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열네 걸음

춘천, 그 자체가 영화

by 춘천시민
빛을 밟는 흰뺨검둥오리


8월의 여름 햇살이 잔잔히 물 위를 쓰다듬고, 강가의 수풀은 짙은 여름빛으로 누워 있었어. 도톰한 돌들 사이로 숨을 고른 풀잎들을 바라보는데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지. 물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걸음은 어딘가 비현실적이었어. 파문 하나 없이 미끄러지듯 고요히 나아가더라.


나는 자세를 낮췄어.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죽였지. 오리의 발끝이 닿는 자리마다 햇살이 번져 반짝이더라. 물이 아니라, 마치 빛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지.


어느 여름날, 나의 걸음에도 닿는 자리마다 햇살이 번져 반짝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뷰파인더 안의 오리처럼, 나도 누군가의 하루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촬영일 : 2025년 8월 4일 월요일 오후 5:24

| 촬영장소 : 온의교 공지천 우안길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의 장막


자전거를 타고 중도교 위를 달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어둑해진 풍경을 헤치며 달리던 순간, 나는 결국 자전거를 멈추고 말았어. 회색빛 비의 커튼이 춘천의 뒷배경처럼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거든.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비구름의 장막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지.


빛을 머금은 아파트 단지의 창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 불빛 안에선 지금 어떤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있을까? 불 꺼진 집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는 사람들도 혹시 저 비의 커튼을 발견했을까?


| 촬영일 : 2025년 8월 4일 월요일 오후 7:49

| 촬영장소 : 증도교 위


불빛 속에 눌러앉은 시간


밤이 되면 아파트는 불빛 속에 사람들의 하루를 조용히 숨기는 것 같아. 수십 개의 창문마다 기억이 눌러앉아 있지. 누구의 계절이 지나가든, 이사 철이 몇 번을 바뀌든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아파트들은 이제 춘천이라는 도시의 풍경이 되었어.


누군가의 첫 시작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마지막 안식처였을 그곳. 우두동의 동부아파트와 삼성아파트는 그저 오래된 건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야. 1994년부터 지금까지, 아파트의 벽면 사이사이에 삼십 년 가까운 시간의 켜가 차곡차곡 쌓여 있을 테니까. 수없이 많은 삶이 머물다 간 자리라서일까? 밤에 바라보는 아파트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이상하도록 따뜻하게만 느껴져.


| 촬영일 : 2025년 8월 4일 월요일 오후 7:50

| 촬영장소 : 춘천대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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