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그 자체가 영화
나는 아침에 상쾌한 얼굴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누군가 내게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잠에서 깨어 침대 위의 몸을 일으키는 그 순간이라고.
아침에는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욕실로 향하고, 저녁에는 하루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은 발걸음으로 또다시 욕실로 향한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 감성에 젖는 여유를 즐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잠들기 바쁘고, 눈뜨기 바쁜 나날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위한 시간이라곤, 좋아하는 영화를 가끔 보거나 가슴에 오래 머문 음악들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몇 년이, 놀라울 만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버렸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내 안에도 무언가 남아 있을 거라 믿었지만, 남은 건 공허함뿐이었다.
척박해진 심장, 게을러진 활동력, 메말라버린 감수성,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나는 알았다. 내팽개쳤던 나를 다시 찾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게... 뭐였더라.'
책 읽기, 글 쓰기, 음악 듣기, 영화 보기, 사진 찍기. 이 취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같은 본질을 품고 있다. 바로 감정과 이야기를 느끼고,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
그래, 나는 삶 속에서 스쳐가는 감정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수집하고, 다듬고, 간직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건 내 안에 무언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소중한 습관이었다.
이제부터 구경꾼이 아닌, 이야기꾼으로 살겠다는 다짐의 첫걸음으로 몇 년 동안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카메라부터 꺼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단 두 가지. 고요한 나와의 산책, 그리고 그 산책을 기록해 줄 카메라.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나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산책. 걷지 않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있고, 멈추지 않고는 담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다짐한 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몇 년 만에 스스로에게 허락한 산책이었다. 특별한 목적도, 정해진 길도 없었다. 그저 걷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날의 춘천은 이상할 만큼 다정했다. 늘 다니던 거리, 익숙한 골목, 수없이 스쳐 지나갔던 풍경들이 어느새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피곤하고 지쳤다는 핑계로 춘천의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있었다니...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춘천은 그대로이지만, 내가 달라졌다. 그리고 이 변화가 내 하루를 반짝이게 만드는 중이다.
춘천의 참새들
참새는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익숙한 새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 비해,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뭐, 대부분의 새들이 그렇긴 하지만...
유독 참새는 경계심이 높아 몇 발짝만 다가가도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나는 참새를 만나면 늘 반사적으로 카메라부터 든다. 일단 셔터를 누르며 거리를 천천히 좁혀가는 것이 그나마 내가 아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지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는 참새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두 마리 정도까지는 종종 보았지만, '본다'는 것과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늘 별개의 문제다.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참새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가지 위의 참새 떼를 발견했다. 놀랄 틈도 없이 카메라를 들었고, 재빨리 두 장을 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네 마리의 참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도, 두 장중 한 장에는 그 순간이 또렷이 담겨 있었다. 초점이 흔들렸더라면... 아마 눈물을 머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사진을 찍고 난 뒤에서야 가장 아래쪽 나뭇가지에 숨어 있던 또 한 마리의 참새를 발견했다는 것. 주인공에 눈이 멀어 조연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후훗.
'뭐가 저렇게 부산스러워? 뭔데? 뭔데?'
머리 위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참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나는 그 움직임이 구애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컷이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은행나무 위에서 화려한 날갯짓을 선보이는 모습은 춤과 흡사했다. 주로 이러한 구애 활동은 3월에서 6월에 자주 관찰된다고 하는데, 운이 좋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공지천 우안길, 공지천교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약 150미터쯤 걸었을 때였다. 멀리서 작은 새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지기 시작한 무렵,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과 초록의 숨결이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의 중심에는 참새가 있었다. 거리가 제법 멀어 참새를 또렷하게 담을 수는 없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모든 순간이 또렷할 필요는 없다. 사진처럼 인생도 초점이 맞을 때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가끔은 흔들리며 찍히는 존재이지 않은가. 어느 날은 초점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 또렷함을 잃어도 기록은 의미를 가진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사진이 아니듯, 지금 당장의 내 하루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인생이 아닌 것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잔잔하게 깔린 약사고개길, 세상의 소음과 일상의 무게가 잠시 멀어진다. 우산 아래로 나만의 고요가 자리 잡는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고요와 빗방울이 내는 소리의 충돌을 즐기기 위해 반드시 산책을 나서는 편이다. 우중산책으로 약사고개길 방문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거세진 비바람에 어느새 바지 끝단이 축축해져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면 집에 몇 시쯤 도착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려는 순간... 역시 나는 운이 좋은 것일까? 우산 끝에 맺힌 빗방울 너머, 한 그루 나무 아래 조용히 몸을 웅크린 참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굵은 빗방울을 피해 고요히 숨죽인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찍을까 말까, 잠깐 망설였다. 흐린 날씨에 빛이 부족해 사진을 찍어도 제대로 담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참새의 고요한 은신을 방해할 것이 뻔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찍자. 멀리서. 딱 한 장만. 그렇게 남은 사진 한 장. 빗방울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깊이 담겼다.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까지 찍었던 참새 사진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위의 사진을 선택할 것이다. (2025년 6월 5일 기준으로)
그동안 수많은 참새를 카메라에 담아 왔다. 올겨울, 참새를 찍겠다고 눈밭에서 넘어져 카메라 렌즈가 박살나기 직전까지 갔던 나는 마침내 2025년 3월 4일 내 실력으로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참새 사진을 얻었다. 사진 고수들의 눈에는 이게 뭐가 최고야?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겠지만... 나만 좋으면 된 거다. 내 눈에 최고면, 그게 바로 명작이다. 참새가 '별론데...'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뭘 더 바라겠는가!
"너 날 수는 있는 거지? 혹시 과체중이야?"
"내가 못 나는 게 아냐. 하늘이 날 감당 못할 뿐이지."
|참새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