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은 결국 개인의 몫
“아이고, 의미 없다.”
지인 중에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분이 있습니다.
소액이라도 주식으로 수익을 냈을 때나, 기분 좋은 칭찬을 들었을 때조차 그는 이 말을 덧붙입니다. 겸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든 상황을 낮추는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제도 대화 중에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모든 일에 진지한 그가 왜 이런 말을 달고 살까 생각해보면, 허무주의 때문은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그 말은 그분만의 생존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대화 속에서 정보는 받아들이되, 평가에는 거리를 두려는 태도로 보입니다.
오늘은 그가 가볍게 던진 이 단어, ‘의미’를 조금 다르게 들여다보려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건을 겪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끝나기도 전에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험의 낙방, 예고 없는 이별, 공들인 프로젝트의 실패.
우리는 사실보다 해석을 더 붙잡습니다. 이 일이 내 인생에서 어떤 문장이 될지를 결정해야 할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의미는 그래서 무겁습니다. 해석 하나로 삶 전체가 기울어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意는 마음에 소리가 머무는 모습입니다.
味는 지나간 뒤에도 혀끝에 남는 잔향입니다.
결국 의미란 사건이 내 마음을 통과한 뒤 남는 ‘뒷맛’입니다.
사실은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의미는 그 일에 대해 내가 붙인 해석입니다.
목적이 앞으로 나아갈 좌표라면, 의미는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목적은 미래를 향하고, 의미는 과거와 현재를 묶습니다.
의미 찾기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우리 뇌는 불확실한 상태를 고통으로 인식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라고 부릅니다. 뇌는 이해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며, 어떻게든 '의미'라는 마침표를 찍어 상황을 종결지으려 합니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Logotherapy)'도 의미 부여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일 것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겨진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라고 말했습니다. 고통 그 자체는 선택할 수 없어도, 그 고통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설명되지 않은 고통은 독이 되지만, 의미라는 마침표가 찍힌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경험이 됩니다.
루틴이 삶의 하한선을 지켜주는 그릇이라면, 의미는 그 그릇을 채우는 물입니다. 루틴의 과정에서 익숙해진 몸과 조금은 비워진 머리로, 우리는 이 종결 욕구를 해소하며 의미를 재정립하기에 적절한 시간을 확보하기 쉬워집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감정이 먼저 반응합니다.
하지만 잠시 후, 생각이 개입하며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가 시작됩니다.
“이 일을 다른 각도로 볼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은 실제로 감정의 강도를 낮춥니다.
이때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DMN)'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이 영역은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거나 자아를 성찰할 때 활성화되는데, 흩어진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편집자'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을 형성합니다.
단순한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내 삶의 '저자(Author)'가 되어 사건을 인생의 한 장면으로 재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되는 순간 안도하며 평온을 되찾습니다. 우리는 이미 글과 기록을 통해 이 작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미 부여가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을 운명으로 미화하거나, 실수를 억지로 성장으로 포장할 때 의미는 왜곡됩니다.
특히 결과를 다 알고 난 뒤 과거를 보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필연적으로 해석하는 '사후 확증 편향(Hindsight Bias)'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는 결국 후회나 부정적인 감정의 잔유물을 더 강화하게 됩니다.
의미가 정해지기 전까지, 해석하지 않을 자유를 느끼지만, 해석하지 않은 부담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해석하기 전까지는 ‘의미 있음’과 ‘의미 없음’이 겹쳐 있는 상태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미를 부여한 순간, 비로소 하나로 굳어집니다.
또한 우리는 매 순간, 타인의 해석에 기대는 삶과 스스로 의미를 선택하는 삶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이미 정리된 타인의 해석을 빌려옵니다.
하지만 빌려온 의미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철학이든 심리학이든, 그것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공명하지 않는다면 결국 흘러가 버립니다.
그리고 공명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타인의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선택한 의미가 됩니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것은,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해석뿐입니다.
의미는 사실이 아닙니다.
의미는 목적도 아닙니다.
의미는 사건 뒤에 내가 붙인 주석입니다.
우리는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라기보다, 의미 없음을 견디지 못해 매 순간 해석을 빚어내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붙인 해석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 흩어진 사건들은 비로소 ‘나의 삶’이라는 하나의 무늬가 됩니다.
글을 다 적고 나니, 그분의 목소리가 다시 귀에 울립니다.
"아이고, 의미 없다."
#의미부여 #의미 #해석 #로고테라피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