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야 고양이야-(3)

#3,4

by 휘기에

#3

눈을 뜨니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해 있었다. 참 기나긴 꿈이었고, 참 이상한 꿈이었다. 물을 머금은 솜처럼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살펴본 나의 몸은 어제와 같이 그대로였다. 고양이 슈트에…고양이 분장을 한 인간의 모습. 땀을 흘리며 뒤척인 탓인지 얼굴의 분장은 다소 지워져 있었다. 덕분에 고양이와 인간의 중간 정도의 몰골을 하고 있었고…그것은 정말이지 추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지워야겠다고, 슈트를 벗으며 나는 생각했다. 욕실에서 나는 코가 얼얼하도록 클렌징 폼을 문질러야 했다. 내친김에 샤워기로 물을 돌려 온 몸의 땀을 씻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슬비 같은 온수(溫水)를끼얹으며 나는 어제의 일 – 자고 일어나서인지 시간상 ‘어제’로 느껴졌다 – 과 참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꿈을 떠올렸다. 나의 무기력함이 모자에 붙어있는 택(tag)처럼 같이 떠올랐다. 서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온수를 맞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눈가가 뜨거운 것이 아님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이 온수를 끼얹을수록, 거울에서 흐려져 갔다. 서서히 흐려지다가 이내 실루엣만 남기고 모조리 사라졌을 때, 나는 거울 속, 내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큰 귀를 손가락으로 그려 넣었다. 그렇게 서 있으니 어쩐지 그 귀가 내 귀인 것만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문득 웃지 않고는 못 배기기라도 할 것처럼,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수도꼭지전용’으로 되어 있던 마음속 레버를 ‘샤워기전용’으로 옮겼다 해도 믿을 만큼 갑작스레 쏟아지던 웃음이었다. 그때 나의 모습이 어찌나 우스워 보였는지는 이루 적을 수가 없다. 몇 분쯤 웃었을까, 웃음을 멈추고 나는 몹시도 현실적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닦았다. 얼굴에 톡톡 수건을 문지르고 머리를 헝클듯이 수건을 비벼댔다. 배언저리에 묻은 물기를 닦고, 그렇게 겨드랑이, 등, 다리까지 차근차근 닦아 내려갔다. 직접 만져보며 느끼는 나의 신체는 참으로 고양이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라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몽상까지도 잠깐 했다는 기억이다. 그렇게 욕실을 나와 잠시 걸으며 나는 일어났을 때보다 방의 사물들의 형상이 좀 더 잘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고,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살짝 들추자,


지평선 너머로 햇빛이 풀어 헤쳐지고 있었다.


#4

어느 작가는 ‘만약 온 우주에 생명체라고는 오직 인간뿐이라고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다면, 우리는 조금 더 외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외계인까지는 아니어도 지구 상에는 <고양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얼마 존재했다. 이를 알게 된 것은 다소 우연찮은 계기였다. 햇빛이 서서히 번져 나뒹굴고 있던 그 날의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더 이상의 잠을 생략한 채 노트북을 켜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자 했다. 내가 검색한 것은 <고양이>와 그리고 <사람>이었다.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 검색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그렇게 단어로서 나열하여 검색한 것인데, 역시나 불분명한 까닭이었을까 검색된 자료의 수는 정말이지 ‘천문학적인 단위’였다. 고양이가 일찍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고양이의 처세술에 조금 탄복하고 있을 무렵, 나의 시선은 27페이지의 한 문서의 제목에서 멈추었다. 그 문서의 제목은 ‘고양이 2년 차 근황’이었고, 나는 어쩐지 이것이 내가 찾던 내용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클릭했을 때 어느 카페로 이어지도록 링크가 걸려 있었다. 지구에서 27 광년이나 떨어진 어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어느 ‘카페’로 접속되었다.

카페는 지구에서 27 광년, 혹은 그 이상 떨어진 행성답지 않게 익숙하고 낯익은, 그저 평범하고 흔한 인터넷 카페 중 하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평범하고 흔하지 않은, ‘고양이 2년 차’라고 하는 사람의 근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근황’이라 할 것이 길게 써져 있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별 일 없이 산다>

<애인 구함>


이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근황이라 말하는 것과 유사했기 때문에 나는 혹여 대부분의 고양이들도 저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일었다. 그러나 곧, 행동 하나하나에 고양이 또는 인간의 범주를 씌우기는 아무래도 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양이도 인간도 결국 보편적으로 통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고 개별적으로 통하는 것들은 개별적으로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별 일 없이 산다>와 <애인 구함>은 보편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좀 더 그 내용을 자세히 들어가자면, 그는 사람으로서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있고 올해, 고양이로 살아온지 2년 차에 – 이러한 서술에 나는 잠시 위화감을 느꼈다. 고양이로 ‘살아오다’라니. 2년 내리 변장을 한 번도 풀지 않았다는 것인가? – 나름 한 구역의 고양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밝혔다(역시 자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아주 유창한 고양이 어(語) 능력자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고, 고양이 집단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도 이 ‘회화능력’ 덕분이라고 했다. 읽다 보니 ‘근황’보다는 ‘근황을 칭한 자랑’ 정도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무릇 누구든지 간에 ‘잘 풀리는 근황’ 속에 있다면 자랑을 하지 않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