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렛페이퍼 Toiletpaper 현대 스토리지 전시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할 일들이 쌓여 마음을 급하게 만들지만 왠지 오늘은 꼭 외출을 해야 할 것 같은 때.
마치 누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설레서 우선 나가고 본다.
그건 사람도 아니고, 특정 인물도 아니고, 내일까지 붙여야 하는 등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발걸음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을 때 목적지가 없을 때 그냥 나가야 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잠시 몇 시간 뒤로 미룬 뒤 나간다.
#현재전시 를 검색하여 쭉 이미지들을 살펴보다가 내 시야에 단 1초 만에 들어온 이미지가 있었다.
뱀을 거리낌 없이 잡고 있는 손이다. 거부감 들지만 계속 보게 되는 그런 이미지.
그날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전시를 택한다. 아로마 향을 고를 때도 내가 끌리는 향은 내게 부족하여 보완해야 하는 성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같은 시기, 침체된 시기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 불씨를 만들 때 부싯돌이 부딪히며 스파크를 내듯, 삶의 스파크가 필요하다. 그렇게 난 불처럼 매운맛의 토일렛페이퍼의 전시를 보러 가게 되었다.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인 토일렛 페이퍼의 국내 최초 전시는 열렸다.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궁금증을 자극할 만한 특이하고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주로 전시한다. 현대카드 사용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정 하는 전시장 중 하나다. (온라인 결제는 현대카드만 가능하다) 정말 오랜만에 찾았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궁금해하던 찰나 나의 스토커 구글 Google 은 내가 2년 전에 그곳에 다녀갔다고 말해준다. 조금은 소름 끼친다. 구글은 정말 미쳤다. 내가 죽어도 나의 기록은 구글에 남는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나의 기록은 육체와 함께 증발해버리지 않는다.
토일렛페이퍼는 이탈리아 출생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사진작가 피에르 파올로 페라리가 2010년에 함께 만든 독립 매거진의 이름이며 거침없이 독특하고 파워풀한 시각예술이 특징이다. 이 매거진의 콘셉트는 화장지, 두루마리 휴지라는 의미처럼 '간단하고 사실적이며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마케팅을 목적으로 실는 광고나 글이 배제된 순수하게 이미지만으로 선보이는 아트북이며 일 년에 두 차례 발행된다.
이들이 창조한 이미지는 일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바운더리를 완전히 탈피하여 이질감이 들게 한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하지만 한번쯤은 남몰래 상상해보고 그 상상 속에서 머물러봤을 법한 이야기와 시건을 담는 이미지들이다.
붉은 립스틱을 들고 있는 양복 입은 남자들의 손
달걀 옆 선인장
치아에 새겨진 네 글자 SHIT
형형 색색의 꿈틀거리는 뱀들
투시경으로 비춘 듯한 알을 낳는 닭
총을 겨누고 있는 손
1층 전시장은 미로 같이 구성되어있다. 이태리에 있는 토일렛페이퍼의 실제 스튜디오를 옮겨 놓듯, 사무실 풍경을 복제했다. 처음에 입장했을 때 눈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사무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되묻게 된다. "이게 정말 이들의 스튜디오라고?" 아무리 깨끗하게 정리했다고 해도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전시장에는 계속 연속적인 문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할 때마다 다른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마치 놀이동산에 있는 인형의 집에 들어가서 낯섦과 황홀함을 한 번에 느끼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컴퓨터 작업을 하는 작업공간, 거실, 빨래방, 부엌 등 공간은 나눠져 있지만 모든 방을 둘러보다 보면 모든 방이 하나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없이 복제된 이미지들이, 가구, 거울, 카펫, 다구 들까지 모두 점령하여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작업실인지, 부엌인지 어디인지 혼란이 오게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인원 제한이 있어서 다행이지, 여기에 사람들까지 붐빈다고 생각하면 좀 끔찍하다. 왜냐하면 관람객 두세 명과 함께 보아도 내 시야가 너무 정신없어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이미지들을 흡수하고 다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욕심에서 어지럼증이 났다. 아트스트들의 작업실을 보면 각자의 개성과 작업 패턴이나 추구하는 스타일이 보이는데, 토일렛페이퍼는 스튜디오 내부 자체가 곧 작품의 연장선인 듯하다. 그들이 만든 토일렛페이퍼 매거진은 단순히 그들이 창조한 세계를 평면에 옮긴 것뿐이다.
토일렛페이퍼가 창조한 희귀한 이미지들을 보고 있자면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 메렛 오펜하임, 르네 마그리트가 생각이 나게 한다. 이들이 아직 생존해 있었다면 토일렛페이퍼가 이미지를 놀이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에 열광했을 것이다.
코가 눈에 붙어 있든, 내 다리가 내 친구의 다리가 되든, 매니큐어를 정성스럽게 바르고 보니 할아버지의 손톱과 발톱이 되든, 반지를 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발가락에 낀 듯, 모든 것이 당황스럽고 법칙에 순응하지 않아도 개이치 않는다.
초현실주의 작가들도 피상적인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감각들을 계속 간지럽히고 비이성적인 상황이나 장치들을 엮으면서 무심하게 굳어버린 감각들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페라리도 우리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 체계를 살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패션이나 상업 시장에 있어서 다목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이들의 이미지로 토일렛페이퍼라는 브랜드로 우뚝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이들을 본 모두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당신이 하는 작업은 정말로 좋지만 패션계에서는 절대 먹히지 않을 거예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페라리는 내면에서 점점 자신감이 차올랐으며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한다.
“When an image of Toiletpaper works, it works because it provokes different sensations.”
토일렛페이퍼 이미지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날이 온다면, 완전히 차별화된 느낌과 감각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Pierpaolo Ferrari (피에르 파올로 페라리/ 토일렛페이퍼)
요즘 우리는 시각을 통해 맛을 보고, 시각을 통해 촉각을 느끼고, 시각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만큼 우리의 오감은 각자 따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서로 의지하며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용이해졌다. 메타버스, VR, 소셜 서비스 등 4차 산업 기술 발달로, 우리는 직접 여행을 가 필요도, 언어를 배울 필요도, 직접 그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도, 안다.
다 느끼고 간접 체험을 한다.
마치 우리가 맛보고, 들어보고, 다녀온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 다 경험을 해본 듯한 착각된 경험을 거쳐간다.
토일렛페이퍼가 세상에 던진 이 이미지들은 그 경험의 연장선이다, 그것도 강렬한 시각적 언어의 연장선.
전시장의 지하는 토일렛 페이퍼가 창조한 이미지들을 상품화시킨 오브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영국 해롯즈 백화점이나 파리의 봉마르셰 백화점의 쇼룸, 꼬르소 꼬모 같은 편집샵과 별로 차이 없다. 그만큼 미술 전시회라는 생각보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쇼룸에 진열했다고나 할까?
토일렛페이퍼의 기괴한 이미지들이 진입장벽이 높은 패션 산업에서 어떻게 브랜딩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만의 서술적 스토리가 구축이 되어있는지, 컵, 러그, 체어, 테이블 등 사소한 오브제들에서도 느껴진다.
토일렛페이퍼의 매운맛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보니 허기진다. :p
이미지의 매운맛을 보고 싶고 흐릿한 시야를 가진 분들을 위한 전시인 것은 분명하다.
참고자료: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marketing-pr/catching-toiletpaper-vi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