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Tasty G 고전 칼럼 2>
인문학은 용기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2010년 초에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이 거의 꺼졌다. 대기업 임원들은 수천만 원을 들여 인문학을 공부했다. 텔레비전 채널은 인문학 강의로 채워졌다. 한때 인문학도 돈이 됐다.
국가의 발전을 4단계로 나눴을 때 유행하는 학문도 나뉜다. 1단계에는 법학·정치학, 2단계에는 경제학·경영학·사회학·신문방송학, 3단계에는 철학·심리학, 4단계에는 고고학·인류학이 유행한다. 인문학 열풍이 거의 꺼졌으니 한국의 발전은 끝판왕인가.
인문학이란 ‘세상과 삶에 대한 질문과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성찰하고, 그것을 탁월함으로 실천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후마니타스(인문학, 인간다움)’라는 용어를 최초로 쓴 로마의 키케로는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가장 존귀하고 완전하게 해주는 학문이다.”라고 말했다.
키케로의 인문학은 지도자를 위한 학문에 가까웠다. 인문학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인문주의의 선구자로서 이탈리아의 시인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지도자 중심의 로마 인문학을 인간 연구의 학문으로 확장시켰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 과목은 ‘역사, 도덕철학, 문법, 수사학, 시’로 오늘날 인문학 범주에 속하는 ‘문학, 역사, 철학’의 원형이었다. <오뒷세이아>(오뒷세우스의 노래)는 ‘문학, 역사, 철학’이 고루 담긴 인문학 서적이다.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들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1권 1행 ~ 5행)
<오뒷세이아>는 총 24권으로 구성됐다. 1권에서 4권에 이르는, 이른바 ‘텔레마키아’는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집을 떠난 지 스무 해나 된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육지로 떠나 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오뒷세우스는 <오뒷세이아> 5권부터 등장한다. 오뒷세우스의 모험이야기는 5권에서 8권까지의 ‘현실적 모험’과 9권에서 12권까지의 ‘판타지적 모험’으로 나뉜다. 13권에서 24권까지는 오뒷세우스가 그토록 그리던 고향 이타케에 돌아간 후 펼쳐진 이야기다.
<오뒷세이아>에는 오뒷세우스의 모험이 순차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다. <오뒷세이아>를 용이하게 읽으려면 오뒷세우스의 모험을 시간순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트로이아전쟁을 마치고 이타케로의 항해를 시작한 오뒷세우스는 항구 도시 이스마로스에 도착한다. 오뒷세우스는 이스마로스에서 제사장 마론의 집을 보호한다. 마론은 오뒷세우스에게 포도주를 선물한다. 이 포도주는 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스마로스를 떠난 오뒷세우스는 로토파고스에 다다른다. 주민들은 오뒷세우스 일행을 반기며 연밥을 대접한다. 연밥으로 인해 오뒷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갈 의지를 잃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오뒷세우스는 거인족 키클로프스의 나라로 떠난다. 이곳에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살고 있었다. 오뒷세우스 일행은 폴리페모스가 살고 있는 거대한 동굴에 갇히고 폴리페모스는 오뒷세우스의 동료들을 잡아먹는다.
오뒷세우스는 꾀를 낸다. 마론에게서 받은 포도주로 폴리페모스를 취하게 한 뒤 커다란 창으로 눈을 찌른다. 그리고 폴리페모스가 키우는 양떼에 숨어 동굴을 빠져나온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이성을 잃지 않았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을 뒤쫓아 온 폴리페모스에게 배를 타고 떠나며 “이 괴물아 똑똑히 들어라. 나의 이름은 오뒷세우스다.”라고 말하며 자만에 취한다. 이를 알게 된 포세이돈은 오뒷세우스에게 저주를 내린다. 오뒷세우스는 이타케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성이란 자만 앞에 무기력하다.’는 것을 말하는 대목이다.
