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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Aug 15. 2022

참외의 다양성

메론향이 나는 사과참외, 속이 무른 가지참외 등 참외의 다양성에 대하여

여름 과일하면 참외가 떠오른다. 삐그덕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온가족이 둘러 앉는다. 형광등 불조차 덥다며 주방 불만 켜두고, 안방에 온 가족이 모여 깎아 먹던 참외 맛을 기억한다. 노란 껍질을 길게 벗기면 새하얀 속이 드러난다. 단맛이 강한 씨부분은 배앓이를 할까 긁어내고, 젓가락에 참외를 꽂아 건네주던 어릴적 장면이 떠오른다.  


참외와 멜론 사이


멜론과 참외는 사촌사이쯤된다고 할 수 있다. 멜론은 식물학에서 두종류로 구분된다. 바로 멜론아종과 참외아종이다. 멜론아종에는 머스크멜론이나 칸타루프, 허니듀와 같이 우리가 아는 멜론 종류가 속해있고, 참외아종에는 말그대로 참외가 속해있다. 심지어 문화어(북한 표준어)로는 멜론이 '향참외'라고 한다. 그만큼 비슷하다.



참외보다 맛있는 참외 ; 사과참외


참외는 어릴적 추억이 있는 맛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참외 먹을래? 멜론 먹을래?' 라고 하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멜론을 택할 것이다. 단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달고, 부드럽고, 향긋한 멜론이 '맛'이 있는 과일로 통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 식당에서 멜론보다 맛있는 참외를 맛보게 되었다.

멜론같은 사과참외

아삭한 식감보다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강한 단맛 그리고 단향까지. 참외보다는 멜론에 가까운 사과참외를 맛본 뒤 현대인들이 사랑할만한 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멜론은 먹기는 좋지만 껍질이 두꺼워 손질이 어렵고, 크기가 커 시장에서 선뜻 손이가지 않는다. 그런데, 사과참외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과만한(혹은 조금 더 큰) 크기에 껍질도 얇다. 생김새도 꼭 색이 옅은 청사과같다. 한 손에 쥐고 껍질을 깎아 내면 멜론같은 달콤한 과육이 드러난다. 위에서 아래로 누른 사과처럼 생긴 모양에 은은한 푸른빛을 띄는 게 꼭 허니듀멜론같기도 하다.

청사과를 닮은 사과참외


도시에서는 알지 못했던 맛이 농촌에는 있다. 껍질이 얇고 쉽게 물러 유통하기 어려운 사과참외가 그렇다. 현대의 작물은 모든 것이 유통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일 때가 있다. 맛보다는 유통하기 수월한 단단하고, 쉽게 물러지지 않고, 색과 모양이 예쁜 작물 위주로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품종 개량도 그렇다. 맛보다는 재배시 병에 이기는 성질(내병성), 수확량이 많은 것, 재배 기간이 짧은 것 등 생산성을 목적으로 개량된다. 재배기술의 발전이 더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지만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이 어려운 사과참외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십년 전만해도 지역민만 즐겨먹던 무화과가 대중화된 현대에 사과참외라고 유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도착하는, 콜드체인시스템으로 신선도가 유지되는 지금 사과참외가 도시민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




문학 속 참외 이야기


1949년에 쓰인 <원두막>이라는 수필에서도 참외 이야기가 등장한다.

노랑참외, 개구리참외, 별종참외(감참외), 가지참외, 청참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달리 사치스러운 맛을 제쳐놓고 그냥 먹은 듯싶고 시원한 것은 까맣게 익은 청참외가 최고다. 또 이없는 할머니들이 숟가락으로 긁어 잡숫기에는 가지참외만 한 것이 없다. 노란 면에 파란 줄이 쭉쭉 간 그 빛깔 하며, 유난히 부드러워 보이는 촉감하며, 나는 어려서부터 집에 참외 선물이 들어오면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길쭉하고 예쁜 가지참외와 배꼽참외만 골라내서 번갈아 업고 다녔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서울에서는 가지참외를 볼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관한 추억과 향수를 담은 수필 <원두막> 속에 등장하는 참외에 대한 표현들이다. 시원한 것은 청참외, 수저로 긁어먹을 정도로 부드러운 가지참외. 사과참외 외에도 이렇게 다양한 참외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있다. 윗세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소규모 농가에서 소수 재배할 뿐이다. 이제는 도시민과 농부가 함께 찾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소멸될지 모른다.


종류가 많은만큼 사용된 용도도 다양하다. 거의 과일처럼 후식의 개념으로 먹는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음식에 두루 사용되었다. 장아찌부터 화채, 김치에 이어 북한에서는 소고기와 함께 국을 끓이기도 했다. 몇년 전 맛본 개구리참외의 슴슴한 맛, 아삭한 식감을 생각하면 과거의 음식법들이 어색하지만은 않다.



다양한 참외가 사라지지 않도록

작은 크기에 단맛이 강하고, 향이 쎈 과일들이 인기다. 2019년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는 칼을 써야하고, 한입에 먹을 수 없는 과일은 소비량이 점점 더 줄어든다고 한다. 배나 감, 참외가 그렇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찾아 먹고, 기록하고,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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