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와 함께 시간도 짙게 익어간다.

by 정원




아침의 공기는 언제나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는 이유는 창문을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쾌감 때문이다.

창문을 반쯤 열었을 때의 바람의 냄새가 머리를 맑게 해 준다.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새소리는 아름답다. 이따금씩 주기적으로 쓰레기 차가 지나갈 때면 그 조차도 일상의 리듬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이다.

밤새 우리가 머물렀던 침실에서 공기의 흔적과 새벽공기 속 흙냄새, 집 앞 숲 속에서 풍겨오는 가을이라는 계절- 자연의 향기 그리고 어제의 감정이 남은 잔향까지.


그것이 교환되며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고 나서야 하루의 첫 움직임이 시작된다.

가을과 초겨울 어느 사이에 있는 지금, 샌달우드 향을 피워본다.

팔로산토를 태울 때도 있고, 그날의 느낌에 따라서 유연하게 선택하는 편이다.

향을 고르는 일은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어떤 날은 달콤하고, 어떤 날은 깊고 쓸쓸한 냄새를 택한다.

그건 마치 감정의 지도 위에서 ‘ 오늘은 어느 쪽으로 헤엄칠까 ’를 정하는 행위 같다.

향이 피어오르며 공기의 흐름이 바뀌면 그 순간, 집은 다시 숨을 쉰다.


JunO와 나는 30분 동안 각자의 몸을 깨우고 아침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진 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집 근처 둘레길 산책을 나선다.

강아지들은 산책할 때 킁킁대며 바깥세상을 읽으면서 얼마나 행복할까?

그들의 후각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 기관이 아니라 세상과 교감하는 감각적인 곳이다. 강아지의 후각세포는 인간보다 약 1억 배 예민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 것 같다. JunO가 퇴근 후 돌아오는 소리를 우리 집 강아지들이 저 멀리서부터 느끼는 걸 보면 말이다. 사람은 공간을 눈으로 느끼고 인식하지만, 강아지들은 시간, 감정, 거리, 방향을 동시에 냄새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후각을 사용하는 것이 정보가 아니라 세상을 냄새로 대화하는 언어라니... 신기하다. 어릴 때에 맡았던 부모님의 밥 냄새, 동네 냄새, 학교에서의 다양한 수업들을 통해서 맡는 냄새 등 냄새 맡을 일들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냄새를 맡는 행위가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요즘 현대인들은 숨도 한 번 크게 잘 쉬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다.

냄새를 통해서 추억하기도 하고 어떤 영감이 피어오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점점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향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것만큼 선명하게 오래도록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도 없다. 냄새는 기억의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누군가에겐 집이란 공간과 향기가 단지 머무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집과 향은 하나의 우주일지도...

세상의 모든 감각이 교차하고, 시간이 천천히 순환하는 공간이다. 집이란 공간에서 피어나는 향기들은 모두 우리 삶의 문장처럼 집 안에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햇살이 비칠 때마다 다시 피어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루를 여는 방식, 포트기에 물을 끓여 차를 우리는 것, 창문을 여는 타이밍, 향을 피우는 이유 - 그 모든 것이 리듬과 하모니이다. 이 리듬이 세상에서 배운 기술을 집 안에서 다시 새롭게 번역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요함 속에 가끔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그에 반응하는 우리 집 강아지 She.. 어우러짐이 완벽하잖아 …) 지금의 계절이 주는 행복감을 잠시나마 만족하며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지난 시간들 동안에 좋아하는 것들을 배우고 연마하며 채워진 축제이다.

세상을 향해 두드렸던 모든 순간들이 모여 결국 이 공간에서 하루의 향기가 되어 녹아든다.

나는 종종 책장을 넘기다 오래된 책 사이에서 스윗 오렌지의 향기를 맡는다.

이건 어렸을 적 물려받았던 아주 오래된 ‘엣센스’ 국어사전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 겉표지에 붙여뒀던 향기 나는 스티커를 추억하기 위해서 간혹 좋아하는 책 사이사이, 시향지에 스윗 오렌지 오일을 묻혀서 넣어뒀다. (겉표지의 향기 나는 스티커는 사전을 물려주신 분이 붙여둔 것인데 아주아주 오래되었으니 몇 십 년은 되었을 텐데 문지르면 향기가 계속 났었던 것이 너무 좋았다.)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이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그럴 때면 향이야말로 시간의 형태 그 자체라는 걸 실감케 한다.

우리는 향으로 시간을 저장하고, 향으로 채워진 집이라는 공간에서 하루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향을 익히기에 참 좋다.

습도와 온도, 바람의 방향까지도 향의 일부가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마다 달라지는 향의 조합은 우리의 기분과 닮아 있다. 맑고, 깊고, 가끔은 쓸쓸하고, 또 따뜻하다.

향을 통해 반가운 소식이나 때로는 슬픈 소식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있고 세상과 닿아 있는 우리만의 방식들을 느끼게도 해준다.


우리는 종종 말없이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

글을 쓰고,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 사이에 흐르는 오일 버너에서 피어오르는 라벤더 향이 참 좋다. 그렇게 향기 속에서 조용히 감정과 표현의 시간을 나눈다. 그것이 어쩌면 말보다 오래 남는 대화일 것이다.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흐를 때 더 가볍게 흩어지고, 공기가 더 투명하게 느껴진다.


삶도 그러한 것 같다.

어떤 감정들은 잠시 바람이 필요하고, 지나치게 머물면 진심이 답답해진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 속, 향기를 통해서 조금 덜 채우는 용기와 조금 비워둘 여백의 미라는 것을 배웠다.

향과 삶이 닮아있듯 둘 다 ‘적당함’ 속에서 완성된다.

너무 세면 숨이 막히기도 하고, 너무 약하면 존재를 잃는다.

균형은 늘 손끝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해가 지면 풀벌레 소리와 함께 잠시 휴식한다. 대부분의 낮시간을 일에 사용하기 때문에 저녁을 준비하기 전 낮의 피로를 풀어준다. 이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숨결을 되돌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저녁이라고 해서 거창하진 않다. 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에 토마토와 오이를 썰고 조금의 과일과 삶은 계란으로 마무리한다. (주로 저녁은 간단히 해결하려 한다.)

이야기를 하며 밤은 점점 더 짙어지고 오늘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나? 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힐링의 시간이다.

때로는 그 하루의 시간이 각자가 생각한 정답과 다를지라도 괜찮다.

누군가에겐 향이라는 것이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향은 뱡향이고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오늘이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향기가 피어오르면 다시 중심 잡을 수 있는 도구이다.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명상이다.

집 안에 채워진 우리만의 향기 그 자체가 삶을 조율하고, 내면을 정돈시켜 주는 하루였으면 그만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공간 속으로 들어온다.

향기로 채워진 공간에서 오늘을 배우고,

서로를 이해하며,

내일의 문을 연다.



빛으로

소리로

향기로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공간의 향이 시간이 흘러 언젠가 이 집이 비워질 때,

벽 사이에 스민 향기들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공간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공기와 향기를 따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간다.


“오늘도 잘 유영했어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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