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외부 펀딩으로 덴마크에서 박사 하기
첫 번째 박사채용 지원을 실패하고 바로 다음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박사 지원에 매진하겠다는 이유로 퇴사를 한 지 9개월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박사를 시작하기에 그리 이른 나이가 아니라는 것에 점점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다음 채용 공고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고, 나에게 적합한 공고가 나온다고 해도 내가 그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음으로 모색한 방법은 세 번째 루트인 자체 혹은 외부 펀딩을 조달하는 박사과정인 ‘Independent PhD’였다. 이 루트는 학교에 고용 계약된 박사생이 아니므로, 강의 시간을 채우거나 연구 프로젝트에 속해 일해야 하는 의무도 없는 반면, 박사과정 동안 학비를 내야 한다. 덴마크 박사과정은 일반적으로 3년이며, 약 6천만 원 이상의 학비를 내야 한다. 물론 학비는 1년 단위로 할부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이라면 내가 덴마크에서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 조금 더 높은 가능성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돈이었다. 학비와 물가 높은 덴마크의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1억이 훌쩍 넘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학비로 쓸 6천만 원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원에 앞서 먼저 장학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의 경우, 지원 국가나 나이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내게 거의 유일하다고 판단되는 선택지는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제공하는 국비유학 장학금이었다. 국비유학 장학금은 박사 과정의 경우, 3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하며 장학금 금액을 찾아보니 학비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을 듯했다.
또한, 국비유학생은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의 합격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지원가능했다. 반면, 위험 요소로 작용한 것은 지원 시점에 내가 가고자 하는 국가를 정하고, 학교와 전공을 3순위까지 적어서 제출해야 하고, 이 세 곳의 학교 중 하나를 반드시 가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1년에 한 번 모집하는 국비유학생 모집 공고가 마침 올라와있었고, 지원 마감일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이게 될 수 있을까 망설일 여유도 없이 지원 준비를 시작했다.
지원 준비를 하면서 걱정이 되었던 점은 40대를 앞두고 있는 나도 정말 뽑아줄까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늦은 나이 때문에 박사 유학을 고민한다는 사람들의 글이 반가워 클릭해 보면 30대 초반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학계를 잘 안다는 지인은 내가 국비유학생에 지원해 볼 거라고 얘기하니, “그거 젊은 사람들 뽑아주는 거야, 넌 나이 많아서 안돼.” 라며 싹둑 잘라 말하기도 했다. 내 비록 파릇한 새싹은 아니지만 피어보겠다고 애쓰는 싹을 뭉개다니. 물론 나도 뭉갠다고 뭉개지지는 않는지라, 그냥 나는 지원 준비를 계속했다. 걱정이 된다고, 안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지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타인의 선택에 의해 안된 것이야 내 힘 밖의 것이겠지만, 내 선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 일말의 후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도 뽑아주더라. 정확히 말하면, 서류를 통과하고 보게 되는 면접은 블라인드 형식이라 면접관들은 내 나이를 알 수도 없었다.
최종 합격자 발표가 예정된 시간에 나는 성당에 있었다. 선발이 된다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혹시 되지 않는다면, 위로를 받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발표 시간이 되고 좀처럼 마음이 쫄려서 인터넷에서 합격자 발표 명단을 조심스럽게 열어보고 있었는데, 명단을 보기도 전에 “축하해!”라는 메시지가 휴대폰 창에 떠올랐다. 앞서 국비유학을 받아 내가 조언을 얻기 위해 상담을 했던 보낸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를 보자, ’아 됐구나!‘ 하는 마음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합격자 명단 파일을 열었다. 내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이 기회를 원했는지 아는 남편은 전화 너머에서 훌쩍훌쩍했다. 자신이 가진 걸 다 털어서라도 공부를 지원해주겠다고 한 남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진짜 남편이 가진 걸 다 털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3년간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제 펀딩은 마련하였으니, 나는 무조건 내가 가고자 했던 학교에 지원하여 합격을 해야만 했다. 나는 덴마크의 세 학교 중 한 곳을 가는 조건을 충족해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사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단 하나였으며 나머지 두 곳은 그저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자, 이제 학교 지원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장학금을 받은 지 8개월 이후에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다. 그 이후에도 8개월이 더 걸렸다. 이건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