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한 걸음.

춘천, 그 자체가 영화

by 춘천시민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어지러울 때가 있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울 때 두통약이 있다면, 제겐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산책'이라는 비상약이 있습니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괜찮아집니다.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군요.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걷습니다. 묵묵히 걷다 보면 자연스레 어지러운 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는 풍경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거나, 너무 오래 걸어 발바닥 통증에 온 신경을 빼앗겨 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 버리거든요.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춘천에 살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산책하며 춘천의 풍경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춘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계절 내내 감성적인 시선으로 담고 있는 저의 사진과 함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춘천에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분들에겐 다양한 춘천의 풍경을, 춘천과 밀접한 분들에겐 지금까지 미처 알아챌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과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한 자락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하는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춘천, 그 자체가 영화



5월의 어느 날, 오후 다섯 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어깨에 비스듬히 맨 카메라 가방이 무릎을 계속 스쳤다. 그 작은 불편함과 함께 눈부신 햇살이 시야를 괴롭혔다. 아직 6월도 되지 않았는데,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한여름의 숨결이 가득 차 있었다.


'어? 물까치잖아!'


머리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물까치를 발견하고 자전거를 멈췄다. 어느새 나는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공원엔 늘 그렇듯이 사람이 없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물까치 추적에 나서려는데 물까치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찾으려 하면 원래 도망가기 마련인 것을 터득한지 오래다. 이럴 땐 그저 잠시 숨을 고르고 기다리는 것만이 최선이다.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발걸음을 움직여 그동안 날려 보낸 새가 수십 마리는 될 것이다. 쓰라린 경험은 다음을 위해 언제나 두팔 벌려 환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건만... 그 습관은 언제쯤이면 완벽하게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쯧쯧.


물까치에 대한 신경을 거두자, 그제야 시선이 닿은 공원 안쪽. 숨을 깊게 들이마시지 않아도 풀 내음이 풍겨왔다. 이 풀 내음을 내가 사진으로 잘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몇 번이나 누르고 또 눌렀다.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청춘의 빛깔이 이러하지 않을까? 역시 5월의 푸르름은 생명력이 넘친다. 쪼그려 앉아 5월의 청춘을 담아내기 위해 셔터를 몇 번 눌렀을 때, 사라졌던 물까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물까치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물까치를 풍경과 함께 멋지게 담고 싶은 마음과 가장 가까이서 선명하게 담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승자는 언제나 같다. 물까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허락해 줄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만 가질 뿐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물까치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러나 다시 자전거에 오른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하늘이 순식간에 얼굴을 바꿨다.


'우박...?'


옷 위로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지는 것은 분명 우박이었다. 우박에 놀란 것도 잠시, 그 뒤를 이어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도로 위를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우박과 빗방울이 춤추는 영서로(좌) 소양강스카이워크(우)


일단 비를 피해야 했다. 다른 생각은 할 겨를조차 없었다. 거센 빗방울로 얇은 바람막이는 벌써 살갗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내가 지금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걷고 있었다면 뜀박질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고 싶었을 테니.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은 오직 '카메라'. 나의 산책메이트인 카메라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비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도착한 소양강 유람선 선착장. 그곳에는 이미 나처럼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3명이나 더 있었다. 비는 쉽게 멎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 탓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내리는 비를 언제쯤 그칠까를 궁금해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소양강 유람선 선착장


주룩주룩 내리는 빗물을 어찌 눈으로만 담을 수 있으랴. 흔치 않은 기회였다. 비 내리는 날, 카메라를 들고 이곳까지 올 일은 거의 0에 가까웠으니. 그래서였을까? 온몸이 비에 젖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자꾸만 웃음이 났던 것이.


'미쳤다...!'


내 눈을 의심했다. 처음 보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부터 들었다. 숨을 멈추고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맞추는 그 짧은 몇 초가 이토록 길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2025년에 처음 만나는 새, 제비. 그것도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제비를 만나게 되다니.


소양강 유람선 선착장


비를 피하고 있는 것도 아닌, 빗방울이 떨어지는 와중에 가슴을 활짝 펴고 날개를 뒤로 젖힌 제비의 모습은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지금까지 산책을 다니면서 여러 종의 새들을 만나왔고, 다양한 사진을 찍어왔다. 다양한 새들에 비해 만나는 장소나 경계심의 정도가 비슷해서 항상 찍힌 사진을 보면 신선함이 없을 때가 많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서 제비의 표정까지 찍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은 사치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려 마음먹는 그 순간 분명 제비는 모습을 감출 것이 뻔했을 테니까. 고로 욕심부리지 않고 이렇게라도 사진으로 담아낸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이다. (아무렴, 이런 상황에는 자기만족이 최고인 셈이지.)


그로부터 15분 뒤.



소양강 유람선 선착장에서 바라본 하늘


비를 신나게 뿌렸던 하늘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뭉게구름을 끝없이 뿜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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