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울 때까지 사랑해보세요
몇 년 전에 '귀여우면 이긴다!'라는 문구가 담긴 귀여운 이모티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긴다'라는 서술어 앞에 붙은 조건이 어색하지요. '강력해서, 위대해서, 압도해서, 실력이 출중해서..' 비교 우위와 경쟁 구도안에 들어가야 어울릴 단어가 아닌, '귀여움'이라는 미소를 유발하는 편안한 조건이 붙으니 '이긴다/진다'의 개념을 벗어나 '최고'라는 개념을 '이긴다'로 돌려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주제를 정하고 쓴다기보다는, 마음이 움직여서 씁니다.
이전 편인 '사랑'이야기를 한 편으로 끝내려니, 사랑은 그렇게 식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때 상대에게 느껴지는 최고의 층위라고 하는 '귀여움'에 대해서 남기고 싶습니다. (어쩌면 사랑의 온도를 태양 표면만큼 올려두고, 서서히 식어도 여전히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고 싶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눈호강을 먼저 시켜드릴게요. (제 사진이 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온라인 게임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클래식 게시판에서 미묘를 두 마리나 키우시는 한 집사님이 자랑스럽게 올리셨던 고양이 사진입니다. 나중에 또 보고 싶어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산책 중에 만나는 강아지들이나 부모님의 손을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포유류의 새끼들은 귀엽습니다. 조류나 파충류, 어류는 작기는 하지만, 육안으로 보자마자 귀엽다기보다는 그들의 서툰 행동에서 귀여움이 비롯되기도 합니다. 종에 따라 편차가 크기도 하고요.
귀여움은 낭만적인 감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갓 태어난 생명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착한 처절하고도 치밀한 '생존 명령 체계'의 결과라고 합니다.
파충류나 어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부터 독립적인 생존 투쟁을 시작합니다. 난황을 다 소모해서 마저 성장하고, 작은 플랑크톤을 사냥하는 아주 작은 물고기들. 몸에 기억된 먹이를 빠르게 삼키며 사냥하는 도마뱀 유체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포유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절대적인 무능력' 상태입니다. 어미가 항상 붙어서 성체가 될 때까지 또는 독립해도 될 시점까지 곁에 머물게 됩니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 아니 단 1시간도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지요.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약하디 약한 새끼가 무자비한 성체(부모)의 자원을 뺏어오기 위해 개발된? 전략이 바로 '귀여움'이라고 본 학자들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이 현상을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라고 정의했습니다. 상대적으로 큰 머리, 툭 튀어나온 이마, 얼굴의 중간보다 아래에 위치한 큰 눈, 그리고 짧고 통통한 팔다리. 이러한 신체적 특징들은 단순히 보기에 기능적으로 좋은 디자인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체의 뇌 속에 깊이 각인된 '선천적 방아쇠(Innate Releasing Mechanism)'를 강제로 당기는 열쇠라고 보았습니다.
현대 뇌과학은 이 '방아쇠'가 당겨지는 속도에 주목해서 연구를 심화하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모튼 크링글바흐(Morten L. Kringelbach)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아기의 얼굴을 보고 뇌의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0.14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는 의식적인 사고가 개입하기도 전의 찰나입니다. 즉, 우리가 "아, 귀엽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뇌의 주의력은 이미 납치당한 상태라는 것이죠.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1976>에서, 이것을 일종의 '조작(Manipulation)'이라고 보았습니다. 새끼들은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비굴하게 애원하지 않지요. 대신 그들은 귀여움이라는 코드를 이용해 어른의 뇌 신경망을 생화학적으로 조작했던 것입니다. 성체가 자신의 에너지를 기꺼이, 아니 필사적으로 쏟아붓게 만드는 생물학적 거부불가능한 강력한 힘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생물학적 해킹(Biological Hacking)'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뇌에 침투해 '공격성'을 차단하고 '양육 모드'를 강제로 실행시키는 해킹. 결국 귀여움이란,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존재가 종(Species) 전체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조종하는,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진화의 승부수인 셈이죠.
