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쇼디치 꽃시장

by tasom

12월 20일


쇼디치에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꽃시장이 있다. ‘꽃집’이 아니라 ‘꽃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송이, 한 다발이 아니라 꽃을 한 보따리씩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눈을 살짝 감고 꽃향기를 음미하며 인스타용 사진을 찍을 시간은 없다. 사람들 틈에 들어간 순간 내가 걸어야 되는 속도와 방향이 정해진다.


트리가 하나에 20파운드, 두 개 30파운드!

마감시간이 다다를수록 값은 떨어지고 아저씨들 목소리가 커진다. 떨이 트리라니. 시장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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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준비에 덩달아 갈 곳이 많아졌다. 누가 네이비랑 블랙은 절대로 같이 입으면 안 된다고, 절대 안 어울린다고 했었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면 얘를 보여줘야겠다.

"아무래도 튤립을 더 사야겠어요. 금방 갔다 올 테니 여기에 있어요."

할머니가 트리를 고르자, 할아버지가 계산된 트리를 말없이 건네받았다.



다들 복권을 산 것 같았다. 별 거 없을 거 알면서도 당첨 발표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괜히 설렌다. 또 너그러워진다. "1등 되면, 다 때려치우고 세계일주 가자." "1등 되면, 차 한 대 뽑아줄게!" 모두가 쉬는(심지어 지하철도) 크리스마스는 생각보다 더 근사했다. 트리를 꾸미고, 선물을 준비하고, 요리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거실을, 부엌을 특별하게 만든다. 모르는 사람들과 발 맞추어 걷던 명동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