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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작가님께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를 읽고

by 그림형제

조은혜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그림형제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제가 처음 작가님께 불쑥 이메일을 보냈던 때가 올해 4월 초 봄기운이 물씬하던 때였는데 이제 어느덧 가을의 문턱 앞에 와있네요.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이 느껴지는데 아직 한 해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제 책에 추천사를 요청드렸던 갑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고 정제된 언어로 저에게 회신을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작가님께서 써주신 추천사 덕분에 <퇴근의 맛>은 많은 독자분들께 직업의 현실고증이 잘 된 작품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작가님께 추천사를 부탁드릴 즈음에 이미 출간을 준비 중이시라는 말씀 주셨었습니다. 어떤 책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지난 8월 말에 예약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발 빠르게 구입했습니다. 아마도 작가님의 첫 독자 50명 안에는 제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책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를 읽은 후 부족하나마 서평을 써보아야겠다는 마음은 일찌감치 먹었건만 여러 사정들로 인해 이제야 운을 뗍니다. 하지만 저는 다들 쓰는 방식의 서평보다는 무언가 작가님의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저만의 서평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 끝에 이렇게 서신의 형식으로 제가 작가님의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경외감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의 첫 페이지를 펼쳤던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저는 줄곧 한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저 역시 미천하나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작가님만큼의 인간애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 것은 저에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변의 위협조차도 불사하고 강력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을 마주하는 작가님의 용기에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혐오에 휩싸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는 그 측은지심의 마음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긍휼히 여기는 눈길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님이 진솔하게 풀어낸 문장들도 저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문장들 속에서 작가님의 진실된 성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신중한 단어 사용과 섬세한 감정 묘사가 어우러진 문장은 세련되고 멋스러웠습니다. 깊이 있는 필력이 책을 읽는 내내 저를 계속해서 부러움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저는 우리나라의 사법체계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하는 양형뿐만 아니라 재범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형기를 채 마치지도 않은 재범 예약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행태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재범 교사에 대한 미필적 고의라고 밖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를 통해 실질적인 해결과제가 무엇인지를 짚어내 주셨습니다. 책을 통해 말씀하셨듯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바라보는 편견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반성과 교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치료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한껏 목청 높여 강한 어조로 부르짖는 것이 아닌 담담하고 묵직한 문장으로 말입니다. 분노하고 비난할 줄만 알았던 저에게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는 사안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일하는 정신전문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책 한 권 읽은 것만으로 매일같이 삭막한 교도소 건물 안을 오가며 섬뜩한 범죄자들과 마주해 상담을 하시는 작가님의 직업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간호사와는 사뭇 다른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상담과 치료의 대상이 되는 내담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마음이 병든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매일같이 고군분투하는 직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저는 작가님의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정신질환 범죄자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했을 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국민의 생각이 되고 비로소 그것이 정책으로 법안으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이 가지고 계신 정신전문 간호사라는 직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야 할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해 주시고, 커다란 인간애를 실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작가로서 존경심과 부러움을 느끼게 해 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본업에서나 작가로서의 앞날에 늘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모쪼록 다음에 안부 전할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9.09

그림형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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