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양면성을 이해하며 성숙해진다
최근 "young and rich"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었다. 나이도 어리고 돈도 많다면 세상이 너무 아름답지 않을까? 이런 말이 유행하는 이유도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런데 경제학을 공부하는 너드라 그런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렇게 모순된 두 단어가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나 가계금융 데이터를 보면 당연하게도 나이가 많을수록 자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재용 회장 같은 아웃라이어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운을 제외한 사회구조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인적자본 및 금융자본, 복리의 법칙, 그리고 "시간"이 융합되어 축적되는 것이 자산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트레이드오프(Trade-off)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 어떤 선택이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얘기고, 언제나 원하는 모든 것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이니, 고정환율이니 복잡한 얘기를 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지만 일상생활의 법칙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보편적으로 영과 리치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가치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어린 나이에 부를 추구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트레이드오프의 법칙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욕심은 많은 경우에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너, 나, 우리가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벌고자 한다면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썼듯이 부자가 되는 길은 부자와의 결혼을 제외한다면 크게 사업과 투자로 나눌 수 있다. 두 방법 모두 금융자본을 필요로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통해 자본을 쌓지 못한 어른이들은 소위 말하는 레버리지를 땡겨야 한다. 거기다 경험과 시행착오라는 인적자본을 쌓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사람이 사업과 투자에서 성공할 확률은 다른 경우에 비해 현저히 낮을 수 밖에 없다. 레버리지와 경험 부족이라는 환상의 콜라보로 위험도는 크게 상승한다. 극단적인 경기상승과 하락이 있을 때 젊은층의 파산율이 더 급격히 올라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앤 리치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확률분포 상 극단적인 아웃라이어들은 늘 존재하고 그 리스크를 감내할 자신이 있다면 인생을 건 주사위를 한번 돌려보는 것도 가능하다.
세상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실상 세상이 배신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다. 경제학이 알려주는 가장 유용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시간과 복리의 법칙을 통한 자본의 축적이라고 말하겠다. 자본의 축적은 곧 자산의 축적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놀랄만큼 꾸준하고 빠른 속도로 자본을 축적해왔다. 미국 S&P가 지난 150여년 간 성장해온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KDI, 한국은행은 왜 늘 꾸준한 경제성장을 자신있게 예상할 수 있는 걸까. 그 답은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자본축적에 있다. 자본축적의 법칙을 이해한다면 내 자산을 성장하는 자본에 기대어 꾸준히 축적시키면 된다. ETF, 채권, 대체자산 등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짜는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본질은 아니다. 지인들과 어떻게 하면 투자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얘기할 때면 나는 젊음을 포기하고 확정적인 60세 부자가 되라고 얘기한다. 늙어서라도 부자가 되는 게 어딘가.
인생을 둘러싼 모든 선택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연구자, 사업가, 운동선수, 유튜버가 되고자 한다면 그만큼 내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과 시간을 갈아넣어야 한다. 내가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의 커리어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원하는 결과에는 항상 희생이 따르고, 세상에 "영"과 "리치"를 확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온전히 수용하는 자세. 나는 이것이 곧 성숙함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