠못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영 아무것도 안해준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론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매년 내 생일엔 기숙사로 택배가 왔다. 난 엄마가 사는게 바빠서 내 생일 같은건 안중에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년 내 생일엔 부산에서 택배 상자가 왔고, 그 택배 박스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 몇가지와 과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박스엔 물기에 젖어 잉크가 번진 엄마의 편지도 있었다.
'우리딸 서울에서 많이 힘들지? 생일에 맛있는거 많이 먹고.
엄마가 이것밖에 못 보내줘서 미안해. 생일축하해.'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냐는 감정과
그래도 엄마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
그 두가지 감정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엉키고 엉켜 풀어지지 않고 있다.이제 내 나이쯤이면, 어른스럽게 그 감정의 실타래를 모두 툭툭 풀어버릴 쯤도 되었지만 난 아직도 촌스럽고 철없는 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