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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르타르 Jun 14. 2018

당선과 합격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당선, 합격, 계급> 후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세 번째 책 : <당선, 합격, 계급>
"한국 사회는 그런 식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놓쳤을 것이고, 앞으로는 더 많이 놓칠 것이다."(426쪽)

과연 그런 식이 어떤 식인지 궁금하다면? 한국문학을 사랑한다면? 연이은 불합격에 지친 취준생이라면? 문학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면? 한국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사람을 어떻게 뽑을지 고민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일독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민음사, 2018.


#1. 왜 읽었는가?

장강명 작가가 원래 기자 출신인 건 알고 있었다. 그의 소설 <표백>을 재밌게 읽었는데, 문장도 간결해 잘 읽히고, 이야기도 재밌고, 문제의식도 좋았다. 그런 작가가 자신의 강점인 기자정신을 발휘해 문학상과 공채 시스템에 대한 분석을 했다고 하니 기대가 돼서 읽어봤다. 특히나, 취업과 거리가 멀지 않은 시기인 나로서는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2. 어떤 내용인가?

이 책은 독특하게 구성됐다. n장과 n.5장이 있다. n장은 문학상과 문단 안팎에서 있었던 문예운동을 분석한다. n.5장은 문학뿐 아니라 다른 업계, 혹은 사회 전반으로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서 풀어나간다. 논지는 일관된다. 


초반부에서는 장편소설 공모전은 공채 시스템, 특히 근대 이전의 과거제도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당선이나 합격의 문은 좁다. 한번 그 문을 통과하면 합격자의 지위를 쉽게 잃지 않는다. 문학상도 일종의 문학의 위기에 대처하는 문예운동이었지만 지금은 데뷔할 수 있는 길이 그 길 뿐이라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공채 시스템은 공정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조직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합격자는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문학계뿐만이 아니라 언론사, 대기업, 공직 등 많은 업계가 그렇다.


중후반부에서는 간판이 힘을 가지는 이유가 정보 비대칭성에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채 시스템 이외에도 더 많은 평가와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오.. 맞아 맞아 하면서 접다보니 이만큼이나 접었네....두둥!!


#3. 어땠나?

나는 기자가 쓴 책을 좋아한다. 글을 쉽고 재밌게 쓰기 때문이다. 한겨레 21팀의 <4천 원 인생>이 그랬고,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김희경 씨의 <이상한 정상가족>도 그렇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나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 등이 있다. 각각 '노동 문제', '가정 문제', '19세기 말 영국의 열악한 노동 실태', '한국전쟁 시기부터 최근까지 한반도 문제'를 간결한 문체로 전달한다. 취재 혹은 체험을 기반으로 해 내용도 탄탄하다.


취업과 가까운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서 장강명 씨의 분석에 많은 공감을 했다. 많은 취업준비생은 공채 제도라는 바늘구멍에 어떻게 들어갈까를 궁리하고, 떨어지고 나면 들어간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들 이야를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a)을 정보를 달달 외우는 기계로 살아왔고, 대부분 비슷비슷한 경험을 한' 청년들에게 공채제도란 꽤나 그래도 인정할 수 있는 제도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그런 사회를 가능케 한 것이 무엇이냐. 정보 불평등과 간판의 힘이다. 누가 잘하는지 모르니까 문학상 수상작을 찾아보고, 학벌을 보고, 어떤 시험을 통과했는지를 살핀다. 간판보다 능력을 볼 수 있게 정보가 많아져야 한다는 분석에도 동의한다. 특히, 위에서 인증하는 제도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평가가 위주가 되어서 선발되는 사람도 많아져야 한다.


좋은 문제 원인 분석에 나름의 대안 제시까지 제시한 좋은 르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이 오독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는 책 곳곳에 공채 시스템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입시가 문제니까 대학의 간판을 다 떼 버리자, 혹은 새로운 전문학교를 만들어서 작가를 육성하자 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정책결정자들이나 '기업 인사팀에서 그래 공채를 줄이고 경력직을 많이 뽑게 하자!' 혹은 '거봐 역시 노동유연성이 답이네, 성과주의를 더 강화하자!'라는 식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책이 누누이 말하듯, 공채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이라던가, 투명한 정보 공개, 시민들이 요구하는 공정함 등 여러 조건이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도식적으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서 작가는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고 독자의 편견에 일일이 주석을 달았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에서도 이번 작업을 신호탄으로 삼아 치밀하게 '논의'(제멋대로 결정 말고!)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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