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서울에서 런던으로

by tasom

12월18일


아빠가 여행 중에 많은 걸 하지 말라고 했다. 한 달 동안 딱 두 개만 바꾸고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격과 생각.


많은 걸 하지 말래 놓고.


오빠가 집에서부터 공항까지 캐리어를 끌어줬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자마자 오빠가 잔소리를 시작했다. 짐 쌀 때 무게 안 재봤냐고, 자긴 늘 운동을 하니까 대충 무게가 감이 잡히는데, 이건 적어도 35kg는 된다고 했다. 짐을 줄이거나, 돈을 더 내야 할 거라고 했다. 공항에서 엄청 쫄면서 캐리어를 컨베이어 위에 올렸다.


23kg였다.



과한 작별인사를 하고 탑승구로 들어왔다. 비행기에 들어오니 약간 후회가 됐다. 폭탄을 들고 탄 사람이 있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최대한 능숙해 보이는 표정으로 앉아서 옆 사람을 기다렸다. 출발 예정 시간이 다 돼서야 들어온 한 가족이 내 뒤에 둘, 옆에 둘 나눠 앉았다. 비행시간 동안 쓸데없이 설렐 일은 없겠구나!


엄마랑 아빠가 뒷줄, 남매가 내 옆. 큰딸은 중학생 즈음 돼 보였는데 아빠가 스마트폰 충전기가 든 가방을 위에 올렸다고 계속 짜증을 냈다. 짜증내는 소리에 나도 같이 짜증이 났다.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대개 한글 더빙에 중국어 자막이었다. 외국 사람 얼굴에서 유창한 한국말이 나오는 게 싫어서 애니메이션을 보기로 했다. <인사이드 아웃>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엄마, 아빠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10년은 못 볼 사람처럼 눈물이 났다.


출발 전에 엄마한테 혼자 와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같이 왔으면 분명히 짜증을 많이 냈을 거다. 엄마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쫄고 있는 게 싫어서. (지금 나처럼!) 그래도 분명히 훨씬 훨씬 좋았겠지. 엄마랑 아빠, 오빠. 당연한 사람들은 이렇게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서야 생각될 수 있나 보다.




옆에 애는 아직도 짜증이다. 딱콩,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결국 아빠가 일어나서 큰 가방을 내려서 주머니를 뒤져서 충전기를 꺼내줬다. 저 애는 꼭 한 번 멀리 혼자 여행을 보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