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그 자체가 영화
가게를 열었다면, 정기 휴무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말아야 한다. 문을 닫지 않아야 한다. 영업 시작 시간과 마감 시간 역시 철저히 지켜야 한다. 시작 시간을 놓치기 시작하면, 어느새 게으름은 몸에 스며든다. 마감 시간보다 조금 일찍 문을 닫기 시작하면, 그런 날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그 흐트러짐은 결국 습관이 된다.
"어차피 손님이 올 시간이 아니니까."
"하루쯤은 괜찮겠지."
그런 마음을 품는 순간, 이미 결과는 예정된 수순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만 그 결과는 결코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느릿하고 조용하게 찾아온다. 시간이 쌓이고, 방심이 쌓이면서 어느 날엔가 광폭한 파괴력으로 나를 덮친다. 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언제나 그렇다.
글을 쓰는 일도 그와 같다. 글이란, 팔리지 않는 상품을 진열해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1초도 머물지 않고 지나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그러다 마음이 동하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라는 사람의 세계 속으로.
하지만 먼지가 쌓인 글 몇 개만으로 버티는 장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손님의 발길이 뜸하더라도, 글에는 먼지가 내려앉지 않도록 부지런히 관리해야 한다. 집요한 반복, 압도적인 양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글을 쌓고 또 쌓아야 한다. 어느 날을 위한 밑거름처럼.
생각은 되레 발목을 잡는다. 깊은 고민은 시작을 늦추고, 시작이 늦어지면 그 흐름을 다시 잡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한 달, 그리고 일 년이 훌쩍 흘러간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시작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작하고, 무조건 반복해야 한다. 때로는 그런 무모한 반복이 인생의 가장 큰 발돋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무턱대고 산책을 시작했다. 이유 없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했다. 그 발걸음의 기록은 사진으로 남았다. 마치, 내가 하루하루 정성스레 열어두었던 '가게'처럼.
길없음, 진입금지
| 촬영일 : 2025년 6월 8일 월요일 오후 6:18
| 촬영장소 : 우두강둑길 산책로 (춘천시 우두동 68)
| 촬영일 : 2025년 3월 28일 금요일 오후 4:09
| 촬영장소 : 용산 교차로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358-9)
산책을 하다 보면, 늘 지나치던 이정표가 어느 날엔가 문득 마음 한가운데를 콕 찌를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보던 풍경이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그 순간은 기습처럼 찾아오고, 나는 늘 그런 공격 앞에 무너진다. 단 한 번도 방어에 성공한 적이 없다.
'길없음'이라는 문구는 '진입금지'보다 훨씬 더 깊은 막막함을 안긴다.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혹은 돌아갈 곳이 아예 없을 때 마주하는 길없음의 표지판. 그 앞에서 발이 멈추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매일같이 울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모든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만든 세상도, 내가 기대던 사람도,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그때는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좌절에도 쉽게 무너졌고, 한 걸음 삐끗했을 뿐인데 주저앉아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었음을.
지금 다시 그 시절을 떠올리면, 멀리 있는 풍경을 바라보듯 한 발짝 물러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예전의 나는 길이 사라진 풍경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딱 한마디면 된다.
"흥칫뿡!"
20대의 나에게, 30대의 나에게 '흥칫뿡!'을 조금만 더 일찍 알려줬더라면, 조금은 더 가볍게, 조금은 더 웃으며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으로 향하는 비밀 입구
| 촬영일 :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오후 5:27
| 촬영장소 : 온의동 금호타운 아파트 뒷길 (온의동 산 43-1)
춘천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아주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길이 하나 있다. 평범한 주택가 사이, 금호타운 아파트의 뒷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숲이 스스로 감추고 있던 입구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돌과 나무로 만든 계단이 촘촘히 이어져 있고, 양옆으로는 시간이 빚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풍경은 마치 오래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닮아 있다. 말없이 던져진 초대장처럼, 그 계단은 아무 말없이 나를 내려다본다. 들어올 것인지, 되돌아갈 것인지를 묻지도 않으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아주 특별한 감정. 이 비밀스러운 계단길의 끝에는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이 있다.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가 있다. 누구나 아는 정문과 주차장 왼쪽에 있는 보배아파트 뒷길과 금호아파트 뒷길. 특히 금호타운아파트 뒷길에서 만날 수 있는 이 계단길은 알고 있는 사람만이 비밀처럼 간직하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지름길이 아닌, 기분을 전환시키는 장면 전환의 통로. 일상의 회색 화면에서 한순간 색이 바뀌는 전환점 같은 곳. 단지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잊고 지낸 감정과 조우하게 되는 길. 이 계단 하나만으로도 춘천이라는 도시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마법 같은 곳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참고 : 춘천시립도서관은 매주 금요일에 휴관, 그 외의 도서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 국경일, 정부지정 공휴일 휴관.)
석양이 속삭인 '까꿍'
| 촬영일 : 2025년 2월 13일 목요일 오후 5:49
| 촬영장소 : 소양강로 산책길 (장학리 649)
소양강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어느 저녁,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페달을 밟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은 멍하니 떠 있었고, 자전거는 그저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 강 건너를 바라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석양이었다. 그저 흔한 해 질 녘이 아니었다. 석양은 춘천우두이지더원시그니처 건물들 사이로 슬며시 얼굴을 내밀더니, 마치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처럼 해사한 미소로 "까꿍!" 하고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그 순간의 빛은 너무도 따스했고, 그 사이로 흐르는 공기마저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는 이런 풍경을 찍기 위해 오랜 시간 삼각대를 세우고 기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산책 중이었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만남은 운명 같았고,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선물 같았다. 누가 준비해 준 것도 아니고, 내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꼭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낮과 밤의 경계선 위에서 셔터를 누르는 일은 하루의 마지막을 눕혀주는 인사이자, 다음 날을 위한 조용한 다짐이었다. 석양은 끝이 아니라 쉼표인 것이다.
기진한 하루의 문장을 잠시 멈추고, 다음 이야기를 천천히 준비하게 해주는, 그윽한 숨결 같은 쉼표. 세상의 모든 피곤한 이들을 위해 석양이 준비한 짧고 따뜻한 연주. 역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대부분 계획 없이 찾아오는 것일까? 그곳에 있었던 나는 운이 좋은 관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