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민을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한국에서 자주 들려온다. 주변인들이 주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인데, 이 나이대에 이민을 고민하는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쉽지 않은 취업, 뒷목 잡게 만드는 집값, 아직도 꼰대스러운 직장문화 등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청년들에게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학부를 졸업했던 시절에도 취업은 늘 힘겨웠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대기업에 취업하나 궁금할 지경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고난의 행군이 끝날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조금만 눈을 해외로 돌려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보인다. 미국 경제는 코로나 이후 구직난이 아닌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도 대학졸업자들이 크게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교육계의 혁명가와도 같은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아예 일본으로 학부 유학을 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인구구조를 살펴보면 지금 당장은 몰라도 10년, 20년 뒤 미래가 밝을 거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기본적인 거시경제학만 공부해봐도 이 인구구조가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이 자명하다. 그럼 지도를 펼쳐놓고 이 가라앉는 배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진지하게 들기 시작한다. 우리 눈에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아메리칸드림! 나도 그걸 찾아 2018년 미국 땅을 밟고야 말았다! 허나 내 꿈과 희망이 개박살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이 그토록 높을 줄은 상상을 못했다. 영어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유학갔냐고 욕할까봐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대한민국 좁은 우물 안에서 나름 영어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토익시험을 치며 외고 준비를 했고, 외고에 입학해서도, 대학에서도 외국인과 마주치길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허나 미국에 와서 깨달았다. 나와 지금껏 대화를 해주던 그 외국인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였는지. 특히 같은 또래의 미국인들이 목소리를 깔고 나즈막히 유튜브 2배속의 속도로 얘기할 때면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미국에 나와 찐따 쭈구리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래도 2년쯤 지나고 부터는 적당히 알아듯는 척하는 데에 도가 트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에 나름 적응을 하고 있었다. 조교 세션에서 학부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못 알아듣는 질문이 들어올 때면 언어의 문제를 테크니컬한 문제로 스무스하게 전환하곤 했다. 하지만 미국 온지 4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1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진이 빠진다. 이제 곧 잡마켓에 나가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인이 아닌 한명의 동료, 친구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외국에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10년, 20년을 살아도 디테일에 언어의 장벽이 존재한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지금도 문제가 없지만, 마치 타일러가 한국어하듯 대화를 하려면 정말 각고의 노력과 그에 따른 퀀텀점프가 필요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건강이다. 유학을 나온 후, 내 유튜브 구독 채널들은 각종 의사 선생님들로 가득했다. 그렇다. 건강염려증을 앓게 된 것이다. 대장암, 췌장암, 신우신염, 협심증, 담낭염 등 고민해본 병들이 수십가지에 이른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해외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객사할지도 모른다는, 아주 근원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면서다. 나이가 30에 이르면 각종 질병들이 나와 내 주변인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누가 뭐에 걸렸다더라, 어떻게 됐다더라 아주 틈만나면 들려온다. 특히 유학생들이 어떤 질병에 걸려 뒤늦게 알게됐다는 얘기를 전해듣노라면 평소에 없던 공감능력이 극대화되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쓰라려온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병원을 한번 가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매년 수백만원에 이르는 든든한 보험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내가 보고자하는 전문의를 만나려면 2-3주의 시간이 소요된다. 한국에 갈때면 항상 병원부터 예약해서 각종 장기들의 무사안전을 확인해보는 이유이다.
영어와 건강. 이건 분명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영어공부와 건강관리를 꾸준히하고 주치의와 기회가 될 때마다 건강상태에 대해 상의를 해야한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가족이다. 내 인생의 팔할은 바람이 키웠다고 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역마살을 끼고 살아왔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캐리어 하나에 모든 짐을 싸고 집을 나와 15년 동안 부모님 집에 장기간 거주한 적이 없다. 부모님께 전화 좀 드리라는 핀잔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10여년 이상 듣고 살아왔다. 그런 불효자식도 나이가 들면 부모님을 늘 걱정하게 된다. 씁쓸한 일이지만 우리는 부모님이 항상 지금과 같이 건강하게 평안하게 계실 거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박사유학은 매우 긴 시간이라 도중에 부모님의 병고 소식을 듣는 경우가 정말 흔하다. 나 또한 아버지께서 위암에 걸리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서늘함과 두려움. 당장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다행히 위암 2기에 수술도 무사히 마치셔서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부모님의 건강이 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할 중차대한 변수라는 점은 지워지지 않았다. IMF에 재직하다 지금은 서울대 국제대학원에 계시는 한 젊은 교수님과 식사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철없던 나는 IMF에서의 탄탄대로를 포기하시고 왜 한국에 돌아오셨냐고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덤덤하게 부모님, 장인, 장모님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내려고 그랬노라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별 대수롭지 않게 그 말씀을 듣고 흘렸다는게 의아스럽다.
경제학에서 거주지 결정모형이란 것이 있다. 모형은 누군가 어디에 살지를 고민할 때, 임금, 집값, 직주근접, 생활환경 아주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고려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에 고려되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가족과의 거리, 혹은 고향과의 거리이다. 한 지역에, 한 국가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수도 있다. 호기롭게 해외에 나와 깨닫고 보니,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것만큼 중요한 요소도 찾기 쉽지 않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특히나 더 그렇다. 이제 곧 잡마켓에 나가 직장을 구해야 한다. 5년 전 나라면 학계의 최전선에서 헌신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점을 수치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와 내 주변인들의 행복이 최우선순위가 된 지금, 만약 국내로 돌아가게 된다면 유학을 나올 때와 비슷한 그 설레임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