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몸, 집으로의 귀환

by 정원




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나 보다.

머리로는 잊어버린 순간들도,

감정이 사라진 줄 알았던 일들도

몸은 어느 날 갑자기 불러낸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허리가 약간 뻐근하다.

작년 겨울, 나는 갑상선암 수술과 자궁내막증 수술을 했다.

수술대 위에서 버티고 있었던 내 몸이 그 시간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목에 선명한 스마일 모양의 수술 자국은 여전히 따끔따끔 시리고, 자궁 수술 이후로 아침에 일어나는 속도와 움직임은 느려졌다. 지금 내가 머릿속으로 느끼는 나이와, 몸이 움직이는 나이 사이의 간격이 어딘가 맞지 않아 기분이 묘하다. 그래도 몸의 이 느긋함과 느림이 나를 더 차분하게 만들어, 마치 명상 속을 유영하는 듯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오늘의 속도를 알려준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할 필요 없어.

너무 빨리 움직이지 말라고,

조금 더 부드럽게 하루를 시작하라고.



겨울 아침의 찬 공기를 들이마실 때면 매년 너무 행복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차다는 느낌이 든다. 숨을 들이쉬니 기침이 콜록콜록 터져 나온다.

그래도 예전의 좋았던 기억은 여전하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키면, 바람과 공기라는 것에는 계절의 냄새, 먼 도시의 온기,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의 속삭임이 섞여 있다. 그 공기가 나를 다양한 감정과 기억 속으로 데려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겠지만, 겨울은 유난히 움츠러들게 하는 계절이라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핑계를 대며 집 안에 머문다. 하지만 후각을 자극할수록 길거리 포차에서 먹었던 우동이 생각나고, 겨울 거리를 걸으며 손에 쥐고 먹던 붕어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오래도록 아팠던 적이 있었다.

수술을 받기 전,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은 특히 힘들었다.

매일 침대 위에 누워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곤 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 주던 때였다.

숨도 차고 걷기도 힘들었고, 몸은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었는데, 모든 게 버거운 시기였다. 식탁까지 걷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던 날도 많았다.

수술 이후에 어쩌다 보니 도심을 벗어나, 지금 우리가 ‘물고기집’이라고 부르는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는 몸이 점점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집 앞 둘레길을 걷고, 느림에 익숙해지니 단순했던 움직임들 하나하나가 모여 삶의 균형을 되찾은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종종 머리로만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진짜 회복은 조용한 곳으로의 이동과 작은 움직임으로 몸에서 먼저 일어난다.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호흡이 천천히 길어지고,



작은 노력들이 다시 버틸 수 있게 해 줄 때, 비로소 삶이 온전히 돌아온다.

어느 순간, 따뜻한 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빛을 따라 앉는다.

우리 집 강아지들도 함께다. 강아지들은 빛을 따라 그 자리를 침대 삼아, 방석 삼아 웅크리고 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가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듯하다.

이 시간의 평온함이 좋다.

머리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마음이 빛과 함께 서서히 가라앉는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런 시간을 ‘비효율’이라 생각하며 비꼬듯 넘기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겠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몸과 마음을 되살리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집 앞 박물관의 유리벽에 빛이 잘게 쪼개져 반사되고, 그 빛이 다시 하늘로 번진다.

해가 점점 저물 무렵, 온통 세상이 붉게 물들고 동네 진돗개가 짖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그 시간이 모두를 집으로 향하게 한다.

어딘가로 떠난 여행자들, 그리고 일상적인 외출까지, 그 모든 과정이 몸의 기억 안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이다. 삶의 많은 순간들이 그 움직임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의미 있게 쌓여 간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회복하고, 그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깊고 넓은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도 그들의 시간 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고 있겠지?



“돌아간다는 건, 다시 나를 회복하는 일이다.”


세상을 떠나야만 집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집을 떠나야만 세상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배움의 모양으로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배우는 일이고, 배운다는 건 결국 다시 ‘돌아오기 위한 준비’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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