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6일
아침에 씻고 옷 입고 화장하고 나서 다시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이불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돌려놓은 빨래를 널었다.
엄마랑 삼청동에 자주 갔다. 엄마랑은 “한시 반에 현관문에서 만나.”식으로 약속을 정했다. 그때마다 내가 먼저 씻었고,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5분씩 늦었다. 핸드폰 충전기를 챙기고 틈틈이 티비 앞에 멈춰 서서 주인공 이름도 모르는 드라마 재방을 보고 천년만년 눈썹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봤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넥스 몇 장을 뽑고, 무릎을 꿇고 머리카락을 훔쳐내다가 생각했다. 엄마는 준비를 도대체 얼마나 빨리 한 거지?
멍청해지니까 친절해진다. 여기서 나는 꼭 필요한 말밖에 하지 못한다. 익스큐즈 미, 체크 플리즈, 땡큐, 쏘리 같은. 한국에 서면 낄낄거리면서 했을 쓸데없는 이야기나 먼저 물어주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요구는 하지 못한다.
Monmouth라고 커피가 유명하다는 카페에 왔다. 여기는 주로 take-out을 하기 때문에 좁은 테이블이 세 개가 있고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앉고 싶다면)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는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곳에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앉아 있다. 둘, 둘, 하나.
고작 라떼 하나를 마시려고 15분을 기다렸다. 앉을자리가 있냐고 묻자 금발의 바리스타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많았으니 부를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이나 곧 자리가 날 거라고 이야기해주길래 나는 굳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앉은자리에는 앞사람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마 이 사람은 크로와상을 갈가리 찢어먹었을 거다.) 닦아달라고 손을 올리려다가 정신없이 커피를 내리고 있는 그들을 큰 소리로 부를 자신이 없었다. 앞에 냅킨이나 집어서 툭 털어냈다. 뒤늦게 행주를 들고 온 직원이 눈썹을 약간 찡그린 미안한 표정으로 “오, 땡큐”라고 말했다.
나는 별 거 없이, 그냥 입을 다문 덕분에 제일 바쁜 시간에 더 바쁘게 하지 않는 친절왕 손님이 됐다. 순식간에 수 개의 문장을 만들어 뱉을 수 있는 곳에서도 입을 다물고, 기다리고, 웃어주는 서투른 외국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