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국가 건설사> 후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두 번째 책 : <백색국가 건설사>
장르 : 역사 / 추천 정도 : 상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1910년대 미국의 진보 개혁가들이 배제와 억압이라는 정책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이게 어떻게 제국주의로 이어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이었다. 사회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고, 1893년 시카고와 그즈음의 필라델피아 등을 다루고 있으니 미국 도시에 관심이 많거나, 이곳을 여행하려는 데 과거 그 도시에 어떤 일이 있었나 알고 싶은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1. 왜 골랐는가?
나치 독일은 인종 우월주의에 빠져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하지만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이 독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에 의하면 영국, 프랑스에서도 우생학이 유행했다고 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904년 영국 사회학 대회에서 우생학을 정의 내렸다. 그 시기 앞뒤로 유럽 전역에는 우생학 풍조가 퍼졌다. 각 국가는 이를 제국주의 이론과 연결 짓고 식민지 정책에 밑바탕 삼았다.
과연 ‘대서양 건너 미국은 이런 풍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간 미국이란 국가의 이미지는 대개 합리적이고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미국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특히나 그런 의식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다. 부모세대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로키의 성공신화를 보며 환호했고, 현재 20대는 어벤져스가 ‘자유’라는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보며 환호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합리를 가장한 비합리적 행태가 많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빈의 『백색국가 건설사』는 ‘미국 혁신주의의 빛과 그림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 궁금했던 점을 해소하기에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책의 목차를 봤을 때는 특히 이 책을 통해서 미국의 그림자를 만든 멘털리티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독서를 하면서는 ‘미국에는 합리를 가장한 비합리적 풍토가 있진 않았는가’, ‘그렇다면 합리는 어떻게 비합리로 이어질 수 있었는가’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보았다.
2. 어떤 내용인가?
미국 근대에서 큰 역할을 한 혁신주의는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혁신주의는 주로 ‘아름다움’과 결합했다. 도시를 아름답게, 인종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혁신주의 운동가는 철저하게 스스로와 타자를 구분했다. 못난 타자를 눈에 안 보이게 해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곧 아름다움이라 여겼다. 이는 슬럼가 정화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장애인 단종법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여기에는 자본가들도 큰 역할을 했다. 자본가는 서유럽의 문물을 수입하면서 자본가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정원도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본래 사회주의에서 출발했던 이 운동은 미국에 수입되면서 사회주의적 배경을 지웠다. 서부개척과 철도건설 역시 대자본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정책을 진행했다. 그리고 약 40년 뒤 환경보호에 힘쓴 점 역시 원주민의 자연 친화적 삶은 부정하고 백인이 즐길 정도의 자연보호만 하려 했던 점을 보여준다.
박람회는 이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장소였다. 특히 1893년 시카고 박람회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다. 백색도시를 전시하는 한편, 백인 이외의 인종을 전시했던 이 박람회에서는 미국 혁신주의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3. 어땠는가?
하워드 진(Howard Zinn)은 미국사를 민중의 입장에서 쓰면서 미국의 역사를 비판했다. 이 책은 하워드 진의 작업과 비슷한 궤적을 걷는다. 주목할 점은 박진빈은 미국 바깥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미국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는 책에서 말하는 근대 미국의 기준에서 명백히 타자다. (아마 현대 미국 기준에서도 한국인이라는 국적은 그에게 타자의 지위를 부여할 것이다) 그는 미국 내 주류라고 할 수 없는 동양인 연구자의 시선으로 미국 근대의 민낯을 샅샅이 파헤친다. 특히 근대 미국 사고방식의 한 축을 담당한 혁신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한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자칫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미국 근대사를 쉽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잘 읽히는 문체로 글을 썼다는 점이 가장 좋다. 또한 혁신주의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좋은 점이다. 주거문제, 박람회, 단종법, 이민 제한법 등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미국의 혁신주의와 근대가 품었던 위선을 잘 보여준다. 내부자와 타자를 구분하려는 생각이 어떻게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어졌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혁신주의의 허상을 논증하고자 저자의 논거가 풍부해진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국의 내면을 속속 파헤칠 수 있다.
더군다나 혁신이라는 진보적인 개념이 어떻게 제국주의와 연결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다. 혁신, 개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우리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억압과 압제라는 느낌을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한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 역사를 떠올리면 그 부정적 속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삶을 높이는 것일 텐데 어떻게 제국주의라는 폭력으로 이어졌을까.
우리는 그 연결지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은 복잡계다. 그런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을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근대를 살았던 대다수는 사회를 2차원으로만 바라봤다. 직선을 그려놓고 왼쪽은 퇴화, 오른쪽은 진보라고 생각했다. 혁신주의 운동가도 아름다움이 곧 진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사회 진보를 위해 타자를 희생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 되는 상대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타인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이를 경계하게 된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 책이 가진 내부적 모순이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선적인 사회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혁신주의에 대해서는 그 부정적인 면모를 도식적으로 그려낸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위생문제나 범죄 등은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혹여나 일부 이민자들이 하는 술주정이 그들의 문화라고 하더라도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제해야 하는 문화였을 것이다. 그런 점들마저 혁신주의의 부정적인 면모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는 좀 더 균형 잡힌 미국사를 보급하기 위한 한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미국사 대중서 시장은 통사에 그치거나 미국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제 선택 이유에서 밝혔듯 이런 현실은 한국 사회가 ‘미국 내에서 타자를 배제하고 과학 기술을 위시한 백인 남성의 역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폭력을 인정하더라도 흑인에게 행한 폭력으로 한정되어 있거나, 베트남 전쟁 이후 현대사에 집중된 경우가 많다. 이 책의 편견 가득한 시각으로 미국 안팎을 바라봤던 미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이가 있다. 이런 서술이 쌓이고 나면 지금보다 더 종합적으로 미국 사회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