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커리어의 멈춤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하기 위함이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시작은 ‘여자들의 도시 아카이브북: 서울의 기억’을 읽고 난 후였다.
서울에 있는 동료가 저 멀리 덴마크에 있는 나에게 보내준 이 책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7명의 여성들이 서울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책의 뒷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책은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도시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도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기억하는 미세한 삶의 시간과 작은 장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시의 과거의 현재, 다가올 미래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연구하는 것을 주로 업으로 하는 삶을 지내오며 기록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는 항상 인지하고 있었던 차라, 이 글을 읽었을 때 문득 40대를 시작하는, 그리고 한국 여성으로서, 덴마크에서 박사 유학을 하고 있는 경험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박사 유학의 성공스토리도, 갖은 고난 속에서 박사과정을 헤쳐나가는 드라마도 아니겠지만, 그저 이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읽혔을 때, ‘40대에 박사 유학은 이런 이유로 시작할 수도 있구나’, ‘유학 국가로서 덴마크라는 꽤 상대적으로 낯선 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한국 여성의 위치는 이럴 수 있겠구나’ 등 여러 가지 내외부적 환경과 개인의 선택들이 엮여 만들어진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꽤 흥미롭게 들릴 수 있다면 이것을 이곳에 풀어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될 듯하다. 더불어, 덴마크 유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도 조금씩 공유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스스로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기록의 목적 첫 번째는 내 삶을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아직 말하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살아온 삶이 마치 타인의 것처럼 나에게조차 흐려지는 경우들이 생겨나는 것 역시 부정할 수가 없다. 가끔 10년 전 내가 썼던 일기장을 들쳐볼 때면, 그때의 그런 생각을 써내려 나간 내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며, 과거의 나를 통해 지금의 나를 반성할 때도 많았다.
또 다른 이유는, ‘공부’로 시작했던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한 지 약 10년이 되었고, 다시 ‘공부'라는 전환점을 거치는 시점에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스스로 환기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금융회사 회계부서에서 일했던 내가 국제개발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선택했던 것도 공부였다. 그때, 그 1년이라는 공부의 시간은 내가 왜 이 일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끈질기게 다짐하던 시기였다.
그 다짐을 놓치지 않으려 또 다른 다짐들을 해내려 갔지만,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그 굳건한 마음을 가진 그 사람과 분명 동일인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지내오며, 업에서 얻는 배움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쁨을 느낄 때도 꽤 많았지만, 반면, ‘이것도 결국 일이구나’하며 국제개발 ‘산업’의 종사자로서 순응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 순응의 고리를 끊고 다시 다짐을 하고자 나는 박사과정이라는 공부를 선택했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그에 더해서 박사학위라는 자격이 내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다만, 이 과정의 끝이 그저 자격증명서 하나를 안고 다시 업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10년 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내 이야기와 생각을 기록하고, 후일 지금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 반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들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나도 모르지만, 일단 계획은 그러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