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기술

by 정원





우리는 요즘 '느리게 사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이건 의식적인 노력인데,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점점 더 속도라는 것에 중독되어 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느리게 가져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를 알람은 AM 5시.

그러나 방 안에 스미는 햇살이 스스로 눈꺼풀을 두드릴 때까지 기다린다.

서둘러 일어나려 하지 않고, 하나씩 숨을 들이쉬며 몸의 의식을 깨운다.

어떠한 계획적인 모습으로 시작을 망치지 않게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과 지금이라는 시간이 어디로 흘러갈지 느낄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걸 게으름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느림은 '삶의 감각을 되돌려주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20대와 30대의 숨 막히던 시간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느림 안에서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예를 들면, 숲 속을 걸으며 계절이 바뀌는 냄새를 확인하는 것,

차를 끓이고 디저트를 준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유,

산책하며 스쳐 지나가듯 만나는 누군가의 모습들, 그 눈빛 속 미세한 온도 같은 것들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기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머무름이라는 것이 게으름이 되지 않도록 각자의 호흡을 되찾는 일을 찾아 하루를 보낸다. 빠르게 흘러갈 때도 있고,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갈 때도 있지만 자신의 속도를 찾을 때까지 조용히 멈춰 서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요가의 호흡에서 말하는 Kumbhaka (꿈바카 :들숨과 날숨 사이의 멈춤의 숨)처럼 말이다.



지난날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우리는 많은 노동과(개인 사업으로 인한 부족한 수면과 불필요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힘듦, 공간 기획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등) 시련 속에서 타인이 원하는 작업물들을 만들어 내며 지구에 해로운 재료들, 플라스틱이나 시트지 같은 것들을 다루며, 우리도 모르게 파괴적인 행위를 반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어느 한 챕터 속 추억을 남겨줬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에게는 아프고 병들었고, 예쁜 쓰레기들만 남기는 사람으로 남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일을 내려놓게 되었을 땐 한 편으로는 많은 금전적 사항들을 정리하면서 빚을 지기도 하고,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겪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아찔한 경험들도 많이 하게 되었지만 지금이 행복함으로 다가오는 건 그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 비움과 배움 '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이기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핑계일까? 사실일까?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직업군 속에서 자신 안의 영감을 발현하지 못한 채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기계적으로 허비하고 있진 않을까? - 우리 부부는 과거에 이런 많은 생각을 했었다.)

환경적 파괴의 요소들을 만들었던 행위들을 멈추게 된 건 좋은 일이지만.

(살아가며 회개라는 것을 해야 하나...)



머무름의 기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많은 시간들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알아보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

세상이 모두 제자리에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감각의 파동이 있듯이 우리는 그 진동 속에서 살아 있음을 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에 빗방울이 툭툭하고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고 그 소리들이 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온다. 오일버너에 그날의 취향에 맞는 향을 떨어뜨리고 빗소리와 향기가 어우러졌을 때 시간이 확장되는 듯한 기분이 우리를 머무름에 이르게 했다.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동시에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회전그네에 앉아서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 혹은 부부와의 관계에선 '머무름'이라는 관계의 훈련이 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타인이 하면 정보이지만 가족이나 배우자가 했을 때는 잔소리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로를 고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연습, 조용히 기다려주는 태도 속에서 사랑의 형태가 완성되는 것인데, 나부터도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머무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걸 지도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다가갈수록 골이 깊어질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 다가갈수록 분노할 때도 있으니 그 사이에 머무름의 시간을 집어넣어야 한다.

'충분함'을 앎으로서 더 많은 말보다, 더 많은 행동보다 지금 이 순간이 완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머무름의 기술이지 않을까?



제법 쌀쌀해진 날씨이긴 하지만 초겨울의 밤은 아름답다.

집 앞 박물관 둘레길을 산책하며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

고요하게 멈춤의 시간을 걸으며 그 안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또 다른 내 안의 영감을 깨워본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더 또렷해진 냄새들을 느끼고 잔잔한 소리들도 저 멀리서 다가온다.

바람의 온도와 가로등 빛의 움직임 - 머무름이란 세밀한 감각의 회복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명상은 시작되고 단순한 행위 속에서 하루의 균형을 마무리한다.


물고기 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에서


" 이 조용한 곳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 응. 그럼 그럼 - 느림이 좋구나."


우린 더 이상 세상의 속도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복잡한 도시에선 얻을 수 없던 우리만의 호흡의 리듬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세상을 유영하고 물고기의 영감을 찾으러 떠나기도 한다.)

이러한 머무름의 기술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며


하루를 무리하지 않고,

감정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 태도.

그리고 멈춰 서서 듣고, 바라보고,

그 안에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움직임이 성장이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것이 성숙일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며 가을의 여운을 품은 채 겨울의 첫 고요 속에서 밤하늘의 오리온자리가 선명하게 감싸고 있는 지금 우리 두 물고기는 물고기 집으로 향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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