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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an 08. 2021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케이크'

팝아티스트 웨인 티보의 유화 작품의 달콤함.

음식이 선사하는 설렘과 놀라움은 오랜만에 여행길을 떠나는 것과 비슷할 정 도로, 익숙해진 나의 생활에 활력을 준다. 작년에 이러한 활력을 준 디저트가 있는데 바로 스페인 디저트 바스크 치즈 케이크다! 맛을 본 순간 “어머나! 이게 뭐야?” 하며 소심하게 놀랐지만 동공은 이미 커질 데로 커졌었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는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바스크 지방에 있는 ‘산 세바스티안’의 한 bar에서 처음 내놓은 메뉴라고 한다. 이 디저트의 정식 명칭은 바의 이름을 딴 ‘Tarta de Queso de La Viña’ (‘라 비냐’의 치즈 케이크)이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


첫 비주얼에 놀랐다. 왜냐고? 너무 못생겨서다. 생딸기나 망고 등 과일을 올린다거나 정교한 프로스팅을 하며 화려함을 돋보이는 케이크는 많이 봤는데, 이건 좀 달랐다.  흔히 아는 각 잡힌 뉴욕 치즈 케이크 조각과도 좀 차이가 있었다.  외관은 매우 심플하면서 울퉁불퉁하고,  겉 표면이 탄 듯 검게 바랜 색과 샛노란 치즈의 대비가 상당히 인공적으로 다가왔다. ‘이걸 먹어도 되나?’ 하는 마음과 ‘치즈 케이크가 맛있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겠지’ 하며 단언했는데, 맛을 본 순간 놀랐다. 겉 표면은 살짝 탄 캐러멜 향이 나면서 흘러내릴 듯한 치즈 케이크의 내부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놀랄만한 점은 치즈케이크의 특유의 느끼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달달한 맛이 포근하게 혀를 감도니 행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저 세상 맛”이라고 감탄할 만큼 지금까지 얕보던 치즈 케이크의 맛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현재 마음속 베스트 디저트의 자리를 차지하는 바스크 치즈 케이크가 내게 주었던 감동과 경험 같은 작품이 있다. 미국 출생 작가 웨인 티보의 유화 회화작품들인데, 티보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 일상 물건들, 풍경을 마치 바비 인형들이 살 것만 같은 공간처럼 창조한다. 티보는 케이크의 프로스팅을 직접 하듯 유화 물감으로 케이크의 보드랍고 입체적인 질감을 표현한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생크림을 처발라 놓은 케이크가 마치 캔버스 표면에서 흘러내릴 듯해서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 보고 싶게 한다. 유화 물감 대신 달콤한 과일과 설탕 향은 덤이다.

(킁킁 어디서 달콤한 향이?...)


티보는 왜 음식을 인공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진열하여 표현한 걸까? 

티보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는 1900년대에 미국이라는 국가 아이덴티티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기차와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수십 년 동안 다녔는데 가는 레스토랑 혹은 호텔마다 다 같이 짠 듯한 비슷한 아침 메뉴와 디저트를 먹었다. 미국은 50 개의 주마다 법률이 다를 정도로 광활한 대지인데 가는 곳마다 비슷한 음식이라니... 사실 대량 생산과 소비문화가 급작스럽게 생겨난 시대였다고 하나, 작은 시골 마을의 빵가게를 가든 대도시의 베이커리와 식당을 가든 머랭 파이, 체리 파이, 선데이 아이스크림, 스테이크 등 똑같은 메뉴로 통일된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이러한 의문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티보는 자신의 먹거리와 추억의 음식들을 하나씩 캔버스에 진열한다.

케이크, 1963


크림이 흘러내릴 듯한 케이크의 표면

티보는 이렇게 당연하 듯 반복되어 지나쳐 버릴 것들을 기념하 듯 회화의 주제로 옮겨온 것이다. 티보가 그린 파이, 케이크, 버블 껌 기계는 그의 유년 시절에서 불러온 주제들이며, 특별하 듯 예쁘게 미화된 듯한 느낌이다.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가 우아한 로코코 스타일 드레스를 입고 먹을 법한 디저트처럼!. 음식의 사실적인 모습보다는 영원히 녹지도 않고 부패되지 않을 것 만 같은 장식적인 모습인데, 파스텔 색의 밝은 채도와 푸른빛이 감도는 그림자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효과에서 온다.  진짜 현실에서 마주치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모형 같기도 하다.


웨인 티보의 작품은 어린 소녀의 취향을 충족시키듯, 여성스럽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듯 유치하고, 키치한 느낌도 들게 한다. 일에 지치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디저트 가게를 찾아 케이크 진열장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데, 티보의 작품을 자꾸만 찾게 되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적으로 바스크 케이크처럼 간결한 형태이지만 달콤한 향과 맛을 선사해줄 것만 같은 욕구를 자극하니 말이다. 올해로 100세를 맞이한 웨인 티보의 '달콤한 취향'이 더 길게 이어지길 바란다.


진열장 안의 케이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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