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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양 May 27. 2023

책상에 앉아 우리가 '문'을 열어볼 때에

언젠가 나의 문을 열어볼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


Q. 당신이 좋아하는 문에 대해서 써 주세요. 그것을 열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 주나요?

A.

제가 좋아하는 문에 대해서 알려드릴게요.

이 문은 제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커다랗습니다. 카키색과 분홍색이 교차된 자잘한 체크무늬가 그려져 있고요. 아, 원래는 다른 칠이 더해져 있었을 텐데, 제가 이 문을 마주했을 땐 이미 한 겹 벗겨진 상태였어요. 예전 주인이 벗겨버린 것 같더군요.

제가 이 문을 발견하게 된 건 서른 살 즈음이었어요. 그때 이 문을 아주 저렴하게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죠. ‘판매가격 국내 4,500’이라고 적힌 견출지가 아직도 문짝 한 귀퉁이에 붙어 있네요. 옆면에는 이 문을 만든 제조사인 ‘문학과 지성사’의 마크가 찍혀 있고요.

이 문의 정체가 궁금하시죠?

이 문의 이름은 ‘침이 고인다’ 예요.

이 문 안에서 나를 초대한 사람은 ‘김애란’ 이고요.

혹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인가요?

그래요, 이 문의 정체는 김애란 작가가 쓴 소설집 『침이 고인다』입니다.





새로운 책을 펼치는 순간은 늘 가슴이 설레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만 같죠. 초대장은 필요 없어요. 누구라도, 언제든지, 문을 활짝 열어볼 수 있죠.

서른 살. 패배자가 된 기분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 저는 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일곱 개의 작은 방이 있었어요.

각각의 방 안에는 저와 비슷한 얼굴을 한 다양한 청춘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화려한 도시에서 자기만의 온전한 방 한 칸 얻지 못한 채 고시원과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인물들.

궁색한 연애, 상대방에게 미안해지는 연애를 해야만 하는 인물들.

이 시기를 잠시 버티면 통과할 터널이라 여겼는데 아직도, 여전히, 어둠 속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아 다리가 후들거려 입술을 꽉 깨무는 인물들.

일곱 개의 방을 오가며, 그들을 지켜보고 공감하고 응원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생각 그들이 가진 감정이 저와 꼭 닮은 것 같아 깜짝 놀라기도 했고, 힘든 하루하루를 꿋꿋이 마주하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한켠이 저릿해지기도 했어요.

저만 홀로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문을 닫는 일이 미안했습니다.

그들은 2000년대의 청춘에 머물러 있고 저는 2020년대의 삼십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저는 지금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 제가 열어본, 앞으로 살면서 열게 될 수백수천 개의 문 중에서도 저는 특히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사랑합니다. 이 문을 열어본 후의 저는, 그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이 문을 당신께 추천하려고 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이건 일종의 예고편이에요.

아니, 기약 없는 초대장이에요.

저도 저만의 무언가를 짓고 있는 중이거든요.

타인의 문을 열어보고 위로받았던 시간을, 그 따뜻했던 순간들을, 이번에는 제가 당신께 나눠드릴 수 있기를 바라요.

부단히도 지루하면서도 즐거운, 지긋지긋하면서도 애틋한 이 공사가 언제쯤 끝날 지는 알 수 없어도,


언젠가, 열어주세요.

문을 활짝 열어 제가 만든 세계로 놀러 와 주세요.





20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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