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야 고양이야

#1

by 휘기에

#1


나는 고양이로이다. 거울 앞의 나는 가상(假像)이고 비치지 않는 저 안의 고양이야 말로 진실된 나의 자아이다. 정상에서 벗어난 사고(思考)라고 누군가는 비난하겠으나 내겐 이것이야 말로 진실되다. 정상과 진실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때때로 고양이 울음소리라도 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삶이다. 나의 발성에는 어찌하여 사람의 목소리가 드러나며 어찌하여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삶으로 인해 아파해야 하는가. 왜, 아파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고양이로 살기로 했다.


어찌되든 모방에서 그칠 줄을 안다. 그러나 그날 밤, 거울을 앞에 두고 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와 고양이의 자아와 그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 세 존재들은 어떠한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이루었다는 생각이다. 술을 구할 수 없어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세 잔 따라 한 잔씩 마셨다. 그렇게 나의 모든 편린(片鱗)들은 고양이를 모방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 고양이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1. 고양이 슈트 (누가 보더라도 고양이처럼 보여야 한다)

2. 고양이 분장 도구 세트(이하 동문이다)

3. 고양이 언어 교본Ⅰ, Ⅱ(언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를 인터넷 주문까지 마쳤다. 왜 이런 것들을 인터넷에서 파는 지는 의문이었지만…인터넷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하니 정말이지 오히려 없는 게 이상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내일이면 주문한 것들이 도착할 것이다. 나는 드디어 나를 찾을 생각에 꽤나 흥분에 휩싸이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을 켠 김에 고양이를 검색해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였던 고양이들이 화면 속에 나타났다. 길에서 수백, 수천, 수십만 번 마주쳤던 고양이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정한 고양이가 될 수 없음을 충분히 느낄만한 빈도들이었다. 한 두 번 절망과 마주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 고양이의 또 다른 이름은 절망이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철저한 모방에 들어갈 것이기에, 나는 자신만만히 화면 속 고양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읊조렸다.


나는 고양이다.


설령 이카루스의 날개처럼…근접하다가 녹아 없어질 것이라 해도, 내겐 그것만이 유일한 방도이고 살아갈 힘이었다. 누구든지 나의 상황이었다면 그러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가 절대 가지지 못할 것이 확실한 것을 가진 존재를 보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방이 아니면…무엇 있겠는가. 오늘은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밤이고, 내일부터는 고양이로 살아갈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탈의했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어디에도 걸쳐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고양이로 살기로 한 첫 날 아침이 밝았다. 세상은 어쩐지 좀 더 높아진 기분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작게 움츠려 깨어났다. 방 안에는 옷가지들과 수건, 또는 속옷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으로서의 잔재들이다. 나는 그것들을 치우고 사족보행(四足步行)으로 욕실을 향했다. 아아, 사실 욕실도 사람으로서의 잔재가 아닌가. 나는 내가 사람으로서 너무 많은 시간들을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 스스로가 안쓰러워지면서 작게 울음소리를 내보았다. 야옹- 그것은 인위적인 목소리가 확실했다.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사람으로서 너무 많은 생을 허비한 탓이다. 고양이 언어 교본을 보며 차차 고쳐 나가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마음을 돌리고 보니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내겐 털이 없고 꼬리가 없으며 민첩한 몸놀림 또한 없다. 털과 꼬리야 슈트가 보완해 줄 테지만…몸놀림의 경우 진정한 고양이들은 낙하할 때 안전히 착지하겠지만 나는 반드시 떨어져 죽을 것이다. 영락없는 이카루스의 날개로구나-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고양이로서의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은 객관적으론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관적으로도 추했다. 알몸으로 사족보행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진정한 고양이들은 느끼지 못할 수치심이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그저 가만히…앉아 택배를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은 째깍…째깍…이따금씩 또깍…으로 들려왔으며 밖에선 어째서 진작 눈치채지 못 한 건지 매미가 힘차게 울부짖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세상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은 날이었다. 적어도 내가 관찰 가능한 세계에서는 말이다. 보통의 생물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작은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만이 존재하는…다른 존재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오로지 자신의 공간. 그러나 내게는 그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 나의 세계에서는 나의 세 자아가 서로 끊임없이 신경 쓰는 까닭이다. 어느 하나만을 남기고 모두 목이라도 졸라 죽이지 않는 한, 내게 그런 공간의 소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외부세계에 놓여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이내,

띵동

하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그야말로 올 것이 온 것이다. 나는 나의, 정말이지 마지막 말을 했다.


“현관 앞에 두고 가 주세요.”


소리를 들어보니 현관 앞에 두고 떠난 모양이다. 나는 현관문을 살짝 열고 택배 상자를 안으로 재빨리 들였다. 포장을 풀자 그야말로 <고양이가 되기 위한 모든 것> 정도가 들어 있었다. 이 정도의 준비를 해 주는 그 구매 사이트는…정말 뭐란 말인가. 놀라움에 존경까지 더해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우선 고양이 슈트를 착용해 보았다. 프리 사이즈라고 되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몸에 딱 맞았다. 옆구리 새로 튀어나온 택(tag)을 보니


‘이 슈트는 고양이가 되고 싶은 모든 인간에게 적합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사이즈표는 상관없음.

주의: 이 슈트를 입으면 인간 말을 할 수 없음.’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상관없다, 어차피 고양이는 고양이의 말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나는 슈트를 착용했고, 고양이 분장 도구 세트를 꺼내 보았다. 거기에는 정말…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수염 펜이라던가, 콧망울 브러쉬라던가……. 나는 진정한 고양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거울을 보고 분장을 시작했다. 수염을 그려 넣었고, 콧망울을 검게 칠했으며, 눈에는 렌즈를 집어 넣었다. 그렇게 거울 속의 분장을 마친 나의 모습은


정말이지…영락없는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감격했고, 이토록 <형태적 유사성>을 보일 수 있음에 눈물겹기까지 했다는 기억이다. 살면서, 이토록 감격스러운 날은 없었다. 그날, 그 나의 고양이로서의 첫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신이 나 온 방안을 사족보행으로 뛰어다녔다. 이제 누구도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명제(命題)를 찾은 것이다! 당시의 내게 그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음을, 단순한 유희(遊戱)가 아니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명확히 말하고 싶다.


나는 고양이다.


나는 신이 나 집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매미들이 울부짖는 오후였으며, 해는 사선 방향에 걸려있었다. 길을 걸으며(물론 사족보행인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나는 비로소 내가 실제로 존재함의 기쁨을 느꼈다. 바람은 온순했고 땅은 따뜻했다. 한 걸음 걸음이 새로운 즐거움이라 꼬리가 절로 움직였다. 닐 암스트롱의 발걸음도 이보다 즐겁지는 않았으리라. 실로 이것이야말로 실존(實存)이 아닌가! 간혹 걸으며 몇몇 인파를 마주쳤지만, 그들은 나를 철저히 고양이로 인식하는 듯했다. 몇 마리의 고양이를 마주치기도 했었다. 나는 어떠한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에 무색하게 그들도 나를 고양이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가! 나의 겉모습만 바꿨을 뿐인데 나는 세상에서 고양이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리도 서로를 피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니, 나의 지난 날의 아픔들이 한낱 보잘것없는 공상(空想)으로 치부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의 겉만 스치고 있었던 것인가, 그토록 작은 단서로만 서로를 보아왔던 것인가, 그러한 생각에 잠길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야옹-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