흔히 "상대가 멋있어 보이면 반한 것이고, 귀여워 보이면 끝난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도 이 말은 매우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귀여움이라는 감정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왜 우리는 사랑의 절정에서 상대를 '귀여워'하게 되는 걸까요?
먼저 귀여움을 구성하는 재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귀여움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특정한 비율과 행동의 정교한 조합입니다. 커다란 눈, 작은 코와 입, 둥근 얼굴과 짧은 팔다리. 여기에 느릿하고 서툰 동작이 더해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귀여움을 느낍니다.
이 요소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미완성(Incompleteness)'입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것이 '아름다움'이라면, 어딘가 부족하고 서툰 것은 '귀여움'이 됩니다. 즉, 귀여움은 "나 혼자서는 안 돼요"라는 생존 신호를 시각 언어로 번역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니, 완벽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미완성인 요소는 적당히 두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다 큰 성인, 특히 사랑하는 연인에게서도 이러한 귀여움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누군가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당신의 뇌가 '비판적 사고'를 멈췄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입니다.
사랑에 깊이 빠지면 우리 뇌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성적인 판단과 비판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고, 공포나 경계 신호를 보내는 '편도체(Amygdala)'의 기능마저 둔화됩니다. 뇌가 상대방의 단점이나 실수를 분석하는 '판사'의 기능을 스스로 꺼버리고,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옹호하는 '변호사' 모드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긍정적 편향(Positive Illus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상태가 되면 객관적으로는 짜증 날 수 있는 상대의 실수나 엉뚱한 행동조차 필터링 없이 입력되어, 그저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자극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연인을 아기처럼 부르는 것은 단순한 애칭이 아닙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낭만적인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신경 회로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관계 초기의 불타오르는 도파민(흥분) 단계가 지나면,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옥시토신(애착 호르몬)'으로 넘어갑니다. 이때 우리의 뇌는 파트너를 단순한 '성적 이끌림(Eros)'의 대상을 넘어, '내가 보호하고 돌봐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를 '애착의 전이(Transfer of Attachment)'라고 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눈에 띄게 달라지는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심리적 퇴행(Regression)'을 허락하게 됩니다. 밖에서는 점잖고 어른스러운 척 사회적 가면(Persona)을 쓰고 살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혀 짧은 소리를 내거나 유치한 장난을 치기도 하지요. 프로이트는 이를 '자아를 위한 퇴행'이라고 보았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보여주는 이 유치함과 어리광은 "이 모습은 당신 앞에서만 나와요"라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최고의 보안 해제 신호인 셈입니다. 우리는 그 무방비한 모습에서 독점적인 충만감과 함께 귀여움을 느낍니다.
반례를 접하기도 쉽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애교를 보여주지만 귀엽지 않게 느끼셨다면, 그 연예인이 '내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데이트 명소를 홀로 거닐 때, 마주하게 되는 커플들의 애교 넘치는 행위들을 보게 된다면, 오글거리거나 역하게 느끼는 것도 표현과 감정의 대상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심리학자 아론(Aron)은 이를 '자아 확장 이론(Self-Expansion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을 내 자아의 영역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이죠. 상대가 밥 먹는 것만 봐도 내 배가 부르고 귀여워 보이는 이유는, 그가 마치 내 아이나 내 분신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 팔이 안으로 굽듯, 이미 내 자아의 일부가 된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긍정적이고 귀엽게 해석되는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가 귀여워 보인다는 것은, 당신의 뇌가 그 사람을 '생존을 함께할 공동 운명체'이자 '또 다른 나'로 격상시켰다는 증거입니다. 멋진 모습은 긴장을 주지만, 귀여운 모습은 무장해제를 불러옵니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눈에 상대방의 결점조차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면, 인정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뇌는 이미 그 사람에게 완전히 항복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스러운 대상을 볼 때마다 너무 귀여워서 꽉 으스러뜨리고 싶다거나, 깨물어주고 싶다는 과격한 충동,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상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과 상충해 보이는 이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해치지는 않지만 결국 물어버리는 이 행동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자료를 찾아보니, 예일대학교 오리아나 아라곤(Oriana Aragón) 박사팀의 연구에서 이미 답을 내어놨기에 가져왔습니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형적 표현(Dimorphous Expression)'이라는 학술 용어로 설명합니다. 너무 기쁠 때 눈물이 나는 것처럼, 감정이 허용 범위를 초과할 때 뇌가 정반대의 표현을 빌려와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것이죠.
