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퍼 존스의 <깃발>

회화를 인식하는 우리의 감각

by 허연재

시카고 미술관에 들락날락하던 대학생 시절,

시카고 미술관 내 모던 아트 컬렉션 전시장에서 마주치던 제스퍼 존스의 작품은 항상 내 시선에 머물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걸리적거렸다. 모르는 척하기에는 책에서 자주 봐서 유명하기는 한데, 왜 유명한지는 그에 대한 지식이 짧아 모르겠고. 현대 미술에 대한 마음이 열리지 않은 시기라 팝아트는 쉽게 가려하는 자들의 야비한 예술이라고 치부했다. 시각적으로 개인적인 취향도 아니니, 굳이? 이란 태새로 몇 번을 무심코 지나쳤던지. 그때 한 번 더 알아가고 다가가줄걸 지금 이렇게 제스퍼 존스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올 거란 걸 알았다면 말이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의 작품은 너무 평면적이었고 , 그 평면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개념들과 그의 시도는 압축되었다.

현대미술에 첫발을 내디딘 대학 새내기인 나 역시 미술에 대해 평면적인 시각 밖에 갖지 못하였으니,

제스퍼 존스와 나의 만남은 문화권이 다른 두 벙어리의 만남 같았다.


제스퍼존스 _느끼하게 생겼다...

제스퍼 존스는 1930년 조지아 주 오구스타에서 태어나 사우스 캐롤리나에서 자랐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미술계의 발전에 영향을 준 핵심 인물 중 하나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와 네오-다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본격적인 미술공부는 뉴욕 파슨스 대학교에서 시작했으며 이후 말보로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영향력 있는 다양한 작가들을 만났다. 이때 로맨틱한 파트너이자 작품에 대한 영감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로버트 로셴버그(Robert Rauschenberg)도 만난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스퍼 존스는 시대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뉴욕 미술 시장의 주류로 움직이던 추상표현주의 스타일의 회화 작품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1954년부터 이 전의 추상회화 스타일을 벗어나 일상적인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존스는 회화의 재현에 대한 개념에 물음표가 생긴 거다. 그림에 그려진 이미지의 실제 존재하는 대상이 있고, 사람들은 재현된 이미지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소비한다. 르네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그려 넣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써놓음에 따라 관람자가 '이게 파이프인 거 같은데, 아니라고? 그럼 뭔데?'라며 혼돈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게 파이프가 될 수 있는 기호적 가치와 의미가 뭐지? 그림이든 기호이든 창작자는 재현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의미를 그대로 맡아드릴지, 아닐지는 관람자의 몫인 거다.


존스는 재현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기호적 의미를 예술에 담아내는데 시험한다. 그래서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설명 없이도 알법한 당연한 소재들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대량소비사회로 진입한 1900년 중반에 넘쳐나는 상업적 광고 이미지들에 노출되어 실제 이미지와 재현된 이미지를 구별하는 감각이 무분별해진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제스퍼 존스의 대표. 작품 <성조기>를 보자. 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지루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이미 눈감고도 아는 미국 국기를 미국 사람이 왜? 한국 사람이 태극기를 크기만 좀 더 확대해서 캔버스에 옮겨 그린거랑 다름없는데? 의아했다.

실제 성조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물감을 상당히 두껍게 썼구나!, 정도다, 존스는 납화법(wax encaustic)을 이용해 두껍고 거친 질감을 살려서 채색을 했다. 색과 붓터치가 지나간 질감은 온도에 예민한 왁스가 굳어버려 보존성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재현된 이미지의 평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 성조기도 납작한데, 평면적인 표면에 이걸 다시 그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성조기(flag), 신문 콜라지, 유책, 왁스, 107.3 ×153.8cm, 1954~55wㅔ스

굳건하고 튼튼해 보이는 대형 성조기는 재현된 이미지에 대한 인식을 건드린다. 보통 그림 속에 이미지를 재현한다고 하면 전통회화에선 입체성을 중요시했었다. 소실점을 사용해서 최대한 현실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비슷하게 그려 넣어 평면 속에서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근대미술이 도래한 이후부터는 이러한 인식이 깨졌다. 이미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가, 더 멀리 나아가서는 에두아드 마네가 회화 전통의 균열을 만들었다. 회화는 그저 평면적인 공간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켰고, 이어서 마르셀 뒤샹의 엉뚱한 행동으로 회화가 굳이 전통 재료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


제스퍼 존스는 네오-다다이즘을 추구하면서 마르셀 뒤샹의 행동과 상반된 성향을 보여준다.

다다이즘 작가 마르셀 뒤샹(Duchamps)은 어느 날 남자 소변기를 가져와 거꾸로 놓은 다음 본인 싸인을 멋있게 한 뒤 미술 작품이라고 출품했다. 일상의 오브제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미술 세계의 혁명이었다.

뒤샹의 <샘>


뒤샹이 입체적인 일상 오브제를 예술의 영역에 끌어들인 거라면, 존스는 우리에게 기호처럼 매우 익숙하게 존재하는 물질적인 사물을 다시 평면적인 예술의 무대장으로 끌어왔다. 숫자, 과녁, 국기, 지도 등 항상 평면에서 마주하는 이 이미지들이 제스퍼 존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예술이 당연히 우리에게 전달해줘야 한다고 여겨졌던 서사와 의미 따위는 과감히 삭제되었다. 이미 삭제되어 ‘무’가 되어버린 듯한 의미를 관람자는 찾으려고 무단히 애를 쓰게 한다. 나도 그 앞에서 정리되지 않은 머리로 바라보기만 했으니까..

. 제스퍼존스 작품 앞에 서서 캔버스의 옆을 바라보기도 하고,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도 관찰해 본다. 재현된 이미지의 의미는 관찰자의 개입으로부터 다시 자라난다. 이 지점으로부터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며 다원적 의미가 생산되는데, 존스의 이러한 시도는 개념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동시에 포스트 모던아트가 시작되는 발판을 만든 셈이다.


사물(오브제)을 가져온다.
그 사물에 무언가를 해본다.
또 다른 무언가도 시도해 본다.
[반복한다]

-제스퍼 존스가 자신의 스케치북에 쓴 노트 (1964)




이미 평면으로 존재하는 것들,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기호들,

이런 것들도 한번 더 꼬아 자신만의 소재로 관둔 제스퍼존스.

그의 그림들은 요즘은 미술시장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개념적으로 상당히 독특한 시도인건 분명하다.


석고상과 과녁. 캔버스에 엔코스틱과 콜라주 및 오브제. 129.5×111.8cm. 1955.



지도, 1961
사채와 거울 2, 1974
그린타겟, 1955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바라보니, 어느새 내맘에>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