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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an 15. 2021

누군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초현실주의 에일린 에거와 르네 마그리트의 합동작품

누가 내 작품을 가져가 '숟가락만 살며시 얹어서' 자신의 작품이라 우긴다면 어떨까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흥미로운 글이 있어 공유합니다.


미술이 점차 완벽을 추구하는 미적인 형태보다 무형의 개념이 중시화 되는 흐름 속 초현실주의 역시 새로운 시각 언어를 찾고자 하였고 그들의 언어는 항상 미스테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다다이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초현실주의는 합리주의나 이성주의에 반하며  무의식과 상상으로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방시켰습니다. 이성과 논리를 잠시 망각한 작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남의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교묘한 방법도 용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초현실주의 작가가 타인의 작품에 자신의 창의성을 개입시켜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한 사건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들은 에일린 에거와 르네 마그리트 입니다.

에일린 에거가 "훔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두고 과연 누구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판단인지, 더 나아가 타인의 개입과 예술의 소유권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병에 그린 작품


제2차 세계전쟁 시기 독일의 통치하에 있던 벨기에 작가들은 예술 창작 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빼앗긴 전쟁 중에 구할 수 있는 미술 재료들은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는 시험 삼아 일상적 오브제인 버려진 병으로 회화와 조각 사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창조했는데  <무제(여자-병)> 도 그중 하나이다. 마그리트는 굴러다니는 병으로 25개 이상의 병 작품들을 만들었다.

어느 날, 마그리트는 1961년 MoMa에서 열린 아상블라주 아트 (The Art of Assemblage) 전시 카탈로그에서 자신의 작품 <무제(여자-병)>을 발견한다.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작품이 '이상한 모습'으로 실린 사실을 알아챈 마그리트는 담당 큐레이터인 윌리엄 세이츠에게 유감의 메시지를 보낸다. 기존 작품의 일부분이 아닌 나무로 깎아 만든 희한한 형태의 병마개가 병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도가 섞이지 않은 작품일지언정 마그리트는 자신이 작품의 주인이라며 강하게 주장했다.

르네 마그리트, 무제 (여자-병),  1943  © 2018 C. Herscovici, London / ARS New York



William Seitz. The Art of Assemblage, p. 60  전시 카탈로그


사실 이 뚜껑은 이전 작품의 소유주인 에일린 에가 (아르헨티나 출생 영국 작가, (1899-1991))에 의해 재창조된 작품이었다. 그녀는 1940년 후반 즈음 개인 컬렉션으로 소유했으며, 아프리카 병마개를 병입구에 첨가했다. 이후1950년 후반에 작품 경매에 내놓았을 때 초현실주의 작품 컬렉션의 큰손 이자 현대미술관을 설립한 시카고 출생 조세프 샤피로가 구매했다. 원작자의 의도를 벗어난 병마개가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오브제의 조화와 외관의 미스터리 한 초현실주의적인 특성 때문에 누가 뭐래도 마그리트의 작품이라고 소개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전시 기획자 세이츠의 시선에 사로잡혔을 때는 이미  마그리트가 아닌 에가의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원작자가 또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인 에일린 에거가 되어 버렸다.






마그리트는 이 문제에 대해 알아차렸을 때  내게 화를 내기보다는 작품의 변화에 대해 서글픈 심정으로 항의했고, 이렇게 개조되어버린 작품은 이제 그의 영역이 아닌 점을 언급하며 이제부터 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보장해 주었다.
- 에일린 에거-



이런 상황에서는 미치고 팔짝 뛰며 매우 노할 법한데 마그리트의 태도는 예상 밖이었다. 에가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 마그리트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잣대” 와 "저자의 의도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미 자기 손을 떠나버린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이 애초에 부여한 가치가 손실되니 자신에게 더 이상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에가와 마그리트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대립되는 논쟁을 이어나가지 않은 점은 괄목할 만한 점이다.


에가의 가치관은 원작자 (작가)와 작품 간의 사이에서만 통용되지 않았다.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보다 작품을 관람하는 자들에게 더 부여한 것이다. 에가가 저술한 ‘미술에 대한 노트’를 보면 관람자의 동참이 창의적인 역할을 이끌었다고 언급한다. 자신이 한 관람자로서 마그리트의 작품에 동참을 한 것처럼 말이다. 에가에게 회화는 또 다른 상상을 연습하는 공간이며,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유동적인 특성이 창조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사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러한 작업방식을 미치도록 좋아했다. “아름다운 시체” 게임처럼 “집단 창작”이 개입되어야 논리와 이성이 휘발된 사유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에가는 이 콘셉트를 직접 실천하고자 1993년 블룸즈버리 갤러리에서 열렸던 첫 개인전에서 관람자들을 모아 개인이 원하는 취향대로 이젤에 있는 캔버스를 360도 돌려볼 수 있게 허락하였다.

*아름다운 시체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일부분씩 작업하여 그림이나 글을 완성하는 작업방식을 말한다. 일종의 재미와 놀이 방식으로 초현실주의 앙드레 브레통에 의해 시작되었다.


에가가 이상하게 생긴 병뚜껑을 찾아 '마그리트의 병'에 꽂은 것은 그녀의 작업방식에서 연유한다. 1930년 중반 추상 작업으로 시작한 에가는 우연성을 통해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 꼴라주 기법에 점차 매료되기 시작한다. 해안가에 버려진 쓰레기, 태양에 그을린 동물 뼈, 가정에서 사용하는 천과 오브제와 같은 물건들을 모아 Angel of Anarchy (1936–40)처럼 획기적이며 음산한 꼴라쥬 형태의 앙상블라쥬 작품들을 만들었다.


에일린 에거 작품:Angel of Mercy, 1934/ The Sherwin Collection, Leeds, UK / Estate of Eileen Agar
에일린 에거 작품: 'Marine Object' (1939)© The Estate of Eileen Agar. Photo: © Tate, London 2015


이 작품의 발견은 초현실주의 팬(fan)이라면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건이다. 에가가 마그리트의 항변에 저항했고 마그리트는 강하게 어필하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은 입장에 따라 '두 작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나는 마그리트의 작품인지와 또 다른 한 가지는 이것이 합동작품인지 말이다. 미술관 컬렉션으로 매입되었을 때부터 에가의 부분은 거의 언급되지 않은 채 오롯이 마그리트의 작품으로만 여겨졌고 현재 에가의 병마개에 대한 리서치를 착수했지만 여전히 전시장에서는 (일시적으로) 마그리트의 원작이라고 되어있다. 에가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시작할 때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블로그 운영자에 의해 번역 및 편집된 글이며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원본 출처: 저자: 제니퍼 코헨, 어씨스턴트 리서치 큐레이터

URL: https://www.artic.edu/articles/889/when-eileen-agar-made-a-magritte-he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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