즉, 우리가 극강의 귀여움을 마주하는 순간 뇌에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긍정적 호르몬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뇌가 이 과부하를 진정시키기 위해 '공격성'이라는 찬물을 살짝 끼얹는다는 원리입니다. 그러니 제가 고양이를 보며 이를 악물었던 건, 미워서가 아니라 제 뇌가 비명을 지를 만큼 녀석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물학적 증거였던 셈입니다. 또한 '물거나 해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물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혹은 오늘도 데이트 중에 혹은 일상 중에 아프지 않게 물리셨다면, 귀여워하거나 귀엽게 보이신 것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귀여운 것만 보면 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있게 되는지 궁금했거든요. 일본 히로시마 대학의 닛토노 히로시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귀여움은 인간의 시야를 '좁게(Narrow Focus)' 만든다고 합니다.
평소라면 10분이면 끝낼 일을, 고양이 영상이나 연인의 사진을 뜯어보느라 1시간을 허비해 본 경험, 다들 있으시죠? 연구자들은 이것이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뇌가 '목표 달성 모드'에서 대상을 세밀하게 살피는 '디테일 탐색 모드'로 강제 전환되면서, 그 작은 존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상의 나머지를 아웃포커싱 처리해 버린 결과라는 것입니다. 귀여움은 이렇게 우리의 효율성마저 무너뜨리고, 오직 '대상'에게만 몰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강력한 무기인 귀여움은 아기나 동물들만의 전유물일까요? 나이가 들고 주름이 생기면 우리는 더 이상 귀여울 수 없는 걸까요? 다행히도 심리학자들은 귀여움의 유효기간이 '외모'가 아닌 '태도'에 달려 있다고 조언합니다.
심리학자 엘런 론슨(Elliot Aronson)의 '실수 효과(Pratfall Effect)' 실험에서 사람들은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사소한 실수를 할 때, 오히려 호감도가 급상승한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 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갑옷을 두른 사람에게서 우리는 '유능함'은 느낄지언정 '귀여움'을 느끼진 못합니다. 반면, 자신의 서툼을 인정하고 "도와줘"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사소한 실수에 멋쩍게 웃을 줄 아는 사람에게서는 무해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무해한 위반(Benign Vio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체면이나 엄숙함이라는 규범을 살짝 위반하지만, 그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엉뚱함에서 귀여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어른의 귀여움'은 유치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강한 척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신호를 끄지 않는 용기였습니다.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나의 빈틈으로 기꺼이 초대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늙지 않는 귀여움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단점마저 가리지 않고 보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귀여움은 강함보다 오래갈 겁니다. 강함은 타인을 굴복시키지만, 귀여움은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듭니다. 강함은 경계심을 부르지만, 귀여움은 무장해제를 부릅니다. 생존을 위해 시작된 이 작은 몸짓은, 진화를 거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롭고 강력한 사랑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어서 사랑받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조금 더 헐거워지셔도 됩니다. 당신의 그 빈틈이야말로, 상대방이 당신을 평생토록 귀여워하며 곁에 머물게 할 숨구멍이니까요.
사랑은 식을 수 있지만, 귀여움은 뇌에 새겨진 본능이라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껏 귀여우시길. 그리고 누군가에게 영원히 귀여운 존재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귀여우면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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