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뒷모습과 나의 문화"

<Tasty G 미식 24>

by Tasty G

하남동 ‘원더룸’ ☞ 아메리카노(뉴 클래식 버전, 비너스 오브 에티오피아 버전), 필터 커피(원두 8종류 이상)


원더룸은 섬세함과 세심함이 요구되는 ‘커피 로스팅’ 같은 카페입니다.


원더룸에서라면 아메리카노에서도 필터 커피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커피에 진심인 한결같은 사장님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커피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의 커피 문화 만들기’에 영감을 주는 원더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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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전문


뒷모습은 정직하다. 뒷모습에는 얼굴이 없다. 팔과 다리도 모두 앞모습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앞모습은 꾸며낼 수 있지만 뒷모습은 앞모습의 꾸밈을 진실하게 보여줄 뿐이다. 누군가를 속이려면 먼저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자신감, 그럴싸한 외모, 경청의 제스처는 상대에게 호감을 준다. 그래서 사기꾼의 뒷모습은 당당하고, 부유하고, 들썩거린다.


근래의 음식점은 ‘청결한 주방’을 영업 전략의 일부로 내세우기 위해서 다수가 ‘개방형 주방’을 구현했다. 개방형 주방을 통해서 음식점의 청결함을 관찰하는 것은 미식의 확률을 높여준다. 더불어 그 주방에서 조리하는 사람의 뒷모습도 함께 관찰한다면 미식의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미식의 뒷모습은 구부정하다. 훌륭한 조리사는 좋은 음식을 만들어서 손님에게 정성껏 대접하기 위해서 조리에 집중하기 때문에 몸은 웅크러들고 마음은 움츠러든다.


원더룸에서는 구부정한 뒷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원두를 갈고, 필터를 준비하고, 필터에 갈아놓은 원두를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필터 커피’를 만드는 사장의 모든 뒷모습은 진지함과 신중함 그 자체다. 필터 커피뿐만이 아니라 ‘아메리카노’나 non 커피 음료 그리고 차를 만드는 뒷모습도 마찬가지다. 설거지를 하거나 설거지한 식기와 조리 도구의 물기를 제거할 때면 그의 뒷모습은 더욱 구부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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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는 카페의 기본기가 드러나는 음료다. 에스프레소 머신, 음료 제조에 사용하는 물, 원두의 신선도와 로스팅 컨디션 등의 관리상태를 알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원두의 신선도는 카페의 성실함을, 음료 제조에 사용하는 물에서는 카페의 세심함을 그리고 로스팅 컨디션에서는 카페의 섬세함과 전문성을 읽을 수 있기에 아메리카노는 친숙하지만 무서운 음료다.


원더룸 아메리카노(뉴 클래식 버전, 더군다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첫맛은 충격적이었다. ‘보수적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지닌 신사를 연상시키는 스페셜 원두로 만든 필터 커피 맛’과 같아서 주문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카드사용내역 문자’를 확인할 정도였다. 원더룸에서는 두 가지 버전의 아메리카노를 판매한다. ‘뉴 클래식’ 버전에서는 고소함, 정갈함,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비너스 오브 에티오피아’ 버전은 혀끝에 과일감, 청량함, 화려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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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대한 경험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원더룸의 필터 커피를 추천한다. 매주 새롭고 질 좋은 원두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원두의 개성이 잘 드러나도록 커피를 만들어주는 원더룸의 시스템은 어지간한 열정과 정성으로는 운영할 수 없다. 원두의 산지, 품종, 가공 방식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과 향미와 후미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을 손님과 함께 나누는 사장의 퍼포먼스는 ‘나의 커피 문화 만들기’에 영감을 준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생방송인 ‘위클리커핑(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시청가능)’도 원더룸의 뒷모습이다. 6년 동안 매주 새로운 원두를 소개하고 맛을 공유하는 ‘위클리커핑’을 비롯해서 다양한 커피 지식을 전하는 양질의 동영상으로 채워진 원더룸의 유튜브 채널은 ‘커피 도서관’이다. 원두 선별, 로스팅, 카페 운영, 온라인 판매, 생방송 모두를 철두철미하게 꾸준히 이어가는 (원더룸의)성실함은 자영업계에서 폐업하는 카페와 로스터리의 숫자만큼이나 자영업계에서 폐업하고 있는 태도다.


주 5일제 시행으로 늘어난 여가 시간은 오히려 ‘문화생활에 대한 강박’으로 채워져 있다. “쉬는 날에는 영화관이나 근교 나들이라도 가야 한다.”라는 사회 담론(특정 세력이 생산해서 전파한 말과 생각)은 문화적 이데올로기(특정한 생각을 정당화하는 사고 체계)에 가깝다. 사회가 개인에게 ‘타인이 만든 문화를 소비하도록’ 티 나지 않게 강요하기 때문에 문화는 향유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AI가 발달하는 만큼 여가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늘어날 여가 시간을 강박이 아닌 향유의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한다. “나의 문화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지, 문화란 무엇인지 성실하게 탐구해 나갈 때 온전하게 향유할 수 있는 나의 문화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 사람의 커피 탐구가 원더룸으로 드러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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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이란 ‘나의 음식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오직 나의 문화 속에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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