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의 관찰자는 괴롭습니다.
시작 글부터, 예고편에 대한 감상평이라니, 주제도 서브컬쳐(애니메이션, 게임)인데 시작마저 특이합니다.
며칠 뒤인 1월 30일에 건담 시리즈의 섬광의 하사웨이 2부 '키르케의 마녀'가 일본에서 개봉합니다. 한국 개봉일은 아직 미정이라 그런지 관심이 좀 더 컸나봅니다.
이 작품, 스토리보다는 연출에 더 눈길이 갑니다. 보통의 SF물이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면, 이 영화는 관객을 철저히 '관찰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주인공의 고뇌는 독백으로 친절히 들려주지만, 정작 우리는 그가 파국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봐야 하니까요. 그 거리감이 참으로 괴롭습니다.
건담(모빌슈트)이라는 거대 병기는 그저 인간들의 갈등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일 뿐입니다. 작품의 핵심 구조는 "불합리한 세계를 자극적인 방법으로 변혁시키려다 실패하는 자"의 뒷모습을 따라가면서,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진 위태로운 삼각관계에 있습니다.
① 하사웨이 노아 (마프티 나비유 에린) 전쟁 영웅 브라이트 노아의 아들이자, 과거 첫사랑(퀘스)이 전쟁터에서 죽는 걸 목격한 PTSD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마프티'라는 가면을 쓰고, 약자를 짓밟는 기득권을 무력으로 제거하여 지구를 정화하려 합니다.
"인류가 모두 우주로 나가면 지구는 회복된다. 그러니 지구에 기생하는 특권층을 사냥하겠다."
이 과격하고도 순진한 이상론은, 한 여자를 만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립니다.
② 기기 안달루시아 하사웨이의 본심과 정체를 꿰뚫어 보는 미스터리한 여성입니다. 하사웨이는 그녀에게서 죽은 첫사랑의 환영을 보고 매료됩니다. 상대의 사고를 꿰뚫어 보는 '뉴타입'적 소양을 가진 그녀는, 하사웨이의 계획에 균열을 내는 치명적인 변수(Variable)입니다. 역대 건담 히로인 중 가장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뉴타입 : 상대방의 사고를 관통하며 존재를 감지하고 교감하는 능력, 이것을 건담에선 뉴타입이라고 부릅니다. 우주에 오래 살면 인류 중에 일부가 그렇게 변한답니다. (우리같은 일반인은 올드타입이지요.)
③ 케네스 슬랙 연방군 '키르케 부대'의 사령관. 인간적으로는 하사웨이에게 호감을 느끼고, 기기의 발랄함에도 끌리는 인물입니다. 호방하고 공정하며, 셋 중 가장 '어른'스러운 시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테러리스트 마프티(하사웨이)를 잡아야만 하는 비극적 위치에 서 있습니다.
결국 균열로 시작해 파국을 점점 예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관객 중 대다수가 스토리를 알고 있는 올드팬이 대부분인 '건담 우주세기 시리즈', 태생부터가 팬서비스 작품이니 영상화를 통해 그 파국을 얼마나 잘 그려내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트레일러(예고편)버전도 다양하게 계속 1월 30일 그날을 향해 추가되고 있습니다.
이번 2부의 부제가 '키르케(Circe)의 마녀'인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신화 속 키르케처럼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마성, 즉 기기 안달루시아의 비중이 폭발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제작진의 변태적인(?) 안목에 박수를 보냅니다. 로봇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영상에 미국 R&B 스타 'SZA(시저)'의 곡 'Snooze'를 오프닝 테마로 깔아버렸습니다. 건담에 R&B라니요. 하지만 영상을 보는 순간 납득했습니다. 몽환적인 비트는 빔 사벨이 부딪치는 전장의 소음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현실: 테러리스트로서의 사명
미련: 기기와의 정신적 교감과 설렘
이 노래는 하사웨이의 고뇌(현실)보다, 기기에 대한 '미련과 끌림'을 극대화합니다.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졸음(Snooze)처럼 쏟아지는 치명적인 매혹. 이보다 완벽한 선곡이 있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92KNipqozJo
노래를 들으며 영상을 다시 보면, 하사웨이의 흔들리는 눈빛이 더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아직 본편을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 파국의 맛이 씁쓸하게 전해져 옵니다.
P.S. 예고편 감상평이 길어졌네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넷플릭스에서 1편 <섬광의 하사웨이>를 먼저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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