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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잔 Nov 25. 2021

일하며 산다는 것 2

005

“돈 벌고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장에 취직했다. 신문방송학사 졸업을 앞둔 취준생은 느닷없이 제조업 종사자가 됐다.


월 이백 정도 벌게 해 준다는 회사는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됐다. 고등학생 때의 아르바이트 이후 두 번째로 면접을 보게 됐다. 면접이라기보다는 설명회에 가까웠다.


단칸 방만한 회의실에서 진행된 면접. 마주 앉은 공장장이 물었다. 신문방송학과잖아. 전공 안 살리고? 질문에 답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꿈이 사라졌다, 당장은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는 장황하고 거짓된 입사 후 포부를 지어내는 재주가 없었다. 아주 솔직하면서도 속세에 찌든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냈다.


뭘 모르는 사회초년생의 내게, 일이란 그저 돈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돈을 벌어서 갖고 싶은 것을 사고, 여행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기자가 되면 박봉, 혹은 수당 없는 초과근무가 삶을 옥죌 것이 뻔했다. 차라리 일과 휴식 시간이 반듯하게 구분되어있고, 잔업수당을 어김없이 매겨주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마트 아르바이트, 생산직 노동자, 잡지사 기자, 품질검사원, 대학 조교, 공정관리자.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도 일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일은 그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 인생 전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자칫 짐짝처럼 여겨질 수 있는 책무를 조금은 내려놓기 위해 나름대로 잔꾀를 부리는 것이다. 또 일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설정했다가 소중한 생애를 낭비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기도.


유일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노동 후의 삶을 대하는 태도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노동 이후의 삶에 충실하려면 마찬가지로 노동에 충실해야 한다. 여가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생계유지의 의미로만 한정하고, 퇴근 후의 시간을 나를 위한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어간다.


이를테면, 나는 주말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데 직장을 통해 생계유지를 할 수 없는 처지라면 이토록 자유로운 취미활동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놀고먹으면서 취미생활만 즐길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생계유지를 위해 적당한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 후의 삶이 풍요로워진 후에야 비로소 노동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행복한 여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적당히 일 할 수 있는 삶을 감사하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일은 재미있어진다는 것. 모두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때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무엇보다 컸다.

(중략) 실마리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회사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수시로 변한다. 변화를 마주하고 힘든 시기에 회사 탓도 해보고 내 탓도 해보면서 알게 된 건, 변한 환경 탓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편이 좋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 마음을 힘들게 했던 건 변한 환경이라기보다 어떤 시도도 해보지 않는 수동적인 자세였다.

모빌스 그룹, 『프리워커스』, RH Korea, 2014. 5, p.37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면서도 일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핫한 모빌스 그룹이다. 퇴사가 트렌드가 되어가는 이 시국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노동문화를 창출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작도 퇴사였다.


모빌스 그룹의 핵심 인물인 모춘, 소호, 대오.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노동문화는 무기력과 번아웃에 시달리던 지난날들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은 일을 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다.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빌스 그룹 사람들과 나의 상황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노동에 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점은 닮았다. 모빌스 그룹은 새롭게 꾸린 노동환경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데, 나는 노동 밖에서 비슷한 답을 발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일은 재미있어진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삶이 윤택해지면 좋겠다. 앞으로의 삶이 그러길 바란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혹은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거나 만들든지. 소중한 삶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노동 후에 그린 그림들. 그라폴리오에서 본명을 걸고 전시 중이다. 주소는 https://grafolio.naver.com/scntim ©타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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