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다작을 하기로 유명했던 파블로 피카소와 견줄 만큼 상당히 많은 작품들을 창작했다. 프린트 작업이라는 빠르고 간편한 작업 방식 덕분에 모든 작품들을 스케치부터 시작해서 장인처럼 완성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재사용해 색 배열만 달리하며 기계처럼 이미지들을 찍어 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대에 절대적으로 적합한 작업 기법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앤디 워홀의 작품이 워낙에 깊이감이 없어 보였고, 과소평가를 했었는데, 요즘 도를 넘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개척자(Pioneer)였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도를 넘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어가는 시점을 이미 훌쩍 지나, 지하철, 버스나 길거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디지털 좀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3분 안에 모두가 유명해질 것"이라는 예언을 했던 그의 말이 현실화되는 현상을 피부로 체험하니 앤디 워홀은 대체 어떠한 재능이 있었는지 궁금해졌고 무엇이 특별했던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앤디 워홀이 좋아하는 거는 뭐지?
앤디 워홀이 잘하는 건 뭘까?
앤디 워홀의 결정적인 선택은 무엇일까?
앤디 워홀은 어렸을 적부터 아주 보통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한참 헤매면서 자랐다. 어렸을 때는 신경통으로 인해 몇 개월 동안 학업을 그만두고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피부도 얼룩덜룩 붉게 변하고 두드러기 같은 증상이 올라오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이었다. 한참 민감한 나이였기에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역시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은 자신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대중 미디어 속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들, 유명인들을 텔레비전, 잡지를 통해 보거나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어린 워홀은 이러한 유명인들을 보며 유명해지고 싶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보통은 어린 시절 아이들은 의사, 소방대원, 경찰, 군인, 화가 등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상상하며 성장하거나 어떤 직업을 통해서 유명해지면 좋기도 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워홀의 꿈은 확실했다.
어떤 직업일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Andy Warhol'이라는 이름을 대면 다 알 수 있을 만한 유명세를 갖는 것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나 평범한 학업이 어려웠지만 워홀에게도 잘하는 것은 있었다. 그가 그림을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라파엘만큼 잘 그려서도 아니었고, 정밀한 관찰력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의 이목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보면 외모가 조각처럼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한편으로 특이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큰 임팩트가 있다.
워홀은 코딱지를 파는 이미지를 그려서 학교 교수에게 모욕감을 주던지 다 완성한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그중에 몇 조각만 다시 재구성하여 제출한다던지, 그가 미술을 대하는 방식은 신사적이진 않았다. 우스꽝 스럽기도 하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나 보통 사람들처럼 타인의 이목을 미적인 것으로 끌지 않았다. 사람들의 궁금증과 유머 감각을 자극하는 심리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창조했다.
앤디 워홀은 뉴욕에서 삽화로 점차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순수 미술 시장은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대게 사람들은 요즘 잘 나가는 것,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보며 잘 먹힐 것을 카피하며 트렌드를 따른다. 그래야 반이라도 간다는 생각이랄까?
그러나 워홀이 가진 예술적 장난스러움과 끼는 20 세기 뉴욕을 장악했던 추상표현주의 흐름에 같이 따라간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당시 미술의 중심을 뉴욕시로 가져온 주인공들은 잭슨 폴록, 헬렌 프란켄텔러, 제스퍼 존스, 마트 로스코 등이 있으며 이들이 추구했던 작품들의 특징은 우선 커다란 스케일로 승부한다. 캔버스가 더 이상 재현적 이미지를 구겨 넣어야 하는 평면 공간이 아닌 아티스트의 주관적 표현, 찰나의 감정을 물감과 작가의 행위가 함께 합쳐져 춤을 추 듯 표현하는 공간이다. 하나의 회화를 만들기보다 나의 이벤트를 만들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물감과 캔버스에 심취하는 동안 그들은 대중들이 알 수 없는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앤디 워홀은 추상 표현주의 작품 속 추상적 표현은 어떤 누구도 해독이 불가능하며 관람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미지에 투영해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욕의 갤러리 무리 들 속에서는 인싸이더들의 작품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앤디 워홀의 관점에서는 아웃사이더의 작품이었다.
앤디 워홀이 원했던 작품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였고 그 재현된 이미지는 20 세기에 새롭게 출몰한 대량 생산물품들이어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워홀의 작품에는 우리가 보면 친근한 코카콜라, 토마토 수프 캔, 청소기, 유명 연예인들, 자동차 등 친근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는 것이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새로 생겨나고 또 하루 자고 나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대량 생산과 소비문화를 체감하며 자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그 누가 봐도 어렵고 미술이라는 편협함과 전문성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에 난해한 추상 표현주의와는 상반된 것이 앤디 워홀의 팝아트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먹고, 보고, 즐기는 그 모든 것이 미술의 주제가 되어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앤디 워홀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선택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을 너무나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었기에 걸어가는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어느 길이든 이 세 가지를 명확하기 기억하고 되새기며 남의 이목이나 판단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뚝심 있게 앞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Don't think about making art, just get it done. Let everyone else decide if it's good or bad, whether they love it or hate it. While they are deciding, make even more art.”
" 예술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해라. 당신이 만든 것이 좋든지 나쁘든지, 사람들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는 그들이 정하게 놔둬라. 그들이 결정을 하는 동안 작품을 더 많이 만들어라."
-앤디 워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