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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Mar 04. 2023

[캄보디아] 엄마의 발톱






엄마는 내가 기억나는 어린시절부터 엄지 발가락에 무좀이 있었다. 발가락 무좀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발가락과 발톱 사이에 무좀이 가득 껴서 보기에 좋진 않다.
 
엄마 엄지 발가락은 왜 이런거야?”
 
엄마는 젊을 때 산에 등산을 갔는데, 엄지발가락이 돌무리에 탁 걸렸단다. 발가락이 깨졌는데, 그때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했는데 그 후부터 이렇다고. 요즘은 약이 잘 나와서 바르기만 하면 낫는다는데 뭐, 잘 보이는 곳도 아니고 그냥 둔다고 했다.

엄마는 옛날부터 외모를 꾸미는데 도통 관심이 없었다. 돈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본인의 관심사가 외모는 아닌 것 같았다. 정작 외모를 꾸미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가끔 사람들이 늙어보인다고 하거나 예쁘지 않다는 식의 소리를 들으면 속상해 한다. 내 학창시절 엄마는 TV를 켜 놓고 아침마당 같은 프로를 보면서
 
선영아저 여자가 엄마보다 젊어보여?”
선영아저 여자가 엄마보다 예뻐?”
선영아저 여자랑 엄마중에 누가 더 늙어보여?”

 
라는 식의 질문을 자주 했다. 아이구 엄마.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흐릿한 내 머릿속의 기억으로는 몇 번의 솔직한 대답을 했다가 브로콜리 머리의 엄마가 좌절과 실망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아니야엄마가 더 예뻐.”
엄마가 더 젊어보여.”
저 여자는 못생겼어.”

 
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똑똑한 나
 
엄마는 발톱 무좀약을 종종 샀다. 그리고는 바르지 않았고, 왜 안바르냐고 물어보면 양말 신으면 안 보이니깐 안 바른다고 했다. 엄마가 샀던 발톱 무좀약은 집 구석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종종 엄마는 다른 사람보다 크고 못생긴 엄지 발톱에 콤플렉스를 느끼곤 했었다.









 
나는 캄보디아에 파견교사로 있었는데, 그때 엄마와 이모가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들이 놀러오기 전, 여행의 목표를 정했는데 그것은 


엄마이모가 최대한 마사지네일페디 큐어를 받고 돌아가기


 한국에선 값비싼 글루밍이 캄보디아에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렴했고, 엄마와 이모도 이참에 여행에 앞서 많은 글루밍을 받고 돌아가길 바랬다. 동남아 여행이라면 응당 그렇게 여행하는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모와 엄마도 좋아했다.
 







시엠립에 도착한 날. 나는 엄마와 이모를 마사지집에 데려갔고, 다리 마사지와 페디큐어 셋트를 일인당 7달러에 구매해 줬다. 엄마와 이모는
 
아이고불쌍한 아가씨들왜 이렇게 싸게 받고 일을 하는거야.”
 
라고 눈물을 글썽이다가
 
그럼 엄마가 돈을 더 내면 되잖아.”
 
라고 하니 귀미씨 본인은 나한테 돈을 다 뺏겨서 돈이 없다고 했다.
 
엄마를 담당하던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귀미씨 발을 쪼물락 거리며 페디큐어를 해줬다. 엄마의 크고 두꺼운 엄지발가락은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한번도 글루밍이란걸 받지 못했던 불쌍한 귀미씨의 엄지발가락이 말이다.
 
페디 전문가였던 아가씨는 엄마의 크고 두꺼운 발가락을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더니 적당한 도구를 꺼내 이리뜯고 저리뜯고 여기저기를 갈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손길은 다정해서 귀미씨가 아픔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쓱싹쓱싹. 그렇게 한참을 갈아냈을까. 내 눈조차 의심할 정도로 귀미씨의 엄지발톰은 무좀이 사라진 것처럼 깔끔해졌고, 엄마는 7달러로 그렇게 바라던 ‘보통의 엄지 발가락’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고내 발가락 예뻐라아이고 예뻐라.”
 
귀미씨의 만족한 모습을 보더니 글루밍을 해주던 아가씨도 흡족해 했고, 컬러를 고르라고 했다. 엄마는 간만에 꽃단장을 한 발가락을 위해 빨간색을 골랐다. 페디까지 바른 귀미씨의 발가락은 정말 고와보였고, 보기흉한 무좀이 진짜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고마워요내 발가락이 참 예쁘네.”
 
엄마는 페디를 해준 아가씨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본인의 글루밍된 발가락을 한참동안 돌려보며 흡족해했다.

이제 한국에 가서도 가끔 이런걸 받아야 겠다참 곱네.”
 
지난 추석에 부산에 갔더니 엄마의 발톱에는 삐뜰삐뜰한 보라색이 칠해져 있던데 내가 쳐다보는게 부끄러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마 귀미씨는 페디큐어샵에 가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글루밍을 해주는 것을 택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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