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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an 20. 2023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못해서

가끔은 내게 낯선 단어들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단어가 가끔 생소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만날 때마다 어색하게 지내는 지인처럼 대면대면한 느낌이다. 내겐 그 단어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울타리가 없는 사회 특히 직장에서 선생님 이란 단어는 너무나 낯설었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시죠? 어제 작품 잘 도착했고 몇 가지 문의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아침부터 팀장이 쾌활한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시작했다.

완전 초 짜 인턴 큐레이터였을 시절 난 타이핑을 하며 가만히 그 전화 통화를 엿듣고 있는데,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작가든 박작가든, 홍작가든 팀장이나 다른 큐레이터 선배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왜? 가르치는 사람도 아닌데… 꼭 ‘선생님’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해야 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중학교 때까지만 줄곧 사용했다. 일주일에 5일 등교하면 선생님을 매일같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존경과 애정을 담아 선생님이라고 불러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선생님까지였던 것 같다. 가끔 컴퓨터 학원이나 미술학원에 가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그냥 내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부르는 하나의 소리일 뿐이었다. 그 단어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클 것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해외 생활을 하면서 ‘선생님~~’이라 불러 본 적이 없다.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못했다.



영미권 나라에서는 Ms. 나 Mr.라는 호칭과 이름의 성을 부르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의미의 'teacher'라고 상대를 부르지 않는다. 뭐 부를 순 있겠지만 듣기에 좀 이상하고 너무 형식적이다. 보통은 뭐라고 불러야 좋은 지 먼저 초반에 물어보거나 원어민 친구들이 부르는 대로 따라 한다. 대부분은 자연스레 성이 스미스인 여성 선생님은 미스 스미스 혹은 성이 왓슨인 남자 선생님은 미스터 왓슨으로 불렀다. 당연히 중학생이었던 시절엔 어리니 이것도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쉽지 않았다. 감히 나이 많은 어른들의 이름을 불러? 이상하고 배은망덕한 서양 문화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을 불러주면서 생기는 수평적 관계가 훨씬 합리적인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누가 내 이름으로 불러주는 빈도가 줄어든다고 하니 내 자아를 지켜주는 느낌도 가지게 된다.


업무 상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때 초반에 자주 망설였다.

‘‘선생님’이라 부를까? ‘작가님’이라 부를까?. 아니면 나이가 좀 많으면 ‘선생님’이라 할까?

어린 사람이면 ‘작가’라 불러도 되겠지?’

반대로 '젊은 작가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면 되게 부담스러울 거야’ 라며 호칭 정립만 하는데도 골머리를 썩였다. 왠지 팀장에게 물어보면 너무 사소한 질문일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결국 ‘이정민 선ㅅ… '이라 부르려다, 내가 제자도 아닌데 왜 선생님이라 불러야 하지?라는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어 관뒀다. 한번 선생님으로 부르면 앞으로 만날 작가들에게도 계속 선생님이라 불러야 될 것 만 같았다. 왠지 싫었다.  누가 꼭 강요한 건 아니었지만 여긴 직장이니 암묵적인 룰을 따라야 할 것 만 같았다. 그 누가 선생님이라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직장은 눈치코치로 배우고 알아서 묻어가야 하는 것이니.



고민 끝에 나 자신과 타협을 보았다. 전화를 걸고 씩씩하게 “안녕하세요~ 작. 가. 님.”이라고 불러 버렸다. 작가가 나이가 많든, 나이가 나보다 적든 다 작가님으로 통일해 버렸다. 지팡이를 집고 다니지 않는 예술가들은 무조건 '작가님'이라 불렀다. ‘작가’란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니 매우 포괄적인 단어 아닌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단어인가!

예의를 한 스푼 덜 얹은 것 같은 느낌이라도 내가 더 편한 단어를 사용했다. 정말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 고민을 왜 그리 했을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나만의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계속 로마에 살게 아니라면.



가끔 쇼핑을 하거나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내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내색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난 당신을 가르치지 않았는데요?’ 라며 꼰대 마인드가 슬며시 나온다. 예우를 갖추려는 제스처이지만 왠지 불편하다. 요즘은 가르치는 직업을 하니 자연스레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으며 익숙해지려 하고 있지만 왠지 선생님은 아직 내게 부끄러운 단어이다. 내가 듣기도 부끄럽고 내가 부르기도 부끄럽다. 선생은 내게 가르침뿐만 아니라 삶의 자잘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어서 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사람 이름으로  불려지고 또 불러주는 게 더 좋다. 세종대왕 님이 사람 간의 예의를 중시해서 보편적이며 합리적인 호칭을 만드는 데에는 재주는 없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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