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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소리 Apr 16. 2022

성공적으로 박사과정을 마치려면

사람이 먼저다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게 되는 인생의 제 1원리는 인생의 많은 요소들, 어쩌면 대부분의 요소들이 내 컨트롤 범위 밖에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능가하기는 힘들고, 선천적인 재능이 있더라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 에컨대, 손흥민, 김연아 같은 선수들은 실력과 운이 모두 따라준 케이스다. 박사과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운은 준비된 사람한테 온다고 했던가. 언젠가 올지도 모를 운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무언가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은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던 덕목이다. 이제 박사과정의 끝무렵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덕목이 필요했었는지를 반추해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 잘 만나기"이다.


유학을 가기 전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이 늘 하던 말이 있다. 지도교수를 잘 만나야 한다는 거다. 지도교수를 잘 만난다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착한 교수가 좋은 지도교수인가? 밥 잘사주는 교수가 좋은 지도교수인가? 좋은 지도교수가 어떤 사람이라고 한들, 그 좋은 교수를 잘 만나려고 하면 뭘 해야하는가? 구체적으로 "이렇게 해"하는 조언은 없고 그저 물 떠다놓고 빌며 모바일게임 가챠하듯이 좋은 교수가 뽑히기를 바라라는 식이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 이것만큼 부질 없고 의미 없는 조언이 또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운이 잘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 성미에도 도저히 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좋은 교수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접근해서, 내 지도교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좋은 교수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첫째로는 분야가 얼추 맞아야 한다. 박사과정 유학을 가기전에 내 분야가 무엇이 될지 모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최소한 내가 절대로 하지 않을 분야를 다 빼고 남은 분야를 내가 할 수 있을 잠재적 전공으로 간주하면 된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갈 학교를 선정할 때 가장 첫번째 고려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학교 선택 시 학교랭킹이 제일 중요하지 않냐고 묻기도 하는데, SKY의 관심도 없는 과를 가서 졸업 후 취업을 제대로 못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이왕이면 내 세부전공과 일치하는 교수가 많은 학교로 가는 것이 향후 진로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


이렇게 내가 할 세부전공 교수들을 추려서 학교까지 선택했다면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박사과정생들한테 컨택을 해야 한다. 학과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학생들의 이메일 주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면 더 좋겠지만 꼭 한국인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무리 바쁜 박사과정생이라 하더라도 이미 합격을 하고 같은 학교로 진학할지도 모를 학생이 컨택을 했을 때 무시할 사람은 거의 없다. 내 경우 합격한 학교별로 2-3명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컨택을 했었는데 답장이 오지 않은 케이스는 한 명도 없었다. 줌미팅을 해도 좋고 이메일로 질의응답을 해도 좋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교수들 한명 한명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파악을 해야할 것이 소위 나와 "케미"가 맞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매일 만나서 결과를 보고하고 그때그때 세세하게 지적하는 교수가 잘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그런 잦은 미팅에 심리적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을 길게 주고 논문의 큰 방향을 바로 잡아주고 지적을 덜하는 교수들이 나을 수 있다. 누군가는 사생활까지 털어놓고 편하게 종종 식사정도는 할 수 있는 지도교수가 좋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히는 교수가 좋을 수 있다. 이건 정말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 그래서 이런 "스타일"에 대해 재학중인 박사과정생들에게 세세하게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는 (1) 논문의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봐주는 교수인가 (2) 학생들과 코웍을 잘하는 교수인가 (3) 자주 미팅을 가질 수 있는 교수인가 였다. 미리미리 열심히 알아본 덕분인지 지금은 지도교수님과 매주 미팅을 가지고 2개의 논문을 공동으로 쓰고 있으며, 내 개인 논문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지적을 해주신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뭐라도 일단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자는 내 소기의 목표에 아주 이상적인 지도교수님이었다.


이런 정보수집 과정을 마치고 지도교수님이 됐으면 하는 분이 2-3명 정도 있는 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크게 보아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날 공산이 크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한 이후에는 최대한 얼굴을 많이 보이고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야 한다. 코스웍을 듣는다면 매주 찾아가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주기적으로 메일을 보내 같이 일할 기회가 없는지 물어보고, 내 관심사가 당신의 관심사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듯이, 이렇게 질척거리다보면 결국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도교수-지도학생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끊입없이 들이댈 수 있느냐는 것도 결국 성향에 달려 있다. 선천적으로 이런 걸 할 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해외에 나와서는 언어의 장벽도 있기 때문에 더욱 심해진다. 이런 후배들한테는 유학을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라는 말을 서슴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적극성은 박사과정 졸업 이후에도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내 연구에 대해, 그들의 연구에 대해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고 내 연구를 발표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런 일에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 업 자체가 결국 스트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성향이라면 스스로에게 훨씬 더 잘 맞고 행복과 가까운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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