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굴전'이다.
11월 한복판에 비가 내린다. 잿빛의 하늘 아래 노란빛의 은행나무가 거리를 밝힌다. 바스락거리던 낙엽들은 비가 지나가길 숨죽여 기다리고, 고요한 거리에는 빗소리만 가득하다. 바짝 다가온 겨울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들어온 집안에서 포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소파에 앉아 아늑함에 빠져들려던 순간, 길가의 강렬했던 은행나무가 뇌리에 스친다. 무채색 세상에 굳게 서 있던 따스한 온기. 비 오는 날을 밝히는 노란색이라. 문득 오늘 저녁 메뉴는 노릇노릇하게 부친 전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마침 굴뭇국을 끓이고 남은 굴이 냉장고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 생각난다.
그래, 오늘은 ‘굴전’이다.
차가운 성질의 ‘굴’과 따뜻한 성질의 ‘무’가 만난 ‘굴뭇국’만큼이나 따뜻한 성질의 ‘부추’가 만난 ‘굴전’도 궁합이 예술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우윳빛의 굴뭇국이 따듯하게 속을 데워준다면 지글지글 부쳐진 노릇한 굴전은 코 끝을 맴돌던 굴향을 입안 가득 퍼트려 준다. 요즘처럼 춥고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비까지 흩날린다면 속을 달래기에는 국물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뜻하면서도 기름진 고소함이 필요하다.
[굴전]
1. 굴을 소금으로 씻는다.
2. 계란을 푼 후 굴을 넣는다. (이때 부추를 쫑쫑 썰어 같이 섞어도 좋다.)
3.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계란 옷을 입힌 굴을 올려 노릇하게 부친다.
[부추무침]
1. 영양부추를 가지런히 모아 씻는다.
2. 3등분으로 자른다.
3. 볼(bowl)에 자른 부추를 넣고,
양념(다진 마늘, 고춧가루, 간장, 액젓, 참기름, 매실청, 후추 등)을 넣고 무친다.
한 알 한 알 정성껏 부친 굴전을 한 입에 쏙 넣고 씹는다. 탱글한 굴이 톡 터지면서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 굴전이 입안에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면 그 자리에 남은 기름기는 막 무쳐낸 부추무침으로 닦아낸다. 굴 못지않은 강한 향을 가진 부추가 굴의 향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금물이다. 오히려 부추향이 굴향을 살려주면서 느끼한 기름기만을 지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상의 조합을 맛볼 수 있다. 지글지글 소리로 한번, 코 끝에서 향으로 한번, 노릇한 빛깔로 한번, 혀 끝에서 감촉으로 한번, 한가득 퍼지는 고소함으로 한번. 이게 바로 오감만족이 아닐까. 닭볶음탕으로 붉은 단풍을 즐겼다면 굴전으로 노란 단풍을 즐겨보는 것도 가을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