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
옥스퍼드에 도착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다섯 시에 돌아가는 기찬데, 5시까지 비올 확률이 100%다. 언제 물웅덩이를 밟았는지 왼발을 디딜 때마다 신발 안에서 물이 찰방찰방 움직였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펼쳐놓은 장우산이 다시 접힐 정도였다. 우선 찾아갈 곳은 보들리안 도서관과 통곡의 다리였다. 추워 죽겠는데 길은 길대로 헤매다가, 화가 나서 눈 앞에 있는 타이 음식점에 들어갔다. 밥을 먹으면서 돌아갈까 생각했다. 기차표가 25파운드, 1800원을 곱하면 45000원. 스무 살에 처음 알바 했을 때 열 시간을 일해야 벌 수 있던 돈이다. 타지에서는 알뜰해진다.
왔다는 거에 의미를 두자고 생각했다. 우산을 접고, 목도리를 터번마냥 두르고 걷고 싶은 대로 열심히 걸었다. 구글맵을 키고도 못 찾던 보들리안 도서관이 나왔다. 사진 한 장 찍어달라던 커플에게 원래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인 것처럼 sure을 두 번 외쳤다. 사진을 찍어주고 왼쪽으로 몸을 돌리자 통곡의 다리가 나왔다.
제일 궁금했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는 한국 학생증을 보고도 흔쾌히 학생 가격에 표를 내줬다. 연회장을 구경하다가 밖을 내다봤는데 해가 보였다. 아무도 우산을 안 썼다! 이제 막 두 시 반이었다.
현동 오빠는 나를 지구에서 제일 밝은 아이라고 말했다. 찔렸지만 오늘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역에 내렸는데 비가 쏟아졌을 때, 우산이 뒤집어졌을 때, 왼쪽 발이 다 젖었을 때, 원하던 길을 못 찾았을 때. 출퇴근길 회사원들처럼 인상 팍 쓰고 아이씨 중얼거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꾹 참았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경치를 즐기는 여행자 인척, 눈을 크게 뜨고 경쾌하게 돌아다녔다. 그러자 오늘만큼은 하늘도 도와주는 지구에서 제일 밝은 아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