“내가 이 나무를 아무리 흔들려고 해도, 내 힘으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이 나무를 괴롭히고, 마음먹은 방향으로 얼마든지 굽힐 수 있다. 우리를 가장 괴롭히고 가장 심하게 굽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다.”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사람이 이토록 자만 앞에 나약한 이유는 니체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마음을 주물럭거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처도 “하루에 천 번도 더 마음이 변한다.”라고 말했다. 자만에 취하면, 잠자고 있던 내 안에 괴물이 살아난다. 오뒷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괴물이라 말했지만, 괴물은 정작 자만에 취한 오뒷세우스다.
포세이돈의 저주 후 오뒷세우스는 조심성을 갖는다. 인간의 위대함은 완벽에서 오지 않는다. 부족을 인정하고 교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위대한 이유다. 그래서, 오뒷세우스는 위대하며 <오뒷세이아>는 고전이다.
키클로프스의 나라를 떠난 오뒷세우스 일행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섬에 상륙한다. 아이올로스는 순풍과 역풍을 담은 자루를 오뒷세우스에게 선물한다. 아이올로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이타케에 도착할 즈음 오뒷세우스를 의심한 동료들이 자루를 열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는 불굴의 의지로 항해를 이어간다. 야만족이 사는 라이스트리곤을 거쳐 키르케가 살고 있는 아이아이에라 섬에 도착한다. 키르케는 오뒷세우스의 동료들을 동물로 만든다.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키르케의 음모를 물리친 오뒷세우스는 키르케의 도움으로 아이아이에라 섬에서 배불리 먹고 편하게 쉰다.
<오뒷세이아>에는 오뒷세우스를 위협하고 저주하는 인물도 있지만 아이올로스, 헤르메스, 키르케처럼 오뒷세우스를 돕는 이들도 많다. 키르케는 마녀였지만 오뒷세우스를 도운 후 성스러운 인물로 비춰진다. 누군가를 도울 때 사람은 그리고 그 밖의 존재들은 신이 되는지도 모른다.
키르케의 도움은 계속된다. 고향을 찾아 떠나려는 오뒷세우스에게 바다의 님프 세이렌의 유혹을 경고한다. 세이렌은 새의 몸통에 여인의 얼굴을 한 님프다. 노래로 사람을 홀려 바다에 빠지게 한다.
오뒷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가 몹시 궁금해 동료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에 단단히 묶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몸을 묶어서라도 세이렌의 노래를 듣겠다는 오뒷세우스의 지적욕구(?)는 귀감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초심을 갖는다. 하지만 잘될수록 초심을 잃고 유혹에 빠진다. 오뒷세우스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세이렌의 유혹에 빠지면 빠질수록 자신의 몸을 더 단단히 묶으라고 당부한다. 일이 잘되면 잘될수록 오뒷세우스처럼 자신을 더 잘 묶어야 오래간다.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고 스킬라(머리 여섯 달린 괴물)와 카리브디스(포세이돈의 딸로 해일을 일으킴)의 위협을 거쳐 트리나키아 섬에 도착한 오뒷세우스는 태양신 희페리온의 소를 잡아먹은 동료들로 인해 또다시 고난을 겪지만 굴하지 않는다. 오뒷세우스는 님프 칼립소가 주는 안락한 삶과 스케리아의 공주 나우시카의 청혼도 뒤로 한 체 마침내 이타케로 돌아간다.
목표를 이뤄갈 즈음 자만이 불쑥 튀어나와 헤집는다. 동료의 불신과 배반에 억울하다. 상처를 입지만 시간을 거치며 성숙해지고 때로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모든 것을 버릴만한 유혹에 빠지지만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고난과 유혹으로 점철된 오뒷세우스의 모험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오뒷세이아>는 결국 우리의 모험담이다. 오뒷세우스는 10년 만에 목표를 이루지만 우리의 목표는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 우리의 항해는 오뒷세우스의 항해보다 더한 모험이다. 그래서 삶은 기적이다.
인문학은 용기다. 자신의 운명에 굴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오뒷세우스처럼 모두 운명을 헤쳐나가라. 운명이란 삶이란 그런 것이다. 하기 싫으면 그만둘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운명을 삶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