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자리의 숨

by 정원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 4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발가락이 너무 시려서 꼼지락꼼지락 거리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기억이 난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여러 집을 보여주셨는데, 아파트는 당연히 제외되었다.

(앞으로도 이 부분은 고민일 것 같다. 아파트의 기억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빌라의 구조가 우리에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지금의 집에 들어왔을 때 너무 좋았던 건 거실 창을 열었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대나무 숲 뷰였다.

봄, 여름이면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져서 더운 줄도 모를 정도였다.

(몇 달 후, 대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려 아쉬웠지만 비워진 자리에도 여전히 숲은 남아있었다. 자연의 생명력은 대단한 듯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이 물고기집에서 치유받고 있는 중이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어서 그런지 자연 그 자체에 기대어 숨 쉬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지금도 거실과 방엔 커튼을 달지 않았고 불필요한 가구들 없이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고 있다.

이 집에서는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일에 마음이 기운다. 미니멀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물론, 채우는 일보다 덜어내는 일이 더 어렵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비워진 공간만큼 새로운 숨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 비움 '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듣는다.


오후가 되면 라디오를 들으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데 책상 옆 창 밖을 가끔씩 바라볼 때면 숲의 다채로운 색감이 가을을 느끼게 해 줘서 고요함과 느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마음에 잔상이 잔잔하게 밀려온다.

우리는 수많은 오늘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고,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조용히 나아간다. 그 수많은 오늘 속에서 우리가 뱉어냈던 많은 말들이 어떤 말이었든지 모두 기억할 순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줬을 수도 희망과 내일을 선물했을 수도 있다.

아장아장 꼬마아이 때부터 말을 배우듯 무르익어가는 나이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침묵을 배운다.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감각이 대신 머무른다.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이,

들리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이 더 진실하다면,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둘러싼 공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이의 속도를 낮춰야 들린다.

빨리 대답하면 놓치는 것들,

잠시 멈추면 들리는 것들,

그 사이에 관계의 깊이가 자란다.

너와 나, 우리라고 하는 연대와 소통의 끈이 자라나는 지점일지도.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 창 밖을 통해서도 자연과의 연대, 소통을 느낀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바람이 분다.

비가 창문을 똑똑 두드리기도 하고,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소리들,

새파란 하늘과 초록잎들이 어우러져 눈이 즐겁기도 하다.

나무들이 춤추고, 벌레가 방충망에 붙어 대화를 시도한다.

이 순간에는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사라진다.

우리는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니다.

자연과의 관계가 단절될수록 마음은 쉽게 닫힌다.



많은 대중매체들이 고립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그 고립의 뿌리는 자연이 사라진 데 있는지도 모른다.

고립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죄책감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보다 그들이 집 안에서도 창 문을 열고 공기와 함께 숨 쉬며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어떻게 하면 심어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친구들은 마음의 치유와 고립의 해소 등을 위해서 명상을 한다.

(나 또한 요가와 명상을 통해서 치유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명상을 ‘잘하는 법’ 만큼이나

명상에서 흐른 의식을 일상으로 데려오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말하는 것은 언제나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자비가 있다.

삶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소음이라고 말하면 소음이 되는 것일 테지만,

우리는 그것을 도시의 이야기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시의 이야기들은 빠르게 흐르며 점점 진심은 얇아지고, 감정은 금방 식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겠지만 우리는 그 반대편에서 바라보며 조용히 듣고 느리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물고기에게는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연습이자 습관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고요를 존중하는 유영의 형태.



물속에서는 말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느낄 수 있고,

눈빛 하나,

물결의 방향,

손짓 하나에도 의미가 담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시 끄고,

서로의 온도에 귀 기울이는 일.


그건 단순한 평화 그 이상일 것이다.




" 그냥... 오늘이 충분히 예뻤어요."




우리의 물고기집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소리보다 느린 사랑을 익히며 깊은 마음으로 스며들며 살아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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